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열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사진=세미나 화면 캡쳐
주진열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사진=세미나 화면 캡쳐

"데이터 독점이라는 것은 구체적인 증명이 없는 주장이나 슬로건에 불과하다"

주진열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30일 열린 '데이터 독점론, 그 실체를 분석한다' 정보통신기술(ICT) 정책세미나에서 이같이 말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벤처기업협회, 한국여성벤처협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이번 세미나는 유럽에서 시작된 데이터 독점론에 근거해 온라인 플랫폼 기업에 대한 규제가 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데이터 독점론의 실체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데이터 독점론 'GAFA' 견제 위해 등장...구체적 실체 없다.

이날 발표를 맡은 주 교수는 데이터 독점론은 2010년 초중반 유럽에서 등장한 이른바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에 대한 반대운동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데이터 독점론은 프랑스에서 시작된 GAFA를 반대하는 운동"이라며 "미국 빅테크 기업들에게 유럽 시장이 잠식되는 것을 방어하려는 측면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럽연합(EU)는 GAFA에 대항하고 글로벌 빅테크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지난 2019년 1000억유로(약 133조4450억원) 규모 펀드를 조성한 바 있다. EU의 규제 법안 GAFA를 견제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이다. 

주진열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 사진=세미나 화면 캡쳐
주진열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 사진=세미나 화면 캡쳐

이어 주 교수는 "데이터 독점론이 한국에서 확산되고 있는데, 경쟁법 차원에서 보면 데이터 독점이라는 것은 구체적인 증명이 없는 주장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독점 시장 지배력 평가는 관련 시장을 획정한 뒤 개별적이고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더불어 주 교수는 무료 시장에서는 독점 시장 지배력이 성립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시장 지배력은 유료 시장을 전제로한다"며 "무료 시장과 유료 시장, 양면 시장을 갖고 있는 네이버에 대한 시장 지배력 평가는 유료 시장에서만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 교수는 개인정보 보호 측면에서도 개인정보보호법이나 데이터보호법으로 규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개인정보 보호 문제는 거대 온라인 플랫폼 기업뿐만 아니라 모든 기업에 해당하는 문제"라며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보호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야지 데이터 독점 차원에서 접근해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주 교수는 데이터 독점론에서 주장하는 개인데이터 소유권론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그는 "개인데이터 소유권론이 1990년대부터 일부 미국 학자로부터 주장됐다"며 "개인정보에 소유권을 부여하면 그것을 내 소유다라고 생각해 가치있게 인식할 것이고, 정보 이용 동의에 신중하게 될 것이라는 아이디어 차원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소유권을 부여하자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소유권이 있는 것처럼 다뤄야 한다는 뜻이다.

발표를 마치며 주 교수는 "데이터독점론에 근거한 플랫폼 규제는 정상적인 산업 발전 방해한다"며 "데이터 독점 같이 정의되지 않고, 현실과 괴리된 언어를 쓰면 대단히 위험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맞게 정책 설계돼야

토론자로 참여한 전문가와 정부부처 관계자들도 주 교수의 발표에 대부분 공감했다. 권영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데이터는 다중다색 개념"이라며 "데이터 개념이 확고하게 정의돼 있지 않아 데이터 소유권론은 사상누각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데이터의 귀속과 보호를 확실히 한다고 해도, 오히려 거래비용을 높여 독과점 상태가 강화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권영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사진=세미나 화면 캡쳐
권영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사진=세미나 화면 캡쳐

이경원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EU나 일본은 우리나라와 상황이 다른데 계속 EU 이야기가 언급되고 있다"며 "일본이나 EU가 지향하는 정책적 목표가 우리나라 목표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맞게 정책이 설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봉의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유럽에서의 논의를 보면 경쟁법 차원에서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 유럽 전체가 GAFA 같은 거대 플랫폼에 종속될 수 있다는 차원에서 논의되는 것"이라며 "순수한 정책 이야기가 아니라 산업적 맥락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부처 관계자로 참석한 임경환 공정거래위원회 지식산업감시과 과장은 "기본적으로 데이터를 수집하는 플랫폼 사업자에게 데이터 소유권이 있다고 판단할 수 없지만 베타적인 통제적 이용권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온라인 플랫폼 기업이 경쟁자들에게 데이터를 개방해야 한다는 식의 규제보다는 소비자의 데이터 이동권을 인정해줌으로써 후발 사업자와의 경쟁을 활성하는 것이 세련된 방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성우 기자 voiceactor@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