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혁 님 /캐리커쳐=디미닛
김정혁 님 /캐리커쳐=디미닛

'왜 피자 주문이 안 될까'

스웨덴의 공과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한 공학도가 입사한 경영컨설팅 회사는 적응이 쉽지 않았다. 종종 동네 피자집에 주문하기 위해 집어든 수화기는 늘 통화중이다. 어느날 계속되는 대기시간에 참다못해 인터넷으로 피자집을 연결하는 구상을 실행에 옮긴다.

2007년 27세의 청년이 온라인 피자 주문 네트워크 사이트를 개설하자 지역의 크고 작은 피자집과 동병상련의 고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지구촌 음식배달 신화의 서막을 알린 니클라스 외스트부르그는 스웨덴에서 이웃나라 핀란드,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폴란드까지 네트워크가 확장되자 결심을 한다. 2011년 온라인 푸드배달 사업을 본격화하기 위해 동료 3명과 독일의 베를린에서 '딜리버리 히어로'를 창업한다. 스톡홀름이 아닌 베를린에 회사를 설립한 이유는 유럽시장 거점과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서 지역적인 강점과 또 다른 매력이 도사리고 있었다.


딜리버리히어로가 베를린에서 시작된 이유

당시 독일 스타트업들의 본거지는 함부르크, 하노버, 뮌헨, 슈투트가르트, 라인보다 베를린이 월등히 앞서 있었다. 10만명의 일자리가 생겨난 베를린의 창업 생태계는 전자상거래, 핀테크를 중심으로 소프트웨어 개발, 애드테크, 하드웨어 등 테크 기반의 비즈니스가 대부분이다. 베를린은 독일 전체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금액의 50%와 투자유치 건수도 40% 이상을 차지했다.

독일 내 스타트업 붐으로 베를린은 핀테크 스타트업 생태계가 잘 조성된 허브로 육성되기 시작했다. 독일의 대표 유니콘인 잘란도(Zalando), 헬로프레쉬(Hello Fresh), 홈24(Home24), 딜리버리 히어로(DH)도 베를린에서 둥지를 튼 스타트업들이다.

베를린에서 스타트업 설립은 1주일이 소요되고 정부기관의 다양한 창업 지원금이 문턱을 낮추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실리콘밸리에 비해 세금은 높으나 사무실 임대비용과 물가는 훨씬 매력적이다.

베를린은 다른 테크 도시들 보다 비교적 늦게 출발한 후발주자이지만 빠른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와 창업지원 정책 그리고 낮은 물가와 저렴한 주거비용은 이민자 창업 비율을 높이고 있다. 외국인 고객 비중도 실리콘밸리보다 앞서 나가고 있다. 해마다 수만명 이상이 유입되는 베를린에는 우수한 기술 인력이 모이면서 최첨단 테크시티와 살기 좋은 도시 이미지를 그려 나가고 있다.


게르만민족? 노르딕민족! 배달 앱 시장을 석권하다

베를린에서 창업한 딜리버리 히어로는 해외 시장 공략과 시장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 먼저 선택한 곳은 배달의 민족 한국이다. 한국을 기술과 서비스 측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배달 시장으로 분석한 딜리버리 히어로는 2012년 한국에 자회사 '알지피코리아'를 설립하고 '요기요' 서비스를 내놓았다.

2014년에는 한국 최초로 배달앱 서비스를 시작한 '배달통'을 인수한다. 급기야 2019년 12월 배민의 '우아한 형제들' 지분 인수 계약을 4조7500억원 규모로 성사시킨다. 게르만의 민족이 아닌 노르딕 민족, 딜리버리 히어로는 IT인프라가 우수하고 시장 잠재력이 높은 한국의 배달 시장과 아시아 시장을 더 빠르게 장악하기 위해 투자를 주저하지 않았다. 

