방통위 솜방망이 대책에 과방위 위원들 질타
텔레그램에 메일 보내는 게 유일한 삭제 수단
2차 피해 막으려면 '특단의 대책' 마련 필요

#범죄 무대로 변한 플랫폼

#해외 사업자 제재 못해

#재발 방지 위한 대책 절실


미성년자를 협박해 촬영한 성착취물을 돈을 받고 온라인 메신저 서비스를 통해 공유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며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 사건은 주로 온라인 공간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더하고 있다. n번방 운영자들은 피싱 사이트 등으로 개인정보를 탈취해 피해자를 협박하고, 촬영한 성착취물을 보안성이 높은 해외 메신저를 통해 공유하는 등 디지털 기술을 잔혹한 범죄의 도구로 악용했다.

그동안 주로 웹하드 등을 통한 불법 음란물 유통을 차단하는 데 머무르던 정부 규제는 한단계 진화한 '그놈'들의 범행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해외에 서버를 둔 플랫폼 사업자의 경우 우리 정부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아 자발적으로 협조해주지 않는 한 딱히 손 쓸 방도가 없는 상황이다.

이는 제2, 제3의 n번방이 생겨나고 '디스코드' 등 다른 메신저 서비스로 '그놈'들이 옮겨가도 정부는 또 뒷북만 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이 문제가 확실히 해결되지 않는 한 피해자들의 성착취물이 계속해서 재배포되는 악순환의 고리도 끊기 어렵다.

플랫폼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는 가운데 해외 사업자에 대한 제재 방안을 마련하지 못해 문제가 된 건 이미 한 두 해 지적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는 "국제 공조를 강화하겠다"는 도돌이표 대답 외에 아직 뚜렷한 '묘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방통위 n번방 피해방지 대책 '재탕' '땜질' 지적


2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텔레그램 n번방 사태 등 디지털 상에서의 성범죄와 관련한 긴급 현안보고를 위해 전체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은 n번방 피해방지 대책을 보고했다. 방통위가 마련한 대책은 피해자들의 성착취물이 재유통되지 않도록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법 개정을 통해 웹하드 사업자가 불법음란정보 유통방지 조치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현행 2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높이겠다는 게 골자였다.

이밖에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한 불법 음란물 판별 기술을 도입해 모니터링 기법을 고도화하고, 플랫폼 사업자의 디지털 성범죄물 조치 현황을 점검하겠다는 등의 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이미 지난 2017년 범부처 차원에서 내놓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방지 종합대책' 등 기존 대책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재탕'에 가까웠다.

과방위 의원들 역시 여야 할 것 없이 실효성 없는 '솜방망이' 대책을 가져왔다며 한 위원장을 질타했다. 윤상직 미래통합당 의원은 "2017년 디지털 성범죄 피해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법 개정도 했는데 n번방 같은 성착취 범죄 행위가 횡행하고 있다"며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그동안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며 사과했는데 방통위는 무슨 노력을 했냐"고 지적했다.

한상혁 위원장은 "방지 대책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n번방)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미흡했던 점은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철저한 대책 마련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해외 서버에 성착취물 유포되도 속수무책


정부의 디지털 성범죄 대책이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받는 이유는 서버를 해외에 둔 플랫폼 사업자에 대해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텔레그램의 서버가 어느 나라에 있는지 조차 아직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위원장은 "현재 수사기관이 추적 중"이라며 "현실적으로 파악이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 n번방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는 26만여명에 대해서도 신상공개 등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지만, 텔레그램이 제대로 협조하지 않으면 '26만명'이란 숫자가 맞는지조차 정확히 알기 어렵다. 박대출 미래통합당 의원은 "대통령은 26만여명을 전수조사 하라는데 기술도 권한도 없다"며 "법 사각지대에서 만들어진 만큼, 규제할 규정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누누히 얘기됐지만 해외에 서버를 둔 플랫폼에 대해 안에서 어떤 행위가 이뤄지는지 사전에 수사하듯 접근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2차적인 동영상 유통에 대한 처벌에 한계가 있는데 (방통위가) 이걸 다 할 수 있다, 조치하겠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위원장은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의무를 강화하는 입법이 이뤄져도 해외 사업자에 대한 집행력이 따르지 않으면 어려움이 존재한다"며 "구글 같은 경우 국내에서 사업을 하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협조가 가능하지만 텔레그램은 국내에서 수익을 내는 부분이 없어 간접적으로도 규제할 방법을 찾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검찰 송치되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 사진 = 머니투데이방송 제공
검찰 송치되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 사진 = 머니투데이방송 제공

텔레그램 연락처도 몰라 이메일로 삭제 요청


이번 사건에서 범죄자들이 텔레그램을 주요 범죄 무대로 사용한 건 서버를 해외에 둔 사업자들이 국내 정부기관의 규제나 수사에 협조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다. 범죄 수사에 대한 국제 공조는 인터폴 등을 통해 이뤄질 수 있지만, 성착취물에 대한 삭제나 접속차단 등은 사실상 사업자가 회피하면 딱히 강제할 수단이 없다.

한 위원장은 "텔레그램의 경우 사업자 연락처도 존재하지 않고 단지 나와 있는 고객센터 이메일 주소를 통해 조치를 요구하는 방법 뿐"이라며 "삭제 조치는 부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강상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과거 음란물 온상이던 '텀블러'의 경우 직원들이 직접 현장에 가서 협조를 구하는 등 노력한 끝에 많이 사라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제 공조가 전화하고 메일 보내는 수준으론 안된다"며 "방통위, 방심위가 해외 주재를 두고 현지에서 즉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재 수위 높이고 해외 사업자에게도 적용시켜야


구글 역시 'n번방'을 검색하면 피해자의 이름과 직업 등을 유추할 수 있는 검색 결과와 연관 검색어를 그대로 노출하다 지난 24일 방통위의 요청을 받은 뒤에야 부랴부랴 삭제 작업에 나섰다.

강 위원장은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문제는 해외 사업자에 대한 시정 요구를 했을 때 잘 관철이 안된다는 점"이라며 "이와 관련해 해외 사업자가 여러 시정 요구를 수용해 삭제와 차단을 의무화하는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원들은 제재 수위를 높이고 해외 사업자에게도 행정력을 발휘할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 방통위에 촉구했다. 플랫폼에서 강력 범죄까지 일어나는 마당에 더 이상 "어렵다"는 말만 반복할 때가 아니라는 것.

박선숙 민생당 의원은 "2018년 전기통신사업법에 역외규정을 도입해 이미 시행 중인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방치돼 있는 것"이라며 "정부가 좀 더 행정 적극주의 입장으로 이 법을 사업자들에게 적용할 수 있을지 답을 가져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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