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 있어 카트라이더는 평범한 문호준에게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고마운 게임입니다."

e스포츠 역사상 최초의 14회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남기고 14년의 프로게이머 생활을 마무리 한 문호준이 카트라이더 게임을 '은인'이라고 말했습니다. 평범함을 특별함으로 바꿔준 고마운 존재라고 말입니다.


은퇴를 결심하기까지


10살 때 데뷔해 지금은 24살이 된, 문호준 인생의 반 이상을 함께 한 카트라이더. 프로게이머 은퇴를 결정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힘듦이 있을지, 감히 상상조차 가지 않습니다. 아마도 수천번, 아니 수만번 망설였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문호준은 이미 작년부터 리그에 들어갈 때마다 이번 리그를 끝으로 정말 은퇴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변의 만류와 후배들을 위해 계속 은퇴를 미뤄왔죠. 그런 그가 2020년 시즌1 개인전에서 은퇴를 결정한 뒤 결국 2020년 시즌2가 끝난 뒤에는 팀전까지 완전히 은퇴를 선언한 것은 다양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은퇴는 굉장히 오래 전부터 생각했는데 그래도 우승하고 싶다는 목표와 게임을 계속 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해서 은퇴를 미뤄왔어요. 하지만 이번 시즌 개막전에서 샌드박스에게 0대6으로 졌는데도 기분이 나쁘지가 않은 거에요. 원래 지면 승부욕이 끓어 오르고 막 화가 나야 되거든요.

그때 생각했죠. 나 진짜 은퇴할 때가 됐구나, 이렇게 완패를 해도 더이상 이겨야겠다는 승부욕이 생기지 않구나. 솔직히 좀 충격적이었어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그 상황에서 은퇴 결심을 완전히 굳힌 것 같아요."

팬들과 만나지 못한 것도 그의 은퇴 결심을 굳히게 만든 결정적인 원인이었습니다. 프로게이머는 승부의 세계에 종사하는 만큼 스트레스가 심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은 팬들의 응원에서 나옵니다.

"프로게이머가 된 후 이렇게 팬들과 오랜기간 만나지 못한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게다가 엄청난 환호성 속에서 경기를 했는데 갑자기 적막속에서 경기를 하니 힘들더라고요. 사실 저뿐만이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겪는 문제일 꺼에요."

만약 이번 리그에서 준우승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무리 승부욕이 떨어졌다 해도 문호준은 은퇴를 하겠다는 생각을 번복하고 다시 프로게이머에 도전했을 것입니다. 문호준 역시 "번복할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너무 시원하게 우승하고 나니 은퇴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고 말했습니다. 


14년 프로게이머 생활을 돌아보다


문호준의 첫 우승은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2007년입니다. 2006년 데뷔전에서 최종 3위를 차지하며 혜성같이 등장했던 초등학교 3학년 문호준은, 일년 후인 11살 카트라이더 5차 리그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립니다.

"사람들이 가끔 물어봐요. 그때 어땠냐고. 그런데 기억이 나겠어요(웃음)? 그냥 뭣도 모르고 게임만 열심히 했는데 우승이라고 해서 트로피 들고, 사진도 찍고 질문에 대답도 하고 그런 생각만 어렴풋이 나요(웃음)."

그렇다면 문호준의 머리 속에 가장 감명 깊었던 장면은 무엇이었을까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것과 가장 감동적이었던 장면이 약간 달랐습니다. 아마도 누구를 상대했는지, 현장 분위기가 어땠는지에 따라 다르겠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무래도 최근이에요. 우승 후 운 적이 별로 없는데 2020 시즌1 팀전 결승전에서 에이스 결정전까지 갔는데 이재혁과 미친듯이 아슬아슬한 주행을 펼치고 우승했잖아요. 우승 후 울컥하는 모습도 그대로 방송됐고 그래서인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런데 가장 감명 깊었고 소름이 돋았던 장면은 2019년에 펼쳐졌던 야외결승이었죠. 10년만의 야외 결승전에서 몇 천명의 팬들 앞에서, 사실 말도 안되는 역전승으로 개인전에서 우승했잖아요.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소름이 막 돋아요."


그의 유일한 라이벌은 '문호준'


문호준은 라이벌에 대한 질문을 할 때마다 항상 "유일한 라이벌은 내 자신이었다"고 말합니다. 사실 어느 누구도 문호준의 자리를 넘보지는 못했습니다. 리그에서는 문호준에게 한번 이길 수 있을지라도 그의 업적과 기록을 넘볼 수 있는 선수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항상 스스로와의 싸움을 가장 길게 했던 것 같아요. 우승을 하고 난 뒤에는 이를 지켜내야 하잖아요. 사실 그게 제일 어려워요. 도전자의 입장이 아닌 지켜내는 입장에서는 스스로의 나태함과 싸워야 하니까요."

그래도 그의 14년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있을 것 같은데요. 수많은 선수와 만났던 문호준은 그래도 기억에 남는 선수는 '유영혁'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가장 오랜 기간 저와 경기를 함께 했고, 화려하게 복귀했을 때 제 우승을 막은 선수기도 하고요. 문호준 하면 유영혁이었죠. 게다가 아직도 게임을 하고 있잖아요. 기억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다니까요(웃음)."

이번 시즌이 끝나기 전까지만 해도 문호준은 '포스트 문호준'으로 박인수를 꼽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시즌이 끝난 뒤 개인전 우승, 팀전 준우승을 차지한 이재혁을 본 문호준은 생각을 바꿨습니다.

"최근 개인전에서 가장 많이 우승한 선수기도 해요. 아직 이재혁을 뒷받침할 동료들이 부족해서 팀전 우승은 없지만 충분히 캐리할 능력도 가지고 있고요. 몇번 방송을 봤는데 정말 잘하더라고요. 아마 제 기록을 깨는 선수가 나온다면 그건 이재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제 팬이라 하더라고요(웃음)."


문호준에게 카트라이더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가 살아온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 했고 앞으로도 함께 할 카트라이더는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사실 삶의 전부하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저에게 카트라이더는 평범하게 살 수 있는 문호준이라는 사람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 고마운 존재에요. 제가 카트라이더 프로게이머였기에 지금의 위치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카트라이더와 저는 서로 잘 만난거죠(웃음). 이렇게 궁합이 잘 맞는 선수와 게임이 있을까요?

그래서 은퇴가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는 후배를 양성하고 제 그림자에서 벗어나 후배들이 놀 무대를 마련해 주는 것이 제 역할인 것 같아요. 이제는 진짜 저를 뛰어넘는 후배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의 14회 우승이라는 기록을 넘어설 후배가 나올 수 있을까요? 아니 e스포츠 역사에서 그의 기록을 뛰어넘을 수 있는 선수가 있을까요? 단언컨데, 힘들 것이라 생각됩니다. 초등학교 3학년에 데뷔해 14년을 꾸준히 최고의 자리에 있다면 가능하겠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은퇴식도 팬들과 함께 하지 못해 너무 아쉬워요. 항상 응원해주시고 사랑해 주신 팬들이 있었기에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 드리고 앞으로 감독으로서의 문호준, 새로운 모습의 문호준 많이 응원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이소라 기자 sora@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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