갈수록 IT기술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경쟁하는 배달앱 시장은 변화하는 소비자 데이터 취향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반응하고 있다. 푸드 딜리버리 시장은 이제 혁신과 창의적인 경쟁이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다. 이제 세계 각국의 맛집 평가와 배달기술의 딜리버리 매트릭스는 지구촌 소비자의 입맛과 식문화를 맛깔스럽게 유혹하고 있다.

또한 베를린은 유수한 빅데이터와 머신러닝 센터를 중심으로 인공지능 스타트업들의 창업과 개발이 빛을 발하고 있다. 유럽 전역을 대상으로 블록체인과 사물인터넷 기반 4차 산업경제를 이끌 인프라 확충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스타트업 생태계 순위도 10위권으로 도약하면서 MZ세대 창업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도시로 부상하고 있다.


가상자산 규제도 가장 앞서가는 독일

2014년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인정한 최초의 국가는 독일이다. 당시 독일 재무부는 비트코인으로 세금을 납부하고 투자목적의 거래가 가능한 계산화폐로 공인했다. 가상자산이 제도권의 공인을 받은 역사적인 사건이다. 

독일 금융위원회도 통화 발행의 정부 독점 보다는 화폐 발행의 경쟁을 강조했다. 정부가 익명성을 이유로 자금세탁 범죄에 악용되는 가상자산으로만 취급한다면 자유국가 시민들의 통화 선택을 제약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이에 비트코인 비즈니스로 창업하려는 젊은이들의 시선과 발길은 베를린으로 향했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기반의 새로운 비즈니스가 제도권 안에서 생존할 수 있는지 관심은 뜨거웠다. 베를린 시민들이 탈중앙화된 새로운 민간 전자화폐에 대한 커뮤니티를 활성화시키면서 비트코인 도시가 되었다.

블록체인 또한 새로운 산업과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독일 정부의 가상자산에 대한 과감한 법적 지위 부여와 가상자산거래소에 대한 규제는 오히려 블록체인 생태계와 가상자산 산업의 허브로 성장시키고 있다. 

최근 독일 금융감독청은 가상자산을 금융상품으로 공인하면서 기존 증권형 토큰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가상자산을 금융상품으로 인정하고 있다. 독일의 신속하고 시의성 있는 정책과 규제는 투기와 불투명의 장벽을 부수고 건전하고 투명한 디지털자산의 미래를 앞당기고 있다.


혁신에는 아우토반이 필요하다

독일 하면 떠오르는 가상현실이 있다. 전차군단, 폴스바겐, 베토벤, 맥주, 소시지, 아인슈타인 그리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각인되어 있다. 또한 '자동차가 달리는 길'의 뜻을 가진 아우토반도 독일의 대표 브랜드이다. 

아우토반에는 무제한 속도구간과 속도 제한구간이 존재한다. 최고속도가 무제한인 구간은 완전히 다른 세상의 길을 경험할 것이다. 자동차 기술과 성능이 발전하고 있지만 제한속도에 묶여 있는 고속도로는 사실상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기 쉽지 않다.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기술과 새로운 시장이 맞닿는 신세계는 브레이크 대신 엑셀레이터를 힘껏 밟을 수 있는 무제한 구간을 갈망하고 있다. 여기에는 손쉽게 딸 수 있는 면허증 대신 제대로 익히고 법규를 정확히 준수하는 숙련된 운전자만이 주행이 가능한 엄격한 라이센스가 필요하다. 

베를린에서 시작한 푸드 딜리버리는 코로나 시국으로 인류 식습관의 변화를 더욱 앞당기고 있다. 머지않아 독신가구의 주방은 멸망하고 드론배달이 플랫폼 노동자를 굴복시킬지 모른다. 손쉬운 배달 대신 가족을 위한 사랑스러운 요리와 행복 레시피 그리고 손맛이 집집마다 넘쳐 나길 바란다.

 

글=김정혁
정리=김현기 기자 khk@techm.kr


<Who is> 김정혁 님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블록체인 비즈니스, 디지털화폐 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서울사이버대학교 빅데이터·정보보호학과 겸임교수로 핀테크보안,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강의와 글로벌 핀테크 스타트업에서 디지털혁신실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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