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면서 문화 관람계가 깊은 침체기를 맞이했다. 이런 가운데에도 관람객들의 성원에 힘입어 재개된 전시가 있다.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진행중인 툴루즈 로트렉 [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 展이다.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은 빈 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에드가 드가(Edgar Degas) 등과 함께 프랑스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들은 프랑스 최고의 전성기였던 '벨 에포크' 시대를 대표하는 그림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벨 에포크 시대 : 19세기말부터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1914년 이전까지 프랑스 사회 전반이 융성하게 발달했던 최고의 전성기

쾌청한 주말 날씨를 아까워하다 로트렉 전시회에 다녀왔다. 해설 도슨트 시간이 맞지 않아 난생 처음 오디오가이드를 대여해 작품을 관람했다. 그것이 내 체감과 기억에 어떤 영향을 준 것인지 전시장을 나오고 나서도 개괄적인 전시 정보들이 비교적 또렷이 머릿 속에 남아 있었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오디오'라는 기술조차 문화인류학적인 측면에서는 이렇게 꾸준히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고 있다. 기술의 발전은 그림에 가까이 다가서면 자동으로 설명이 흘러나오게 하고, 캔버스 위에 놓여 있던 인물들을 비디오 영상 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만들었다.


가까이에서 전하다, 도슨트와 NFC


도슨트(docent)란 '가르치다'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로, 현대에는 전시해설을 돕는 해설자를 지칭하는 단어로 주로 사용된다. 가르치다 라는 어원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정보 전달자일 뿐만 아니라 미학적, 역사적 학술 정보를 쉽고 재밌는 이야기로 풀어주는 스토리텔러이기도 하다.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처음 생겨난 도슨트 제도는 한국에는 1995년 도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이 사람을 직접 대면하고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도슨트는 아날로그식 정보 전달을 기저로 한다.

도슨트가 익숙하지 않거나 혼자 편하게 작품을 보고 싶은 관람객들은 주로 오디오가이드를 사용한다. 기계에는 변경불가한 기본값이 설정돼 있어 도슨트가 직접 전하는 방대한 스토리텔링과 상상력들은 부재한다. 그러나 작품 이해에 필요한 제반지식을 전달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이런 디지털 가이드에는 QR(Quick Response) 코드, 근접 무선 통신기술인 NFC(Near Field Communication) 태그 등의 통신 기술이 이용된다. 작품 옆에 있는 코드나 태그에 스마트폰을 가져다 대면(근처에 가면) 해당 작품의 번호에 맞는 설명이 자동으로 재생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국어 음성 가이드가 제공되기도 하는데, 이는 도슨트가 제공할 수 없는 혜택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기술 발전이 인간의 두뇌를 닮거나 능가할 수 있는 제품 기획에 주안점이 있었다면, 이제는 후각/촉각/청각 등 세분화된 감각 타깃팅이 주를 이룬다. 일례로 근래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글로벌 기업들의 무선 이어폰 개발이 한참이다. 향후 무선 이어폰은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의 신기술과 사용자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일상의 스케줄 체크부터 독거어르신들의 SOS 요청까지 주변의 모든 기기에 음성 지원이 가능해짐을 의미한다.

만약 이런 기술들이 박물관이나 전시장에도 적용된다면 어떨까? 현재는 오디오가 관람객에게 주는 기본 정보를 단일/단편적으로 전달받는데 그친다. 궁금한 점이 생겨나면 그때 그때 검색창에 직접 검색하는 수밖에 없다. 하다못해 이 역시도 20여년 전부터 도슨트의 역할을 기계(스마트폰)가 대체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이다.

근시일 이내에는 전시작품에 대한 특정 DB만을 다루는 오디오가이드 인공지능 제품이 생겨나 도슨트를 불러오는 음성인식 기능이 접목될 수도 있다. 우리는 아이폰의 시리에게 묻는 것처럼 대여한 오디오마이크에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도슨트, 이 그림은 갑자기 분위기가 어둡네요. 이 무렵 로트렉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침대 Le lit, 1892(Henri de Toulouse-Lautrec)
침대 Le lit, 1892(Henri de Toulouse-Lautrec)

기술복제와 아우라(Aura)


로트렉이 살던 19세기말 프랑스에서는 순수미술이 상업미술로 연계되는 경우도, 그것이 성공하는 사례도 극히 드물었다. 로트렉은 두가지를 모두 성공함과 동시에 거꾸로 당초부터 상업용도로 제작한 작품들(길거리 광고 포스터)을 순수미술로 인정받기까지 했다.

