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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지시선] 네이버가 임금체불이라니...정부는 '혁신가'를 죽이지 마라

[세가지시선] '유연한' 주 52시간이 필요하다


/사진=구글 행동 강령 캡쳐
/사진=구글 행동 강령 캡쳐

"악이 되지 말자(Don't be evil)"

구글이 초기 모토로 삼았던 이 말은 오랫동안 회사의 정체성을 상징했다. 장기적으로 좋은 일을 하는 회사가 되며, 다른 모든 면에서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란 강력한 믿음과 자부심은 구글이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자양분이 됐다.

하지만 현재 구글이 이 모토를 지키고 있냐는 반론이 내부에서부터 표출되고 있다. 올 1월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에 첫 노조가 만들어지면서 위원장을 맡은 구글 엔지니어 폴 쿨은 뉴욕타임스에 "우리가 구글을 만들었다. 이건 우리가 일하고 싶은 회사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신의 직장' 구글마저...

2014년 10월 '안드로이드의 아버지'로 불리는 최고 임원 앤디 루빈이 성적 비위로 사직했는데, 구글은 사직 이유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 거액의 퇴직금을 지급했다. 이 사실은 2018년이 되서야 드러났는데, 이 사건을 조직적으로 숨긴 경영진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며 전세계 50여개 지사 직원 2만명이 거리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구글. /사진=디미닛 제공
구글. /사진=디미닛 제공

구글의 기업윤리와 소수자 차별 등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인공지능(AI) 전문가 팀닛 게브루는 구글의 AI 기술이 성적, 인종적으로 치우쳐 차별 요소를 가려내지 못한다는 문제를 제기했다가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에티오피아 출신 흑인 여성이라는 점은 구글의 기업윤리와 소수자 차별 논란에 불을 붙였다.

폴 쿨은 "지속적으로 제기된 사내 문제에도 회사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며 "흑인 등 유색인종과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비윤리적인 노동환경에 대해 소수의 부유한 임원들은 말뿐인 약속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네이버·카카오도 '성장통'

2000년대 구글은 높은 연봉과 각종 복지 혜택, 자유로운 업무 분위기, 수평적 문화 등으로 '신의 직장'이라 불리며 IT 분야 종사자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높은 동기를 부여하며 최대의 창의력을 이끌어내는 구글의 조직문화는 실리콘밸리를 넘어 전 세계 IT 기업들에게 영감을 줬다.

하지만 'IT 공룡'이 된 구글은 군과의 공동사업, 중국의 검열 체계에 맞춰 설계된 검색엔진 개발 등으로 직원들과 번번히 마찰을 겪었고, 이 과정에서 직원들을 감시하고 억압한다는 비판에 부딪히며 신의 직장이란 명성을 잃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동일한 직무를 수행해도 여성 직원에겐 남성 직원보다 적은 임금을 줬다는 혐의로 집단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사진=네이버
사진=네이버

국내에서 '취준생이 가장 가고 싶은 직장'으로 손꼽는 네이버와 카카오도 최근 비슷한 내홍을 겪고 있다. 내부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회사의 고속 성장에 비해 과실을 충분히 나누지 않는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고, 근로노동법 위반 사항까지 발표되며 한 순간에 이미지가 추락했다. 언론에선 IT 기업들의 몸집이 커지며 수평적 조직문화 시스템의 허상이 드러난 것이라는 분석이 잇따랐다.

특히 네이버는 지난 5월 직속 상사로부터 지속적인 폭언과 모욕적 언행을 겪은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하며 내홍이 극에 달하고 있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네이버의  직장 내 괴롭힘을 확인했으며, 조직문화 개선이 시급하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네이버는 "이번 특별근로감독 등을 계기로 그 동안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부분들이 많았음을 확인하게 됐다"고 입장을 밝혔다.


'네이버다운' 해결책 제시하길

네이버 경영진은 조직문화 개선을 하반기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네이버 이사회는 연말까지 새로운 조직 체계를 구성해 경영 쇄신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네이버 창업자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도 이번 사건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임직원들에게 전면 쇄신을 약속했다. 이 GIO는 한 두명 징계로 끝내는 게 아닌, 더 젊고 새로운 리더를 통해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해결책을 찾겠다고 전했다. 경영진과 창업자가 직접 나서 쇄신을 약속한 만큼 큰 폭의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총괄(GIO)/캐리커쳐=디미닛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총괄(GIO)/캐리커쳐=디미닛

네이버가 즉각적이고 책임감 있는 대응에 나섰다는 점은 다행이다. 그간 이 GIO는 네이버를 구글과 페이스북 등 빅테크들의 '인터넷 제국주의'에 끝까지 맞선 기업으로 남기고 싶다는 의지를 밝혀왔다. 국내 부동의 '포털 1등'에 안주하지 않고 끝없이 혁신하며 글로벌 시장의 높은 문을 두드리는 것은 이런 의지의 표현이다. 이런 시도들이 최근 웹툰의 글로벌화, 소프트뱅크와 라인의 범아시아 메가 플랫폼 동맹 등의 성과로 드러나고 있다.

최근 네이버는 이커머스로 발을 넓히며 중소상공인들과 성장을 함께 한다는 모토를 충실히 지켜나가고 있다. 구글의 과거 모토처럼 '사악해지지 않는' 성장을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인 모습이다. 네이버가 커진 몸집에도 아직 이런 역동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게 하는 지점이다.


제도가 기업 역동성 발목 잡지 않도록

고용부 특별근로감독 결과가 발표된 날 네이버는 "역사상 가장 경쟁이 치열한 혁신 산업인 인터넷 시장에서 생존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왔다"며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네이버가 지난 22년간 지속적인 성장을 일궈낼 수 있었던 중요한 원동력은 뛰어난 인재들이 책임감을 갖고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었던 문화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네이버는 조직문화 관련 안팎의 지적에 대한 경청과 개선에 대한 숙고, 총체적인 변화를 약속했다. 허나 그간 일궈 온 '자율과 책임'의 조직문화에 대한 자부심까지 버리진 않았다. 이번 근로감독에서 '86억원'의 임금을 체불한 기업이 된 점은 이런 네이버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혔다.

업계에선 인재 모시기 경쟁이 치열한 현 IT 기업 환경에 네이버가 86억원을 아끼기 위해 부당한 개입이나 지시를 했을 리 없다는 반응이다. 오히려 선택근로제를 도입하며 업무의 시작과 종료 시간 체크 등을 전적으로 직원의 '자율'에 맞긴 점이 부메랑이 됐다.

IT 업계에선 "터질 게 터졌다"며 주 52시간제의 허점을 지적하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네이버는 사옥에 카페, 병원, 은행, 수면실 등 다양한 휴게 시설을 두고 자유롭게 이용토록 하고 있다. 노동부 기준대로라면 이런 시설 이용까지 포함해 사내에 상주한 시간을 모두 노동시간으로 간주해 초과근로 수당을 챙겨줘야 한다. '시간=성과' 등식이 성립되지 않는 IT기업 입장에선 곤혹스런 기준이다. 

기업은 구글을 넘겠다고 글로벌 무대로 달려 나가는 데, 안에서 경직된 제도가 발목을 잡진 않을지 우려스럽다. 회사가 직원들을 쫓아다니며 쉬는 시간까지 일일이 체크해야 하는 노동환경에서 과연 빅테크를 뛰어넘는 창의력과 자발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저하하지 않도록 더 세심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