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VASP인가

#원화 취급 안해도 KYC-실명계좌 발급 필수일까

#ISMS 취득하려면 시간-돈 많이 드는데...


'내년에도 사업할 수 있을까..'

2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가상자산 침체기 속에서도 '존버(오래 버틴다는 뜻의 속어)'하며 블록체인-가상자산 사업을 이어온 비(非) 거래소 가상자산 기업들이 긴장 속에 '특금법 개정안' 시행령을 기다리고 있다. 그간 가상자산 거래소 위주의 특금법 논의가 주를 이뤄왔기에 가상자산을 이용한 '서비스' 업체들의 현실에 맞는 시행령이 마련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자칫 금융당국이 가상자산 거래소에 요구하는 전통 금융권 수준의 높은 규제가 동일하게 적용되면 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가상자산 간편결제도 거래소처럼 KYC 해야하나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은 가상자산 관련 첫 제도화 법안이다. 내년 3월에 시행되며, 특금법 시행 전부터 영업해오던 가상자산 사업자는 개정안 시행 일로부터 6개월 이내, 즉 내년 9월까지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영업신고를 해야 한다. 

이 가상자산 사업자(VASPs)에 누가 해당될지는 시행령에서 구체화돼 발표 예정이다. 일단 개정안에는 ▲가상자산을 매도 매수하는 행위 ▲가상자산을 다른 가상자산과 교환하는 행위 ▲가상자산을 보관 또는 관리하는 행위 ▲가상자산 매도 매수 또는 가상자산 간 교환 행위를 중개 알선 대행하는 행위 등의 영업을 하는 곳이라고 명시돼 있다. 

위 기준에 따르면 가상자산 거래소와 가상자산 보관 및 관리하는 지갑 및 커스터디 기업들부터, 가상자산을 판매해 자금을 조달한 이른바 'ICO'를 했던 기업들, 가상자산으로 투자를 진행했던 벤처캐피탈(VC) 및 엑셀러레이터 등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가상자산을 활용한 결제, 소셜, 게임 등의 '서비스' 성격을 띈 기업들도 해당될 수 있다.

/ 사진=헥슬란트 보고서
/ 사진=헥슬란트 보고서

이들이 VASP에 해당이 되면 가상자산 이동 하나하나 발자취를 기록하고 관리하기 위해 당국은 이들에게 KYC(고객신원확인)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나 지난 6월 발표된 가상자산 관련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규제 권고안에 따르면, 가상자산 거래소 포함 VASP는 가상자산 송수신에 필요한 발신자 정보와 수신자 정보를 수집 및 보유해야 한다. 이른바 여행규칙(트래블룰)이다. VASP는 당국의 요청이 있을 경우 이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가상자산을 단순 보관하거나, 가상자산 간 주고받는 서비스들이 굳이 KYC를 필요로 하지 않는 서비스일지라도 KYC 의무를 부과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문제는 트래블룰 때문에 비거래소 VASP에게도 거래소처럼 동일하게 전통 금융권 수준의 KYC를 요구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게 업계 입장이다. 국내 가상자산 결제업체 한 관계자는 "가상자산 사업자들을 '가상자산 거래소'와 동일하게 보면 안된다"며 "토스 등 간편결제 서비스도 휴대폰 본인인증만 거치면 쓸 수 있는데, 가상자산이라고 해서 더 높은 수준의 KYC를 요구하면 형평성에 맞지 않은 거 아닌가"라고 강조했다. 

즉, 가상자산을 활용하는 서비스 기업들이 기존 존재해왔던 '유사 서비스'들이 있어, 이들을 고려해 대응되는 수준에서 KYC 방침이 마련됐으면 한다는 것이다. 


신고 조건 두 가지 'ISMS-실명계좌'...우리도? 


초기 특금법 개정안의 주안점이 '가상자산 거래소'로 다소 기울어져있다보니, 당국 신고를 위한 요구 조건도 비거래소 가상자산 사업자에게는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많다. 

개정안에 따르면 가상자산 사업자로 해당이 되면, 금융위원회 산하 상호 및 대표자의 성명 등을 금융정보분석원장에게 신고해야 하는데, 이때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획득하지 못하거나 실명확인이 가능한 입출금 계정을 사용하지 않으면 신고 수리가 안될 수 있다.

특히 ISMS 인증을 획득하기 위해 수개월 이상의 시간과 수천만~수억원 수준의 비용도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 상황에서는 VASP 소속 여부가 불확실하고, 대개 스타트업인 기업들이 선뜻 나서기 부담스럽다. 이에 시행령이 신속하게 나와 불확실성이 해소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 사진=금융위원회
/ 사진=금융위원회

원화를 취급하지 않는 가상자산 사업자들까지 시중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를 발급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크다. 이와 관련 특금법 개정안은 "다만, 가상자산 거래의 특성을 고려하여 금융정보분석원장이 정하는 자에 대해서는 예외로 한다"고 했다. 하지만 예외가 적용되는 사업자가 너무나 광범위하게 명시돼 있어, 이 또한 시행령을 기다려보야 하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 블록체인 기반 금융 서비스 관계자는 "가상자산 장외거래(OCT)는 애매하지만, 원화를 취급하지 않은 커스터디나 금융 서비스는 굳이 시중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 입출금 서비스를 신청할 필요가 없을 것으로 예상만 하고 있다"며 "이 또한 특금법 개정안이 가상자산 거래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개정안은 '가상자산 사업자라면 실명계좌 입출금 발급을 신청할 수 있다'가 아니라 이 계좌를 은행에서 발급받을 수 있어야 당국에 신고를 할 수 있게끔 돼 있다"며 "오히려 선후관계가 바뀐 것이다. 은행이 마치 1차 감독기관이 된 격"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금융당국은 비거래소 가상자산 사업자에게도 한국블록체인협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도 진행된 바 있다. 이에 참여한 한 업계 관계자는 "거래소가 아닌 사업자들은 대부분 스타트업인데 거래소와 같은 KYC 등을 요구하면 '가상자산 사업자' 범주 안에 못 들어올 수 있다"며 "이는 곧 국내에서 블록체인 스타트업을 하지 말라는 의미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문정은 기자 moo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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