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자. 나쁜 말은 아니지만 사실 선수 입장에서는 마냥 듣기 좋은 말도 아닙니다. 2인자로써도 분명히 가치가 있지만 결국은 최고의 선수 자리는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죠.

팀전으로 펼쳐지는 카트라이더 리그에서는 각 팀에 2인자가 반드시 존재합니다. 리브 샌드박스의 김승태, 락스 게이밍의 송용준, 블레이즈의 최영훈 등 다양한 선수들이 2인자로서 팀이 우승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습니다.

오늘은 수많은 2인자들 중 리브 샌드박스 김승태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자 합니다.


떡잎부터 달랐던 김승태

9년 전, 문호준과 유영혁을 이을 선수가 나타났다며 카트라이더 리그를 들썩이게 만든 선수가 있었습니다. 실력도 좋았고, 외모도 출중했으며 인성도 훌륭했기에 이 선수라면 카트라이더 리그에서 새로운 레전드가 탄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오존에서 유영혁과 같은 팀에서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나갔고, 경험까지 더해지면서 슈퍼 루키로 성장한 이 선수는 2012년 카트라이더 15차 리그 조별 예선에서 당당하게 조1위를 차지했습니다. 당시 이중대, 박현호 등 강한 선수들을 제치고 차지한 1위이기에 관심이 모일 수밖에 없었죠.

2012년 김승태(오른쪽)/사진=넥슨 제공
2012년 김승태(오른쪽)/사진=넥슨 제공

2013년 김승태는 17차 리그에서 김경훈과 한팀을 이뤄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데뷔 후 2년 만에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낸 김승태는 유망주 명단 가장 앞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 놓았습니다. 김승태는 그렇게 데뷔하자마자 문호준-유영혁-전대웅으로 이어진 '빅3'를 위협할 신예로 주목 받기 시작했습니다. 


화려했던 데뷔, 그리고 정체기

데뷔는 화려했지만 김승태는 꽤 오랜 기간 정체기를 겪었습니다. 물론 김승태의 실력이 막 피어오를 무렵, 카트라이더 리그가 중단된 이유도 있지만 같은 팀에 유영혁이라는 최강 선수가 있었기에 김승태는 2인자 이상도 이하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놓이게 됐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데뷔했던 초창기와 달리 김승태는 꽤 오랜 시간 정체기를 겪었습니다. 김승태가 속한 팀은 계속 우승컵을 들어 올렸지만 유영혁만 조명됐을 뿐 김승태의 이름이 불리는 일은 거의 없었죠. 그도 그럴 것이 에이스 결정전에 출격하는 선수가 유영혁이다보니 김승태는 자신의 실력을 증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한동안 카트라이더 리그가 개인전이 아닌 팀전으로만 치러졌기에 김승태는 그렇게 유영혁의 그림자에 가려져 '만년기대주'라는 호칭에 만족해야 했죠. 데뷔 때 쏠렸던 관심은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져갔습니다.


유영혁을 뛰어 넘은 대통령배 우승

김승태가 다시한번 팬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6년 대통령배였습니다. 당시 카트라이더 종목에는 쟁쟁한 프로들이 모두 참가해 또 하나의 카트라이더 리그로 주목 받았습니다. 그리고 개인전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리그기도 했죠.

김승태에게는 통곡의 벽이었던 유영혁/사진=넥슨 제공
김승태에게는 통곡의 벽이었던 유영혁/사진=넥슨 제공

김승태는 결승전에서 또다시 유영혁을 만났습니다. 한번도 유영혁을 넘어본 적이 없었던 김승태였기에 결승전에서는 당대 최강으로 불리는 유영혁의 무난한 우승이 점쳐졌습니다. 그를 위협할 선수로 꼽혔던 것은 당시 카트라이더 리그 팀전에서 이름을 날리던 이재인 뿐이었습니다.

90점 선취 방식의 결승전에서 김승태와 유영혁은 93점으로 둥률을 이뤘고 결국은 또 한번의 경기로 다시 1위를 선정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압박감이 상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모두가 유영혁의 우승을 예상했습니다.

