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가 아직 지금의 시스템을 갖추기 전 사람들은 돈보다는 의리와 정으로 팀을 택하곤 했습니다. 물론 그것이 좋다고만은 볼 수 없습니다. 성숙한 산업일수록, 프로일수록 자신의 가치를 인정 받는 지표 중 하나는 '돈'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끔은 우리도 돈이 아닌 또다른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에 투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중국에서 백지수표를 싸들고 와도 한국에 남아 있는 '페이커' 이상혁에게 더욱 열광하는 것 역시, 이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많은 카트라이더 팀에서 탐내는 '인재' 박인재 감독은 몇년 째 성남 락스와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그의 지도력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 받았습니다. 문호준 이후 도저히 나타나지 않던 스타를 발굴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지금 카트라이더 리그를 이끌고 있는 박인수, 이재혁 모두 그가 키워낸 선수들 입니다.

비시즌마다 대부분의 게임단에서는 그를 탐냅니다. 그의 손을 거치면 가능성 있는 선수들은 반드시 스타가 되기 때문입니다. 카트라이더에 '감독'이라는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해낸 최초이자 유일한 사람이 바로 박인재입니다.


락스와 의리 지킨 박인재 감독


충분히 몸값을 높여 다른 팀으로 이적할 수도 있지만 박인재 감독은 자신의 꿈을 알아봐준 은인을 저버릴 수 없다며 락스에 아직도 머물러 있습니다. 다소 삭막해진 e스포츠 판에 거의 없는, 신기한 사람입니다.

"카트라이더 리그가 지금은 프로팀도 다수 생기는 등 시스템이 갖춰진 모습이지만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리그 존폐에 대해 이야기가 오갈 정도로 열악했어요. 자비로 팀을 운영하면서 한계에 부딪혔을 때 오로지 가능성만을 보고 지원해준 팀이 락스입니다. 그런데 지금와서 잘 됐다고 바로 인연을 끊을 수는 없어요. 제가 가장 밑바닥일 때 제 손을 잡아준 은인을 어떻게 쉽게 저버리겠어요.

떠나기에는 아직 팀전에서 우승도 못해봤고요. 욕심과 미련이 아직까지 많이 남아요. 만약 제가 너무 지치거나, 새로운 욕심이 나는 기회가 온다면 그때는 고민해 볼 것 같지만 단순히 돈이나 다른 이유로 떠나기는 싫습니다."

카트라이더 리그를 위해서라도 개인적으로는 다른 팀에 가서 다른 선수를 또다시 발굴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지만, 그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독촉할 수만은 없는 일입니다. 은인을 쉽게 저버리지 못하는 그의 성품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2연속 준우승 "아깝지만 아쉽지는 않아요"


두 시즌 연속 준우승을 차지하며 아쉬할 법도 하지만 그는 "큰 아쉬움이 없다"며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최선을 다했고 과정을 통해 배운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죠.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성장하는 락스를 보면서 아쉬움이 아니라, 뿌듯한 마음이 먼저 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2019년 시즌1에서는 4강에 들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2019년 시즌2에서는 안정적으로 4강권에 드는 팀이 됐죠. 2020년 시즌1에는 결승 진출 0순위 팀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는데 2020년 두번 연속 결승 진출을 이뤄내며 결국은 목표를 달성했어요.

물론 눈 앞에서 우승컵을 놓친 것이 아깝긴 하지만 아쉽지는 않아요. 2020년 우승이 목표는 아니었으니까요. 이제 결승 진출 0순위팀이 됐으니 우승 후보 0순위팀으로 만들기 위해 뛰는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

아직은 베테랑이라고 볼 수 없는 선수들과 함께 하는 상황에서 올라갈 곳이 남아 있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박인재 감독. 최고의 자리는 오르는 것보다 지켜내는 일이 더욱 어렵기에 선수들이 경험이 더 쌓인 뒤 우승을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조금은 놀라운 분석입니다.


'감독' 문호준과의 대결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


8개 팀 가운데 박인재 감독은 유일한, 최고의 감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감독에서도 라이벌이 생겨났습니다. 카트라이더 최고의 선수 문호준이 은퇴를 선언하고 감독으로 변신을 선언했죠. 이제 박인재는 문호준과 경쟁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카트라이더 최고의 감독은 박인재입니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커리어죠. 하지만 상대가 문호준이면 박인재 감독도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유일'이라는 타이틀을 떼야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박인재 감독은 여유롭습니다. 선수들을 지도하고 감독하는 스타일이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다양한 스타일의 감독들이 생겨나는 것만으로도 카트라이더 리그 풀이 넓어지는 것이기에 그는 오히려 환영하는 눈치입니다.

"저는 안 되는 선수들이 왜 안되는지 분석하고 그 부분을 두드려 되게끔 만드는 스타일이에요. 모든 선수들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제가 선수 시절 톱클래스가 아니었고 처음부터 잘했던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이죠. 남들보다 재능이 부족했고 열배는 노력해야 했기에 그런 스타일로 지도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문호준은 제가 갖지 못한 것을 가졌죠. 선수시절 수많은 우승 경험과 한 분야에서 최고의 선수로 오랫동안 있던 선수였기에 제가 모르는 무언가를 선수들에게 심어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원래 강했던 선수가 문호준 감독 아래로 들어가는 것은 상상만 해도 무서운 일일 것 같아요."

문호준의 감독 데뷔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는 박인재 감독의 존재 때문일 것 같습니다. 선수든, 감독이든 라이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토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고 서로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될테니까요. 


강석인 합류로 분위기 UP


시즌이 끝난 뒤 곧바로 차기 시즌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박 감독은 조금은 버거웠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늘이 도운듯 카트라이더 리그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잠시 미뤄졌습니다. 천운이 따른 것이죠.

"원래는 마음이 조급했고 빠르게 본선을 준비해야 했는데 여유가 생겨서 다행이에요. 차분히 데이터를 수집하고 스피드와 아이템전 로스터를 다시 구상하고 카트 바디 조합을 연구할 시간을 벌어서 더 좋은 경기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로 합류한 강석인 선수는 오랜 기간 한 팀에서 활동했던 기억이 있어서 친숙해요. 제 말을 잘 따라주고 동료들과 금방 어울려서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습니다. 리그 중반이 넘어가면 엄청난 포텐이 터지지 않을까 기대해요. 차기 시즌 저희 팀에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리그 지연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는 박인재 감독. 항상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성품과 노력하는 끈기가 선수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져, 카트라이더 리그가 더욱 발전하기를 바라봅니다.

이소라 기자 sora@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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