이러한 로트렉의 성공 뒤에는 그의 뛰어난 실력과 미적 감각이 있었으나 판화 기술이 뒷받침한 결과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 맥을 같이 해온 회화와 판화조차 산업 혁명과 사진기술의 등장을 기점으로 복제기술로서의 한계를 맞이한다. 고대부터 내려왔다는 문학 역시 마찬가지이다. 문학이 다루던 서사는 이제 주로 비디오(영상)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이처럼 기술의 발달은 작품의 제작 방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예술사조를 두고 살펴보면 기술력이 부족해서 복제가 불가능했던 이전 시대에는 좋은 작품에는 반드시 '아우라'가 존재해야 했다. 아우라(Aura)란 종교언어에서 기원한 표현으로, 유일무이한 것을 숭배할 때 느끼는 '신비로운 기운'을 뜻한다. 거꾸로 말하면 어떤 작품에서 '아우라'가 느껴진다면 그것이 복제나 대체가 불가능함을 뜻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19세기 셔터 몇 번으로 현실을 그대로 '복제'할 수 있는 사진과 영화라는 기술에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놀란 것은 당연하고 "이런 것을 예술이라고 볼 수 있는가?"라고 되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량복제가 가능해지면서 비평적 사고 업이 작품을 '흡수'하고 '소비'하는 형태로 전락했다는 비평이 게속되기도 했다.

발터 벤야민은 자신의 저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에서 근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사진과 영화(복제기술)가 전통적인 예술개념을 어떻게 뒤바꿨는지 말한다. 그는 우선 "기술의 발전은 예술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가?"라고 바꿔 묻는다. 실제로 이전까지 '관람'이란 특정한 장소와 특정한 시간 대에만 가능했다. 따라서 오로지 시간과 돈이 있는 기득권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술이 발달하고 작품이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게 되면서 작품과 관객의 거리는 가까워졌다. 기술복제가 가능해지면서 전통적인 의미의 아우라는 상실되었지만, 새로운 예술의 지평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는 '해방'이기도 했던 것이다.


테크놀로지와 예술


로트렉 사후 150년이 훌쩍 넘은 지금, 그의 전시회장에는 남겨진 작품 원본들과 함께 움직이는 미디어아트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가 종이 위에 점과 선으로 남겼던 물랑루즈에서 캉캉을 추는 여인들은 기술을 만나 150년 후의 전시장에서 움직임을 가지면서 별개의 작품이 된다.

이러한 미디어아트 성공 사례에는 제주 성산의 '빛의 벙커'도 포함될 수 있다. '빛의 벙커'는 국가기관 통신시설이었던 벙커를 전시장으로 활용한 미디어아트 전용관으로, 클림트, 반 고흐 등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스크린으로 가져와 다양한 예술작품을 빛과 음악을 통해 재조명해 호응을 얻고 있다.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만남을 보여주는 또다른 예로는 미디어파사드가 있다. 미디어파사드란 미디어(media)와 건물 외벽을 일컫는 파사드(facade)의 합성어로 호주 오페라하우스와 독일 아레나 스타디움 등이 유명하다.

옥외 광고 등 디스플레이를 단순 부착하는 방식에서 나아가 건축물 외벽 전면에 빛과 영상을 비추는 형식이다. 이러한 미디어 디스플레이는 건축물 외관 전체를 하나의 미술관으로 사용하는 이른바 '디지털 미술관'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작품이 기술을 만나면서 재현과 모방 이상의 해석이 가능해진다는 걸 보여준다.

예술과 기술의 조우는 퍼블릭 미디어로도 구현된다. 우리는 최근 넥센타이어, SM 등의 대기업 사옥 외벽 가이드에서도 웅장하고 압도적인 결과물들을 관람할 수 있다. 이는 기술의 발전이 작품을 대하는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자연과 인간을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로 본다면 이를 다루는 작품들이 그를 닮은 패턴을 모방하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라고 말했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작품들은 '예술과 기술의 접목'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앞에 무한한 재탄생의 기회를 맞이한 것인지도 모른다.


기술이 없던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그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헝가리의 사상가 게오르그 루카치는 저서 '소설의 이론'의 서문에 위와 같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근대를 기점으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는 예술의 가치와 나아갈 길에 대해 고민한다. 이 시대에는 낭만이 가고 기계만 남았다는 다소 서글픈 농담이 떠오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툴루즈 로트렉의 백년 전 그림을 들여다보며, 귀로는 오디오의 설명을 듣고, 손으로는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검색하던 시대를 살고 있다. 디지털의 영역이 넓어질수록 서로를 견제하면서 서로를 이끌어주는 기술과 인간의 공생 관계는 깊어질 것이다. 분명한 것은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생로병사 뿐만 아니라 미학 지평 역시 윤택하게 넓혀 주고 있다는 점이다.


김보경 에디터 clara@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