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온라인으로 열린 '갤럭시 언팩' 행사에서 노태문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사진 = 유튜브 캡쳐
5일 온라인으로 열린 '갤럭시 언팩' 행사에서 노태문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사진 = 유튜브 캡쳐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시작과 끝 '갤럭시'

#'아재폰' 이미지 벗고 MZ세대 공략 필요성

#'1등 제조사' 무게 내려놓고 눈높이 맞춰야


"시중에서 갤럭시를 '아재폰'이라고 부르고 있다."

지난 19일 노태문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사장)과 임직원들은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는 '타운홀 미팅'을 가졌다고 합니다.

이 자리에서 한 직원은 갤럭시 스마트폰이 '중년 남성들이 쓰는 폰'이란 인식이 강해 젊은층을 만족시킬 만한 혁신이 필요하다는 쓴소리를 내놨다고 합니다.

갤럭시는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의 상징이자 세계 최다 판매량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브랜드입니다. 이런 갤럭시 브랜드가 노후화되고 있다는 점은 삼성으로선 크나큰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는 가운데 갤럭시 브랜드가 새로운 소비층인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자)에게 외면 받는다면 단순히 이미지 문제로만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갤럭시 아재폰 맞네


최근 한국갤럽이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조사 한 스마트폰 사용률 결과에 따르면 61%가 삼성전자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애플은 18%, LG폰은 17%를 차지했습니다.

수치만 놓고 보면 국내 시장에선 갤럭시 스마트폰이 아직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연령과 성별로 나눠보면 주목할만한 변화들이 감지됩니다.

/ 자료 = 한국갤럽
/ 자료 = 한국갤럽

조사 결과 18~29세 젊은 층의 경우 갤럭시(45%)와 아이폰(44%) 사용 비율이 거의 대등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여성의 경우 아이폰 사용 비율이 58%로 갤럭시(32%)를 이미 넘어선 상황입니다. 20대 여성 10명 중 6명은 아이폰을 쓴다는 얘기입니다. 30대 여성도 44%가 아이폰을 사용해 46%인 갤럭시를 턱끝까지 쫓아왔습니다. 이들은 다음에 구매할 스마트폰 브랜드로 43%가 아이폰을 꼽아 38%를 차지한 갤럭시를 앞섰습니다.

반면 남성의 경우 갤럭시 비중이 아직 압도적입니다. 특히 18~29세 55%, 30대 61%, 40대 68%, 50대 73%, 60대 이상 74% 등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사용률이 높아지는 모습입니다.

이런 결과를 놓고 보면 갤럭시가 '아재폰'이라는 건 인구통계학적으로 어느정도 입증된 이야기인 듯 싶습니다.


판매량도 '노란불'


갤럭시의 '아재폰' 이미지는 단지 젊은 여성 소비자를 애플에 뺏기고 있는 정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직 시중에 깔린 비율로 보면 갤럭시가 여전히 압도적이지만, 최근 판매량만 놓고 보면 안심할 때가 아닌 상황입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스마트폰은 애플 '아이폰11'이었습니다. 애플은 10위 권 내에 '아이폰SE'(6위), '아이폰11 프로'(8위) 등 3개 제품을 올려놓으며 달라진 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 자료 = 카운터포인트리서치
/ 자료 = 카운터포인트리서치

물론 나머지 7개 제품은 모두 삼성 갤럭시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갤럭시 스마트폰 중 가장 많이 팔린 제품이 플래그십 제품인 '갤럭시 S20' 시리즈가 아닌 보급형 '갤럭시 A90'이라는 점이 눈에 띕니다. 제조사의 상징인 플래그십 스마트폰 판매량이 부진하다는 건 브랜드 경쟁력 차원에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최강의 스펙을 지닌 고가의 스마트폰에 끌리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히려 가성비가 뛰어나거나 비싸더라도 자신만의 '감성'을 담을 수 있는 제품에 지갑을 열고 있습니다. 이런 경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에는 더 가속화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갤럭시의 '아재폰' 이미지 탈피가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는 이유입니다.


갤럭시의 자부심


노태문 사장은 '아재폰' 지적에 대해 "여러분이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우리(삼성)가 쌓아왔던 이미지가 잘못된 게 아니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갤럭시는 삼성이 자부심을 가질만한 브랜드입니다. 2007년 애플의 아이폰 등장 이후 피처폰 시장에서 삼성과 경쟁하던 노키아, 모토로라, 소니에릭슨 등은 급속히 내리막을 걸었습니다. 이 와중에 삼성은 갤럭시 시리즈로 추격의 발판을 마련해 애플과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삼성전자 '갤럭시S' / 시진 = 삼성 뉴스룸
삼성전자 '갤럭시S' / 시진 = 삼성 뉴스룸

삼성과 애플의 혁신 대결은 스마트폰 시장을 성장시킨 원동력이었습니다. 두 회사는 서로 견제하면서 서로 배워가는 라이벌이었습니다. 애플은 특유의 미니멀한 디자인과 감성적인 마케팅을 앞세워 강력한 팬층을 형성했고, 삼성은 앞선 스펙과 '갤럭시 노트' '갤럭시 폴드' 등의 폼펙터 혁신으로 첨단기업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그동안 갤럭시는 9년 연속 '대한민국 100대 브랜드' 1위를 차지만큼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브랜드였습니다. 애플은 한국을 한 번도 아이폰 1차 출시국에 한 번도 넣어주지 않았습니다. 아이폰 초기 악명 높았던 아이튠즈 동기화 문제와 불친절한 사후관리(AS) 등은 소비자들을 등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반면 갤럭시는 한국 사람에게 잘 맞춰진 익숙하고 편리한 스마트폰으로 안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겉만 바꾼다고 될까


그럼에도 이제 막 스마트폰 시장에 진입하고 있는 20대는 아이폰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이들에게 스마트폰에 바라는 이미지는 더 이상 '첨단'이 아니라 자신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고 삶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감성'이라고 합니다.

