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배원 인테그라디앤씨 대표

정부의 2050년 탄소중립 목표 선언으로 에너지, 산업, 환경, 건축, 수송 등, 거의 모든 분야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산업과 수송 다음으로 탄소배출량이 큰 건물 분야도 이 열기에 한 몫을 하고 있다.

탄소중립 선언 이전부터 이미 건물 분야는 제로에너지 건축물 의무화 제도를 도입해 2020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1000㎡ 이상의 신축 공공건축물은 2020년부터, 500㎡ 이상의 신축 공공건축물은 2023년부터, 1000㎡ 이상의 민간 건축물과 30세대 이상의 신축 공동주택은 2025년부터가 의무 대상이다. 이 제도는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


100 - 16 = 0, 이상한 산수

제로가 되려면 '100-100=0'처럼 양의 숫자와 이를 빼는 음의 숫자가 같아야 한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아는 산수이다. 그런데, 건축분야에서는 이 산수를 다르게 계산한다.

/ 자료 = 국토교통부
/ 자료 = 국토교통부

제로에너지 건물이란 에너지를 쓰는 양과 에너지를 생산하는 양이 같은 건물(이라 말하고 싶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우선, 건물에서 쓰는 에너지 중에 건물 자체를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에너지 외의 다른 전력량 – 예를 들면, 컴퓨터, 핸드폰 충전 같이 사용자들이 꽂아서 쓰는 전기, 플러그인 부하라고 하는 에너지 양 – 은 계산에서 뺀다. 즉, 건물에서 쓰는 에너지 총량이 100인데, 이 중, 플러그인부하가 20이면, 계산은 80에서 시작한다.

이 80 중, 20%인 16을 신재생에너지에서 생산해 충당하면 제로에너지건물 인증 5등급을 부여한다. 즉, 건축계에서는 '100-16=0'인 셈이다. 매 등급마다 신재생에너지 공급 비율이 20%씩 커져서, 1등급을 받으려면 80을 모두 재생에너지로 충당해야 한다. 하지만, 이 또한 '100-80=0'인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대부분의 건물들이 5등급이나 4등급 내에서 끝내려 한다는 점이다. 등급이 높아질수록 약간의 용적률 완화 혜택이 주어지긴 하나, 공공건축물은 일부러 용적률을 높여 지을 필요가 없다. 민간건축과 아파트는 임대·분양면적이 증가하게 되니 확산이 빨라질까? 겉으로만 보면 제로에너지건물을 의무화하기 시작했으니 30년씩이나(?) 남은 2050년까지 희망적인 걸로 보일 수도 있다. 과연 그럴까?


700만동의 건물들이 0이 되려면

2020년 현재, 전국에 약 720만 동(棟)의 건물이 있다. 이 중, 10년 이상 된 건물은 약 600만 동이다. 이 건물들은 아마도 2050년이 되기 전에 최소한 한 번의 대규모 수선(리모델링)을 겪거나, 부서지고 새로 지어질 것이다. 이 720만 동 중, 600만 동이 신축되거나 신축과 다름없는 수준으로 리모델링 되면서 제로에너지건물 인증 3등급을 받고, 2010년 이후에 지어진 건물 120만동은 2050년까지 약간의 리모델링을 겪거나 기존 건물 그대로 사용한다고 가정하자.

720만동의 건물이 사용하는 에너지가 100이라면, 600만동에 해당하는 83.3은 제로에너지 3등급 건물이 되어 재생에너지를 뺀 일반에너지 사용량이 33.3가 된다. 나머지 120만동의 에너지 사용량 16.7은 2050년에도 변함없다. 그럼, 2020년 현재 100인 건물에너지 총량이 탄소중립 시대인 2050년에는 50이 된다. 향후 30년동안 모든 신축·대수선 건물이 제로에너지 3등급을 받는다 해도, 실제 줄어드는 총량은 50인 것이다.

100이 0이 되는 것이 가능한가? 위 가정대로라면, 현재의 에너지 공급체계를 100% 신재생으로 전환하면 건물 측에서 노력할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이는 현재의 에너지 믹스로 보면 쉽지 않아 보인다. 반대로 건물에서 제로에너지건물 의무화만으로는 100이 0이 될 수 없다. 이렇게 쉽지 않아 보인다고, 불가능하다고, 그렇다고 해서 넋 놓고 바라만 볼 것인가?

100을 50으로 만들려면 강제 조항 외엔 달리 방법이 없다. 시장에 맡기기엔 너무 큰 변화다. 정책과 함께 신기술, 건축사의 참여, 금융, 지원제도, 배출권 구매 등, 모든 수단이 총동원되어야 가능하다. 국가도 개인도. 30년 후 노년을 보내며 손주들에게 "할아버지, 노력해줘서 고마워요"란 말을 듣고 싶다.

글 = 고배원
정리 = 남도영 기자 hyun@techm.kr


<Who is?> 고배원 인테그라디앤씨 대표

고배원 대표는 친환경 제로에너지 건축물을 설계하고 연구하는 전문가로 미국과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건물의 에너지 효율화와 탄소중립을 위한 기술 개발을 하고 있으며, 제로에너지 학교를 비롯한 다양한 친환경 건축을 설계한 전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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