게다가 초반 김승태는 사고에 휘말리며 7위까지 떨어지고 말았고 유영혁은 상위권에서 안정적으로 주행을 하고 있었죠. 이대로 경기가 흘러가면 유영혁의 우승은 따논 당상이었습니다. 이대로 김승태는 또다시 유영혁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는 듯 했죠.

하지만 김승태는 이를 악 물었고, 평소와는 다른 과감한 라인 공략으로 1위까지 치고 올라갔습니다. 김승태의 날카로운 라인 어택으로 상위권은 몸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졌고 이에 유영혁이 완전히 밀리면서 김승태가 생애 첫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승승장구 할 줄 알았던 김승태...또다시 박인수 벽에 부딪히다

유영혁을 뛰어넘은 김승태에게 기대가 모아진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실제로 대통령배 이후 김승태는 카트라이더 리그에서 주목할만한 활약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부활한 개인전에서 또다시 유영혁을 꺾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으니까요.

같은 팀이 된 김승태(왼쪽에서 두번째)와 박인수(맨 오른쪽)/사진=넥슨 제공
같은 팀이 된 김승태(왼쪽에서 두번째)와 박인수(맨 오른쪽)/사진=넥슨 제공

하지만 여전히 김승태는 1인자가 아니었습니다. 팀전에서 결국 유영혁이 항상 에이스 결정전에 출격했고 김승태는 2인자였습니다. 당시 아무리 개인전 우승 경력이 있다고 해도 팀전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에 에이스 결정전 한번 출격하지 못한 김승태를 1인자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죠. 

결국 김승태는 유영혁의 품을 떠나 새로 팀을 결성합니다. 그것이 지금의 리브 샌드박스입니다. 신예들로 구성된 리브 샌드박스에서 선수들을 이끌 맏형으로 영입됐기에 김승태가 드디어 1인자로 올라설 것이라는 기대가 모아졌죠.

하지만 또다시 여기에서도 김승태는 1인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새파란 신예인 박인수가 박인재 감독의 지도하에 엄청나게 성장했고, 결국 팀 에이스는 박인수 차지가 됐죠. 유영혁의 그늘에서 겨우 벗어났지만, 또다시 박인수의 그늘에 갖히게 된 것입니다.


결정적e장면...유영혁, 박인수를 단번에 뛰어넘다

그렇게 리브 샌드박스에서 김승태는 2인자로서 팀전 우승 기록을 차근차근 쌓아 갔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는 2인자 자리도 박현수에게 내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개인전에서도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죠.

리브 샌드박스 김승태/사진=넥슨 제공
리브 샌드박스 김승태/사진=넥슨 제공

그렇게 또다시 팬들에게 잊혀졌던 김승태. 사실 일련의 과정에서 김승태는 한번도 1인자에 대한 욕심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에이스 결정전에 나가고 싶지 않냐는 질문에 항상 "에이스는 내 몫이 아닌 것 같다"고 손사레를 쳤습니다.

욕심이 없는 선수가 최고의 선수가 되는 경우를, 14년 e스포츠 기자 생활 동안 단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실력은 출중했지만 항상 욕심과는 거리가 멀었던 김승태를 보며, 2인자로 머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 김승태가, 이번 시즌에는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21 신한은행 헤이영 카트라이더 리그 16강 개인전에서 그는 박인수, 배성빈, 유영혁 등 쟁쟁한 선수들을 모두 제치고 당당하게 1위에 올랐습니다. 더이상 이렇게 2인자로 살수만은 없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결정적e장면...김승태가 유영혁-박인수보다 위에 존재한다/사진=중계화면
결정적e장면...김승태가 유영혁-박인수보다 위에 존재한다/사진=중계화면

이미 실력은 인정 받았던 김승태가 욕심을 내게 되면, 카트라이더 리그 판세가 조금은 달라질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해 봅니다. 어쨌건, 몇 없는 개인전 우승자이기도 하니까요. 자신의 입으로 "욕심이 난다"고 말한 만큼, 이번 시즌에서는 만년 2인자 꼬리표를 떼어내기를 바라 봅니다.

이소라 기자 sora@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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