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일운 님 /캐리커쳐=디미닛
안일운 님 /캐리커쳐=디미닛


지난해 11월20일, 싱가포르 통화청(MAS)은 가상자산(암호화폐)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상품에 대한 청문의견서를 발표했습니다. 올해 5월15일에는 그에 대해 개진된 업계의 의견과 MAS의 답변을 정리한 질의응답서와 그에 따라 수정된 증권선물법(Securities and Futures Act) 세부 규정을 발표했습니다.

청문의견서와 질의응답서는 MAS에서 가상자산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의 기조를 전달하고, 관련 업계로부터 의견을 받아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점차 증가하는 가상자산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 체계를 만들어 시장 참여자들이 안전하게 가상자산 파생상품을 거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죠.

싱가포르는 이미 지난해 2월부터 가상자산 중 금융투자상품(증권과 파생상품)으로 해석되는 증권형 토큰과 그렇지 않은 지급형 토큰(디지털 결제 토큰이라고도 하며, 대표적으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 포함됩니다)을 구분해 금융투자상품은 증권선물법에 의해, 그리고 디지털 결제 토큰은 지급서비스법(Payment Service Act)에 의해 규제받도록 한 바 있습니다.

청문의견서는 가상자산 중 디지털 결제 토큰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상품을 인가된 거래소(Approved Exchange)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이런 파생상품 거래는 여타 다른 파생상품의 거래처럼, 증권선물법에 따라 규율될 것으로 보입니다.

싱가포르 내에서는 4개의 거래소가 인가된 거래소로 지정돼 있습니다. 인가된 거래소는 법적으로 더 많은 요구사항을 충족시켜야 하고, 운영 시에도 관리감독을 받기 때문에 투자자 입장에서는 여타의 다른 가상자산 파생상품 거래소보다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명확한 규정과 감시체계에 따라 운영되는 안전한 파생상품 거래시장을 만들 테니,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이 믿고 이용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면서도, 이런 새로운 규제는 인가된 거래소 외의 영역에서 거래되는 가상자산 파생상품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분명히 했습니다. 인가된 거래소가 아닌 사설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이루어지는 가상자산 파생상품을 규제영역에 편입시킴으로써 시장에 불필요한 신뢰를 주지는 않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의견은 일반적인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가상자산 파생상품을 금지하지는 않겠다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후 MAS는 2020년 5월 증권선물법에서 파생상품의 기초자산에 디지털 결제 토큰을 추가하는 해석을 공식화했고, 이에 따라 싱가포르의 인정된 거래소에서는 백트(Bakkt)에 상장된 비트코인 파생상품이 거래되고 있습니다. 


가상자산에 대한 신뢰와 금융


싱가포르의 가상자산 파생상품 거래(정확히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같은 디지털 결제 토큰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상품에 한정됩니다)의 제도권 편입은, 미국에 이어 싱가포르 금융당국에서도 가상자산을 단순히 '블록체인 분산원상 기술의 부산물'이 아니라, 금융의 한 영역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상자산은 분산원장을 기술적으로 완성도 높게 구현했다는 것과, 분산원장의 특성을 기반으로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했다는 점에서 새롭고 또한 대단합니다. 그렇지만 가상자산이 조금 더 대단한 이유는, 그러한 탈중앙화된 전자장부에 힘입어 사람들의 신뢰를 끌어내고, 새로운 금융의 일부로서 발전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금융은 사람들의 신뢰에서 기반합니다. 특정한 재화에 가치가 있다고 신뢰하고, 그 신뢰하는가치를 바탕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이 금융의 본질입니다. 가상자산이 점차 금융의 영역으로 스며들고 있다는 것은 가상자산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도 점진적으로 단단해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싱가포르 통화청은 질의응답서를 통해서, "가상자산의 발전가능성은 새로운 리스크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에 따라 입법자는 그러한 리스크를 경감하면서도, 금융 측면의 신뢰성과 안정성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도록 요구되고 있다"고 기재하고 있습니다. 

금융의 영역으로 들어오고자 하는 가상자산을 세계 각국이 어떻게 다룰지에 따라, 새롭게 나타나는 신금융이 점차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글=안일운
정리=김현기 기자 khk@techm.kr


<Who is> 안일운 님은?

법무법인 비트의 수석변호사다. 주요 업무는 IT 기업과 가상자산/블록체인 기업의 법률 자문, 투자와 M&A 자문이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세계 대학생 프로그래밍 경시대회(ICPC) 한국 본선에서 입상하고 네이버 검색개발센터 과장으로 일하다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진학, 제5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ICT 스타트업 법률 멘토 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IT 블록체인 특별위원회 위원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