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계의 '넷플릭스' 꿈꾼다


 

#제니맥스 인수로 뚜렷해진 '엑박'의 전략

#클라우드 사업 시너지 통해 '판'을 바꾼다

#막강 구독 서비스에 '플스 왕국' 무너질까


지난 22일부터 나흘간 진행된 마이크로소프트 '엑스박스 시리즈 X&S' 예약판매가 '완판'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앞서 지난 18일 예약판매를 진행했던 소니 '플레이스테이션5'에 이어 엑스박스 시리즈까지 매진행렬을 이어가며 차세대 콘솔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콘솔팬들의 이목은 플레이스테이션5와 엑스박스 시리즈 중 누가 승자 '9세대 콘솔대전'의 승자가 될 지에 쏠리고 있습니다. 앞서 8세대 대전에선 '플레이스테이션4'가 강력한 독점작들을 내세워 '엑스박스 원'에 비해 두배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한 바 있습니다. 과연 엑스박스는 역전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마이크로소프트 차세대 콘솔 '엑스박스 시리즈 X'
마이크로소프트 차세대 콘솔 '엑스박스 시리즈 X'

MS의 제니맥스 인수로 흐름이 바뀌었다


이번 9세대 콘솔 대결에서도 소니는 독점작에 대한 자신감을 보이며 이번에도 승기를 잡는 듯 보였습니다. 엑스박스 시리즈X는 플레이스테이션5에 비해 스펙상 우세한 성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독점작을 내줄 퍼스트파티 진영의 열세를 보이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지난 21일(현지시간) 마이크로소프트는 베데스다 소프트웍스의 모회사인 제니맥스 미디어를 75억달러(약 8조7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하며 판세를 뒤집었습다.

/사진 = 마이크로소프트
/사진 = 마이크로소프트

베데스다는 최신작이 3000만장 이상 팔린 '엘더스크롤' 시리즈와 올해의 게임(GOTY) 단골인 '폴아웃' 시리즈 등을 보유한 개발사입니다. 여기에 제니맥스 산하에는 베데스다 외에 '둠' 시리즈로 유명한 이드(id) 소프트웨어를 비롯해 아케인 스듀디오, 머신게임스, 탱고 게임웍스 등 다수의 게임 개발사가 포진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비디오 게임 역사상 역대급 규모의 인수에 이어 또 다른 게임사 인수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전해지자 엑스박스 팬들의 마음이 들썩이고 있습니다. 세계 시가총액 3위인 정보기술(IT) 업계 공룡인 마이크로소프트가 이처럼 마음먹고 돈을 풀면 플레이스테이션의 퍼스트파티 진영을 압도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벌써부터 세가(SEGA)를 비롯해 일렉트로닉아츠(EA), 유비소프트, 테이크투 인터렉티브 등 유력 개발사들이 물망에 오르고 있어 차세대 엑스박스에 대한 기대감도 한껏 부풀고 있습니다.


제니맥스 인수 배경은 '클라우드'


마이크로소프트는 제니맥스 인수 직전에 중국의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 인수를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인수 기회가 오라클에게 넘어가자 며칠 지나지 않아 제니맥스 인수를 발표했습니다. 마치 틱톡을 인수하지 못한 대신 제니맥스를 산 듯한 인상을 줍니다. 과연 마이크로소프는 일각의 평가대로 틱톡을 놓친 '패닉 바잉'으로 제니맥스를 샀을까요?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업 쇼핑' 이면에는 '클라우드'라는 일관된 기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클라우드는 '윈도'와 '오피스'로 연명하던 마이크로소프트를 다시 살린 사티아 나델라 CEO의 주력 사업이죠. 현재 마이크로소프트는 아마존웹서비스(AWS)에 이어 2위 클라우드 사업자로, 3위 구글과도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습니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 / 사진 = MS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 / 사진 = MS

과거 마이크로소프트의 '빅딜'을 살펴보면 2011년 스카이프(85억달러), 2016년 링크드인(262억달러) 등 주로 비즈니스 환경과 연관이 있는 기업 인수가 주를 이뤘습니다. 이들은 윈도나 오피스 제품군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의 기업들이죠.

하지만 지난 2018년 오픈소스 공유 플랫폼 '깃허브'(75억달러) 인수를 시작으로 마이크로소프트는 클라우드 사업과 시너지를 내는 분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번 틱톡 인수 시도와 제니맥스 인수 역시 클라우드와 관련이 깊어 보입니다.

틱톡은 미국 내 이용자만 1억명에 달하는 인기 서비스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클라우드 시장에서 경쟁하는 구글, 아마존에 비해 이런 인터넷 서비스 경험이 부족하다는 게 약점입니다. 이런 글로벌 서비스 운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웹스케일' 경험이 마이크로소프트에겐 탐이 났을 것입니다. 틱톡을 채간 오라클 역시 최근 클라우드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죠.


게임판을 '구름' 위에 올려라


제니맥스 인수는 단순히 엑스박스 사업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게임 환경을 자체를 클라우드로 전환하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과 맞닿아 있습니다. 21세기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떠오른 게임은 클라우드 기업들이 일제히 노리고 있는 중요한 시장입니다.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넷플릭스'가 클라우드 전환의 성공 사례로 늘 소개되듯, 게임은 다시 한 번 클라우드 산업을 크게 키울 '티핑포인트'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구글은 '스태디아'로 이미 출사표를 던졌고, AWS도 최근 '루나'라는 클라우드 게임 플랫폼을 공개했습니다.

