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스타일로 즐기는 무인도 라이프
각양각색 '사는 이야기' 모여 풍성해진 세계관
코로나 시국에 '우울감 해소제' 역할 톡톡

무인도 '남도섬'에 이주한 '도영'의 신난 모습 / 사진 = 모여봐요 동물의 숲 게임 캡쳐
무인도 '남도섬'에 이주한 '도영'의 신난 모습 / 사진 = 모여봐요 동물의 숲 게임 캡쳐

"선배, 이 게임은 대체 왜 하는 거에요?"

최근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을 본 테크M 이수호 기자는 "이렇게 재미없어 보이는 게임은 처음"이라며 '핵노잼'이란 박한 평가를 내렸다.

회사에서 유일하게 닌텐도 스위치를 갖고 있어 당당히 리뷰를 자처하고 다른 기자들에게도 보여주겠다며 일부러 회사까지 싸들고 와 시연회를 펼친 나는 적잖게 당황했다.

아니, 일본에서 출시 3일 만에 패키지만 188만장이 팔려 역대 스위치 게임 중 첫 주 최고 기록을 세우고 메타크리틱 평점 91점에 외신들의 호평이 쏟아진 이 게임을 왜 하냐고? 

전 세계 이용자들에게 '코로나 블루'(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를 날리는 힐링 게임으로 찬사를 받고 한국에서도 '노노재팬'을 넘어 닌텐도 스위치를 못 사서 안달나게 만든 이 게임이 재미 없다고?

뭣도 모르는 이 기자는 계속 "저기 저 동물은 사냥 못해요?" "가게는 못 털어요?" "박물관에 기증하면 뭐 줘요?" 같은 말도 안되는 질문을 하더니 도저히 답답해서 못 보겠다며 옆에 가서 성인용 게임의 대명사 'GTA5'를 켰다.

이 기자와 함께 게임을 지켜보던 신지은 팀장마저 게임이 너무 심심하다며 싸늘한 반응을 보이자 뭔가 잘못됐음을 느낀다. 허준 편집장은 "해보면 재밌을 것"이라 옹호했지만 눈은 GTA5에 가 있었다.


왜 재밌냐고 물어보신다면


게임 속에서 이룬 전원주택의 꿈. / 사진 = 모여봐요 동물의 숲 게임 캡쳐
게임 속에서 이룬 전원주택의 꿈. / 사진 = 모여봐요 동물의 숲 게임 캡쳐

직접 돈 주고 게임을 사서 해본 입장에서 결론부터 말하면 동물의 숲은 재밌는 게임이다. 힐링 게임이든 못된 게임이든 게임은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한다. 동물의 숲은 재밌다. 하지만 동물의 숲이 왜 재밌냐고 물어보면 쉽게 답하기가 좀 어렵다.

동물의 숲을 처음 보면 귀여움을 넘어 유아틱해 보일 정도다. 아기자기한 건 좋은데 뚜렷한 목적도 없이 그냥 동물들이랑 '사는' 게임이 대체 무슨 재미가 있을까? 멋진 캐릭터, 매혹적인 스토리, 격렬한 전투, 치열한 순위 다툼, 승자에 대한 명예와 보상, 인기 게임을 설명하는 이런 수식어들이 동물의 숲에는 하나도 어울리지가 않는다.

현실에선 자는 게 가장 좋다만 게임에서도 잠만 자면 곤란하다. / 사진 = 모여봐요 동물의 숲 게임 캡쳐
현실에선 자는 게 가장 좋다만 게임에서도 잠만 자면 곤란하다. / 사진 = 모여봐요 동물의 숲 게임 캡쳐

무인도 '남도섬'에 이주 온 주인공 '도영'은 이웃(동물)들과 함께 집을 짓고 나비를 잡고 오렌지를 따고 나무를 캐고 낚시를 하고 가구를 만들고 사진을 찍으며 평화롭게 살아간다. 이게 동물의 숲의 거의 전부다.

누군가는 섬에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하고, 또 누군가는 집 꾸미기에 열중하고, 또 어떤 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풍경만 바라보며 멍을 때린다. 이 게임에도 정해 놓은 큰 흐름은 있지만 따르길 강요하진 않는다. 스스로 세운 목표를 향해 각자 나름대로 즐기는 게임이라 '이래서 재밌다'고 단정 지어 말하기가 어렵다.


