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진 코빗 책임연구원/사진=NDC 2022 행사영상 캡처
백영진 코빗 책임연구원/사진=NDC 2022 행사영상 캡처

지난해 게임업계 역사에 두고 두고 회자될만한 일이 있었다. 16년 5개월 동안 네오플에서 '던전앤파이터' 서버를 만들어온 백영진 당시 개발자가 정년퇴임한 것. 현재 그는 가상자산거래소 코빗에서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며 인생 2막을 열었다.

10일 온라인으로 열린 넥슨개발자회의(NDC 2022) 행사에 연사로 나선 그는 발표를 통해 게임 개발자가 된 이유와 과정, 정년퇴직을 위한 비결을 공유했다.

백 연구원이 게임 개발자가 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컴퓨터 관련학과에 진학하기를 원했던 그는 성적이 모자라 농과대학으로 진학했고, 그곳에서 토목을 전공했다. 그러나 약한 몸으로 군 면제를 받은 탓에 졸업 후 취업 문턱을 넘지 못한 그는 구로 공단에 위치한 정밀 기계 공장에서 10만원 남짓한 월급을 받는 주야간 2교대 직원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던 어느 날 홀로 술을 마시던 백 연구원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혼자 술을 많이 마시던 날 차라리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고생하는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모아둔 급여를 탈탈 털어 청계천 전자상가를 찾아 애플 2 컴퓨터 본체를 구입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애플 2 컴퓨터 롬에서 돌아가는 베이직을 학습했는데, 하고 싶은 일을 하니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후 컴퓨터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느낀 백 연구원은 애플 2 컴퓨터 본체를 구입했던 가게에 무작정 찾아갔다. 그는 "일주일을 매일 찾아가서 조르니 마침내 취업을 시켜줬다"며 "그 때부터 중고제품을 새 것으로 만들어 팔기도하고, 지식재산권(IP) 개념이 없던 탓에 5와 4분의 1 플로피디스크에 소프트웨어(SW)를 복사해 장당 5000원에 파는 등 기초지식을 쌓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로부터 몇년이 지난 1991년 백 연구원은 PC게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불혹'의 나이에 게임업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IMF 사태 이후 '닷컴 시대'가 열리던 때로 수많은 게임기업들이 탄생과 스러짐을 반복하던 시기였다. 백 연구원도 몇 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당시 '던전앤파이터'를 오픈 베타테스트하고 있던 네오플에 입사해 서버 개발 및 패치 콘텐츠 기획 업무를 맡았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니 만족했을 뿐만 아니라 던파 동접이 늘어나면서 최고가 되는 순간을 맛봤고 행복했다"며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최고의 실력자라는 생각과 함께 꿈을 이뤄 기뻤다"고 소회했다.

백 연구원은 정년퇴직까지 게임 개발자로 있을 수 있었던 비결은 '좋아하는 일'을 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저는 커리어 관리를 한 적이 없고, 다만 좋아하는 일을 했을 뿐"이라며 "자연스럽게 경력관리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면 그 일을 끝까지 해낼 힘과 에너지가 생기게 된다"며 "중간에 다른 일을 하게 되면 거기서 단절이 생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직업을 선택한다는 건 인생을 맞바꾸는 일"이라며 "게임업계 미래는 더 불확실해져서 고민이 많겠지만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하다보면 그 일에 도가 트이고, 관련된 다른 일도 연관지어 쉽게 접근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롱런해서 결국 꿈을 이루게 된다"고 조언했다.

끝으로 백 연구원은 용기를 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영화 빠삐용에서 주인공은 여러 죽을 고비를 넘기고 무인도에 갇히지만, 망가진 몸을 이끌고 야자수로 만든 뗏목을 이용해 탈옥을 시도한다"며 "여러분이 선택한 꿈은 용기있는 자만이 이룰 수 있고,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인생이라는 시간과 맞바꾸는 일이끼 때문에 성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역설했다.


김가은 기자 7rsilver@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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