노태문 사장은 타운홀 미팅에서 젊은층을 다시 끌어들이기 위한 방안으로 "색상, 재료, 마감을 젊게 가져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내년 신제품부터 과감하게 적용하겠다"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지난 5일 온라인으로 개최된 '갤럭시 언팩 2020' 행사에서 노태문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사장)이 갤럭시노트20를 소개하고 있다. / 사진 = 삼성전자 제공
지난 5일 온라인으로 개최된 '갤럭시 언팩 2020' 행사에서 노태문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사장)이 갤럭시노트20를 소개하고 있다. / 사진 = 삼성전자 제공

하지만 겉모습만 바꾼다고 젊은이들이 갤럭시 스마트폰을 좋아하게 될까요? 과거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갤럭시 스마트폰에 애플의 사과 로고를 합성한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똑같은 디자인에 로고만 바꿨을 뿐인데 더 예쁘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이미 갤럭시 디자인 자체에 대해선 크게 부족함이 없다는 게 대중의 평가입니다.

최근 출시한 '갤럭시노트20'의 경우 컬러부터 젊은 여성들이 선호하는 로즈골드 풍의 '미스틱 브론즈'를 앞세워 과감한 디자인 전략을 펼쳤지만, 사전예약에서 주 소비층은 여전히 30~40대 남성으로 나타났습니다. 물론 30대 여성이 15%를 차지하며 뒤를 잇기는 했으나 그동안의 이미지를 반전시킬 만한 반응이라고 하기엔 어려워 보입니다.


이제는 '스펙'이 아닌 '라이프 스타일'


광고 전문가들에 따르면 애플은 명품 브랜딩 전략을 앞세워 아이폰을 쓰면 '세련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고 고가 전략으로 과시적 소비를 유도해 Z세대에게 가장 영향력이 큰 브랜드로 자리했습니다. 국내에서도 연예인들이 아이폰을 쓰는 모습이 자주 노출되면서 이런 이미지가 강화되는 분위기 입니다.

애플은 더 이상 기계적 성능에 대해 자세히 얘기하지 않습니다. 스펙이나 기능으로 보면 아이폰은 이미 혁신에서 멀어진지 오래입니다. 대신 애플은 생활 속에서 아이폰이 주는 즐거움이나 가치에 대해 소구합니다.

아이폰11 소개 문구 / 사진 = 애플 홈페이지 캡쳐
아이폰11 소개 문구 / 사진 = 애플 홈페이지 캡쳐

예를 들어  압도적인 카메라 성능을 내세운 삼성 갤럭시S20 울트라는 100배줌, 1억800만 화소, 8K 동영상 등의 '수치'를 내세워 제품을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갤럭시S20 울트라의 카메라 성능은 도대체 어디에 써야할 지 모르겠다는 의문만 남긴채 코로나19를 만나 판매 부진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반면 수치적인 스펙에선 한참 뒤진 애플은 아이폰을 광고하며 카메라 스펙 대신 밤에 잘 찍힌 사진 몇 장, 선명하게 촬영된 동영상 하나로 감각적으로 보여주는 식으로 소구합니다. 사실 갤럭시나 아이폰이나 비슷한 성능에 색감만 차이가 있는 수준이지만, 아이폰에는 항상 '감성'이라는 단어가 따라다닙니다. 스펙이 뒤쳐저도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이 보기에 더 잘나온 사진처럼 느껴진다는 얘기죠. 

스펙부터 객관적으로 깐깐하게 비교하는 얼리어답터들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얘기겠지만, 이미 스마트폰이 대중적인 생활 필수품이 된 만큼 '라이프 스타일'에 초점을 맞춰 영리하게 커뮤니케이션하고 있는 아이폰이 훨씬 이해하기 쉬운 제품이 된 건 인정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구찌를 보라


갤럭시에는 글로벌 굴지의 제조사가 된 삼성의 자부심이 뭉쳐있습니다. 그만큼 버리거나 바꾸기 어려운 브랜드입니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갤럭시 리브랜딩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더 이상 'S펜' 외에 뚜렷한 차별점이 없어진 갤럭시S와 갤럭시노트, 여기에 폴더블폰 '갤럭시Z' 시리즈까지 가세하면서 '갤럭시'가 품어야 할 제품들이 너무 많아지고 복잡해졌습니다. 이는 갤럭시만의 브랜드 이미지를 뚜렷하게 만들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의미도 됩니다.

과연 지난 10년을 정리하고 다음 10년을 준비하는 갤럭시 브랜드에는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 출처 = unsplash
/ 출처 = unsplash

지난 2015년, 한 물 간 명품 브랜드였던 '구찌'는 신예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해 밀레니얼 세대를 집중 공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까지 무명에 가까웠던 미켈레는 구찌의 과거를 독창적으로 재해석해 패션계 신성으로 떠올랐습니다. 파격적인 용병술과 함께 이후 구찌의 가파른 매출 성장을 뒷받침한 건 구찌를 '힙'한 브랜드로 인식하기 시작한 35세 이하 소비자였습니다.

구찌는 성공적인 리브렌딩과 MZ세대 공략의 필요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에 익숙하지만 레트로에 열광하고, 가치소비를 중시하지만 명품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MZ 세대를 90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콧대 높던 패션 하우스가 어떻게 눈높이를 맞춰 공략에 성공했는지 살펴보면 갤럭시가 가야할 길에도 힌트가 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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