살아있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세계


평일에는 밤에 찍은 사진 뿐이다. / 사진 = 모여봐요 동물의 숲 게임 캡쳐
평일에는 밤에 찍은 사진 뿐이다. / 사진 = 모여봐요 동물의 숲 게임 캡쳐

동물의 숲 속 시간은 실제 시간과 똑같이 흘러간다. 퇴근해 아이를 재우고 나서야 잠시 짬을 내서 게임을 할 수 있기에 나의 섬은 항상 컴컴했다.

나비를 잡고 싶은데 밤에는 나방만 날아다닌다. 리뷰 때문에 마음은 급한데 집이 지어지려면 진짜 내일까지 기다려야 한단다. 초조한 마음에 밤늦게 애꿎은 나무만 캐다 문득 컴컴한 바다에 내린 달빛을 바라보니 매일 기사에 쫓기는 내 삶이 겹쳐져 마음이 짠해진다.

이 게임 평화롭게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섬에 내리면 항공료, 인건비, 설비비, 스마트폰 대금을 시작으로 집을 사고 넓히는 게 다 대출이다. 서둘러 빚부터 청산하고 싶은 이에게는 '부채의 숲'이다.

주택담보대출을 내주며 기뻐하는 너구리 표정을 보라. / 사진 = 모여봐요 동물의 숲 게임 캡쳐
주택담보대출을 내주며 기뻐하는 너구리 표정을 보라. / 사진 = 모여봐요 동물의 숲 게임 캡쳐

이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멋지고 화려하게 꾸민 집들이 넘쳐난다. 캐릭터까지 예쁘게 꾸미려면 또 돈이다. 그들처럼 살고 싶다면 끊임없이 일해야 한다. 다행히 이 '노동의 숲'은 적어도 출발점은 모두 같다는 점이 위안이다.

살다 보면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귀여운 얼굴만 믿고 모르는 사람을 덜컥 초대했다가 아이템을 탈탈 털린 이에게는 '사기의 숲'이 되기도 한다.

결국 동물의 숲은 사람 사는 얘기다. 게임 속 작은 섬에서 펼쳐지는 살아있는 이야기들이 가족과 친구, SNS 팔로워를 타고 공유된다. 이 게임에 왜 어른들이 더 열광하는지 직접 살아보고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고 공유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나도 소중해진 평범한 일상


올해 벚꽃놀이는 게임으로. / 사진 = 모여봐요 동물의 숲 게임 캡쳐
올해 벚꽃놀이는 게임으로. / 사진 = 모여봐요 동물의 숲 게임 캡쳐

동물의 숲은 2001년 시작된 닌텐도의 간판 시리즈 중 하나다. 최신작인 모여봐요 동물의 숲은 지난달 20일 출시됐다. 공교롭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맞물려 사람들의 마음 속 우울감을 떨쳐낼 '특효약'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직접 경험한 동물의 숲은 코로나에 시달리다 잠깐 맞이한 '봄방학' 같은 게임이었다. 회사도, 마감도, 육아도 없는 세상에서 평화롭게 놀기만 하면 된다. 이 세계는 벌써 한달 넘게 지속된 코로나19에 대한 불안과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갑갑함을 떨쳐 내기에 최적의 장소로 꼽히고 있다.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보자던 세계보건기구(WHO)마저 코로나19 확산 이후 게임을 하라고 적극 권장하고 나섰다. 사람들이 함께 게임을 하며 불안감을 해소하고 감정을 교류할 수 있다는 이유다. 게임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이지 않아도 건전하게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언택트' 시대의 여가로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동물의 숲은 게임에 대한 이런 기대감을 채워준 사례로 남을 것이다. 이 게임은 얼핏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꼼꼼한 디테일로 채워져 있다. 모래사장에서 내 뒤를 쫓아오는 발자국, 바람에 산들산들 흔들리는 꽃과 나무, 어두운 밤을 부드럽게 밝혀주는 달빛까지 섬의 풍경은 가만히 바라만 봐도 충분히 아름답다. 직접 'DIY'(Do It Yourself) 할 수 있는 수많은 오브젝트들은 어른들에게 소꿉놀이 하던 시절 기분을 느끼게 한다.

4월이 되자 남도섬에는 벚꽃이 만발했다. 게임 속 벚꽃을 보는 마음이 아련하다. 해마다 벚꽃을 보기 위해 수만명이 몰리던 여의도 윤중로는 인도와 차도가 모두 차단됐다.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이 필요한 시기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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