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VC는 기업 전략형 VC

#최고의 시나리오는 '대기업 혁신 동력 + 스타트업 안정적 지원'

#CVC 악용한 총수일가 사익편취 우려도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로 들어오는 신규 자금은 대부분 정부 정책지원금에 몰려있다. 또 대부분 초기 투자에 집중돼 있는 것도 특징이다. 후기 투자 단계로 갈수록 국내 자본을 찾아보기 어려워 스타트업 규모가 커질수록 외국 자본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이런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고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윈윈할 수 있는 방안으로 'CVC'가 주목받고 있다. 

CVC는 단순 자금 투자를 통한 수익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VC와는 달리, 기업의 '전략적'인 목적을 가지고 독립적인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VC를 말한다. 벤처기업에 대한 장기적 자본 공급, 장기적 파트너십 형성이 가능하다.

다만 지주회사의 CVC 보유를 허용하기 위해서는 공정거래법 개정이 필요하다. 현행법상 VC는 금융업으로 분류돼 공정거래법상 금산분리 원칙에 반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기업 지주회사가 CVC를 둘 수 없다. 이에 법 개정을 통해 CVC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왜 CVC여야만 할까 


11일 더불어민주당과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가 주최하고 김병욱, 이원욱, 김경만 의원실이 주관한 CVC 활성화 토론회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렸다. 김병욱 의원은 "금산분리 원칙은 재벌의 사금고화를 막고 산업자본의 위기가 금융자본으로 전이되는 현상을 막기 위해 마련됐는데, 이 부분들이 많이 희석돼 가고 있다"며 "새로운 투자활성화 차원에서 대기업의 적극적 투자를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실 기존 기업들도 자체 부서나 프로젝트를 통해 벤처투자를 진행해왔다. 그럼에도 왜 CVC가 필요할까. 이날 토론회에서 나온 의견을 종합해보면 VC의 특성과 대기업의 전략적 관점이 조화를 이룬 CVC여야 대기업도, 스타트업도 윈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존 기업의 투자 방식은 모든 투자가 성공해야 하고 2~3년 임원의 임기 내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데, 투자 의사결정은 수개월 소요되는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반면 VC의 투자는 포트폴리오 투자 방식으로 접근하며, 의사결정은 신속하게 내리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스타트업 성과를 바라본다. 

물론 기존 기업의 투자 방식과 VC 투자 모두 재무적 수익이 목적이지만, 기업의 경우 '전략적' 관점도 더해진다. 이에 김 교수는 VC 투자 방식에 대기업의 전략적 관점이 더해진 CVC는 현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문제점으로 반복 지적되는 대기업의 스타트업 인수 문제를 개선하고 대기업도 혁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국내 스타트업의 인수합병(M&A)이나 기업공개(IPO) 비중은 미국의 절반에 못 미친다. 김 교수는 "대형 유통 기업들이 마켓컬리를 초반에 들여다봤지만 잘 몰라서 당시 그냥 지켜만 봤다. 마켓컬리가 잘 됐을때는 너무 가치가 올라가 손을 내밀지 못한 상태가 됐다"며 "CVC를 보유한 기업들은 스타트업 초기 단계에 작게 투자하고, 성장과정을 지켜보며 추가 투자를 이어나가 나중에는  인수하는 구조를 지닐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스타트업과 대기업 간 정보 비대칭을 줄이고, 스타트업에 대한 메가투자 건수와 후기 투자가 저조한 점도 개선할 수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현재 국내 스타트업에 대한 메가투자 건수와 후기 투자는 1%대에 불과하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현시대에서) 큰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혁신하기에는 어렵고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빠르고 유연한 스타트업에 대기업들이 투자하고 인수하는 방식을 통해 스스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신규 CVC의 초기 투자 규모가 매년 늘고 있다. / 사진=CB인사이트
신규 CVC의 초기 투자 규모가 매년 늘고 있다. / 사진=CB인사이트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상무 또한 "이제는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한 신산업 진출은 한계에 도달한 상태이며, 성공하더라도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라며 "실제 4차산업혁명의 핵심인 사물인터넷(IoT) 분야의 경우 기술수명주기가 5년"이라고 설명했다. 즉, 이제는 새로운 산업에 진출하는 방식이 변화하고 있으며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구글이다. 구글은 신산업 진출 초기 사업 타당성과 기술의 유효성 시험을 위해 CVC인 구글벤처스를 활용한다. 구글벤처스를 통해 투자를 시행하고 이후 계열사로 인수하거나 합병하는 단계적, 전략적 신산업 진출 방식을 시행하고 있다. 


투자 명목으로 악용될 소지도... 보완책도 들여다봐야 


이에 시장에서는 일반지주회사가 VC를 소유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 개정을 요구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를 비롯 부작용 우려도 나오는 건 사실이다. 이승규 공정거래위원회 지주회사과 과장은 "일반 지주회사의 CVC 허용에 대해 공정위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부작용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기에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입법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지주회사의 과도한 지배력 확산을 우려했다. 이승규 과장은 "현행법상 지주회사의 CVC 보유를 금지하고 있는 것은 지주회사가 본질적으로 과도한 지배력 확산 문제를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금산분리, 부채비율 등의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지원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 또한 일반지주회사의 CVC 보유를 허용하면, CVC 자금이 총수 일가가 높은 지분을 보유한 비상장 벤처기업에 투자 명목으로 과도하게 유입돼 부당한 부의 이전 및 지배권 승계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를 고려해 강 조사관은 "이러한 부당지원이나 사익편취 등은 공정위의 사후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어, 투자의 적법성 여부에 대한 공정위의 신속한 사전 파악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정위는 대기업의 벤처 투자가 완전히 막혀 있는 구조가 아니어서, 지주회사의 CVC 보유 허용이 획기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킬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했다. 이승규 공정위 과장은 "GS홈쇼핑이나 네이버 등의 경우 사내벤처투자팀이나 스타트업투자지원 프로젝트를 운영해 사실상 CVC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며 "구글이 CVC를 보유하고 있지만, 이 외에도 구글이 자체적으로 펀드를 조성해 인공지능(AI)과 디지털 어시스턴트 분야에 활발히 투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현재도 대기업의 벤처 투자를 원천 차단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지주회사의 CVC 허용이 곧바로 획기적인 효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라며 "아울러 CVC 허용이 지주회사 체제의 다른 규제 완화 요구로 비춰질까봐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문정은 기자 moon@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