이 분야에서 엑스박스를 보유한 마이크로소프트는 가장 유리한 고지에 있습니다. 이 회사는 지난 2018년부터 게임 스트리밍 기술인 '프로젝트 엑스 클라우드' 개발에 박차를 가해왔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 클라우드는 차세대 엑스박스와 함께 본격적으로 확장에 나설 전망입니다. 콘솔을 중심으로 PC와 모바일 등 모든 게임 플랫폼에서 같은 게임을 동시에 즐길 수 있게 만든다는 전략입니다.

삼성전자 '갤럭시노트20' 스마트폰으로 엑스박스 콘솔 게임을 실행하는 모습. / 사진 = 갤럭시 언팩  영상 캡쳐
삼성전자 '갤럭시노트20' 스마트폰으로 엑스박스 콘솔 게임을 실행하는 모습. / 사진 = 갤럭시 언팩  영상 캡쳐

실제 엑스박스 진영은 앞서 '엑스박스 원' 시절부터 자사 콘솔 게임 독점작을 PC용으로 출시하도록 허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단기적으론 엑스박스의 경쟁력 약화로 나타났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콘솔을 몇대 더 팔기보단 전체 게임 판 자체를 클라우드 인프라에 올려 콘솔, PC, 모바일 등 모든 플랫폼을 아우르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문에 제니맥스 인수로 마이크로소프트가 쥐게 될 콘텐츠 독점력은 단순히 엑스박스 콘솔에 그치지 않고 전 게임 플랫폼에 미치게 될 전망입니다. 앞으로 마이크로소프트가 제시한 클라우드 게임 환경이 자리를 잡는다면 이들은 게임 시장에서 유일무이하게 '인프라-플랫폼-콘텐츠'를 손에 쥔 막강한 영향력을 보유하게 될 것입니다.


게임계의 '넷플릭스' 꿈꾼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앞서 차세대 엑스박스를 발표하며 이용자 친화적인 정책을 발표했는데, 바로 '스마트 딜리버리'입니다. 이 기능을 활용하면 한번 게임을 구매하면 자신이 가진 콘솔에 최적화된 버전으로 즐길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조만간 '엑스박스 원'으로 출시될 '사이버펑크 2077'을 구입한 뒤, 향후 엑스박스 시리즈X로 콘솔을 바꾸면 다시 구매할 필요 없이 새 기기에 최적화된 버전을 즐길 수 있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이용자 입장 박수 칠 일이지만, 회사 입장에선 스마트 딜리버리로 인해 이용자들이 차세대 콘솔 구매를 미룰 수 있다는 부담이 있습니다. 차세대 콘솔이 더 팔리지 않으면 손해 아닌가요? 마이크로소프트는 급하지 않습니다. 대신 구독 서비스인 '엑스박스 게임패스'를 주력 수입원으로 만들 겁니다.

/사진 = 마이크로소프트
/사진 = 마이크로소프트

게임패스에 가입하면 100개 이상의 게임을 콘솔과 PC, 모바일에서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엑스박스 퍼스트파티 게임이 PC나 플레이스테이션 등으로 출시될 순 있어도, 구독 서비스에 포함되는 건 게임패스 독점일 가능성이 큽니다. 예를 들어 '엘더스크롤'이나 '폴아웃' 최신작이 나오면 바로 게임패스를 통해 즐길 수 있게 되는 셈입니다.

이럴 경우 다른 플랫폼을 통해선 수만원짜리 게임을 각각 따로 사야 하는데, 월 1만6700원을 내는 게임패스 이용자는 별도 구매 없이 곧바로 게임을 할 수 있고, 심지어 PC나 모바일 환경에서도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넷플릭스의 게임 버전이 되는 셈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제니맥스를 비롯해 유수의 게임사들을 인수하며 막강한 퍼스트파티 진영을 꾸린다면, 게임패스의 경쟁력은 콘솔 시장은 물론, PC나 모바일 시장까지 삼켜버릴 파급력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애플 아케이드'란 모바일 게임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애플은 앱스토어에 마이크로소프트 클라우드 게임 앱을 등록시켜주는 데 미적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엑박의 매력적인 큰 그림


플레이스테이션5를 살까, 엑스박스 시리즈를 살까. 가능만 하다면 행복한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전까지 플레이스테이션 이용자들은 소니가 만들어준 폐쇄적 환경에서 다른 플랫폼에선 즐길 수 없는 독점작들을 누리며 행복하게 게임을 즐겼습니다.

소니 '플레이스테이션5' /사진 = SIE
소니 '플레이스테이션5' /사진 = SIE

하지만 이번 콘솔대전에선 마이크로소프트가 그려 놓은 '큰 그림'이 워낙 커서 고민이 안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플레이스테이션 독점작만 포기하면, 합리적인 월 구독 서비스와 플랫폼을 오가며 즐길 수 있는 게임 환경까지, 그동안 콘솔 환경을 뛰어넘는 세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치 앞을 전망하기 힘든 9세대 콘솔전쟁, 게이머들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예약구매는 실패했지만 아직 구매를 포기하지 않은 소비자 입장에서도 많이 궁금해집니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