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지시선] 코로나 '영웅'이었는데…한 순간 사고로 '역적' 내몰린 카카오

2022-10-19     남도영 기자

기자 중심의 뉴스를 지향하는 테크M이 한 이슈에 대해서 IT전문기자 세명이 서로 다른 시선에서 이슈를 분석하는 '세가지시선' 기획기사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슈를 바라보는 여러가지 시각을 독자분들께 전달하기 위해, 기자들은 사전 논의 없이, 각자의 시각에서 이슈를 분석합니다. 사안에 따라 세명의 시선이 모두 다를수도, 같을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양한 시각이 살아있는 세가지시선에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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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카카오 창업주 /캐리커쳐=디디다 컴퍼니

"카톡의 영향력이 이 정도였나 새삼 느꼈다"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평소 10분만 장애가 나도 뉴스판을 뒤덮는 카카오톡이 하루를 멈추자 마치 대한민국이 멈춘 것처럼 야단이 났다. 카카오톡 뿐만 아니라 카카오페이, 카카오T, 카카오게임즈, 카카오맵, 다음 등 다른 카카오 계열 서비스가 대부분 작동을 멈추자 이용자들은 혼돈에 휩싸였다. 카카오의 서비스들이 우리 생활 구석구석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는지, 멈추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됐다.


주인집에 불이 났는데...입주민에게 쏟아진 비판

카카오 주요 13개 서비스는 지난 15일 최초 장애 발생 이후 나흘이 아직도 100% 복구되지 못하고 있다. 카카오 창립 이후 최악의 장애 사고다.

원인 자체는 명확하다. 카카오의 메인 데이터센터가 입주한 SK C&C 판교캠퍼스 화재로 인해 전체 3만2000대 서버가 한꺼번에 꺼졌다. 데이터센터는 천재지변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하는게 기본이기 때문에 전기실 화재 발생으로 한 번에 모든 서버가 중단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건 이례적 상황이다.

사고 이후 카카오의 조치에 대한 비판이 불거졌다. 전 국민이 사용하는 일명 '국민 메신저'인데, 재해복구(DR) 센터 운영과 이중화 조치 등 사고에 대한 대비가 부족한게 아니었냐는 지적이다. 불은 서버를 맡겨 놓은 데이터센터에서 났는데, 미처 이사를 못한 입주민 카카오가 더 큰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다.

일각의 지적처럼 재해복구(DR) 센터를 통해 시스템을 완벽히 이중화 하려면 말 그대로 최소 2배 이상의 운영비가 든다. 24시간 무중단 운영이 필수적인 금융권도 전체 업무가 아닌 일부 핵심업무 위주로 이런 시스템을 운영한다. 카카오톡은 월 활성사용자 4600만명의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이다. 한달 사용 시간은 올 4월 기준 296억분에 달한다. 기본적으로 메시지 서비스이기 때문에 완벽히 실시간으로 운영돼야 한다. 트래픽 규모 자체가 차원이 다른 카카오톡 수준의 서비스를 그대로 이중화하려면 천문학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왜 투자 안했냐" 비판이 억울한 이유

카카오를 향한 비판 중 하나는 그동안 독점적 지위를 누려오면서 이런 투자도 제대로 안했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

지난 2년 여 간 코로나19 특수를 맞아 인터넷 업계는 호황을 맞았다. 카카오 역시 실적이 수직상승했다. 지난해 카카오는 연간 매출로 전년 대비 48% 늘어난 6조1361억원, 영업이익은 31% 증가한 6000억원을 기록했다. 눈부신 성장세와 더불어 카카오게임즈,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등 자회사들이 연이어 상장하며 기업가치가 수직 상승했다.

하지만 막상 카카오가 돈을 벌기 시작한 건 고작 3~4년에 불과하다. 지난 2018년 4분기, 카카오의 영업이익률은 0%를 기록하며 '전 국민이 사용하는 서비스를 가지고도 돈을 못 버는 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이용자들의 편익을 고려해 10년 가까이 광고 하나 달지 않고 서비스를 이어왔고, 막대한 투자와 기술 고도화를 통해 국가적 인프라를 쌓았다. 그 덕에 국민 메신저라는 칭호를 얻었으나, 수익적인 측면을 보면 '공익 플랫폼'에 가까웠다.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전국민은 카카오톡을 통해 무료로 QR체크인, 공적 마스크 정보 제공 시스템, 잔여백신 예약 시스템 등의 서비스를 활용했다. 전 국민이 사용하는 인터넷 서비스에 기반한 신속한 감염병 대응은 전세계적인 모범사례로 꼽혔다. 민간기업으로, 벤처기업으로 성장해 이만한 사회적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와서 왜 더 투자를 하지 않았냐고 비판하는 건 모순적인 부분이 있다.

더구나 이번 사고에서 문제가 된 데이터센터 투자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최근 이익을 내기 시작한 카카오는 곧바로 경기 안산시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에 12만대 서버를 보관할 수 있는 하이퍼스케일급의 자체 데이터센터를 짓기 시작했다. 약 4000억원이 투입되는 이 데이터센터는 2023년 완공될 예정이며, 이어 서울대 시흥캠퍼스에 2026년까지 2호 데이터센터 설립도 추진 중이다. 지금까지 자체 데이터센터도 짓지 않고 안일하게 사업을 운영했다는 비판도 옳지 않은 지적이다.


민간 서비스가 국가인프라? 독과점 규제 논의까지 번져

지난 2~3년 간 카카오가 큰 성장을 거두자 정치권과 언론에 카카오가 마치 수많은 그룹사를 거느린 재벌기업처럼 비쳐지기 시작했다. 100인의 벤처기업가를 키워 함께 성장하겠다던 창업주 김범수 의장의 비전은 골목상권 침해와 문어발식 확장 논란으로 번졌고, 결국 기존 사업의 확장을 멈춘채 떠밀리듯 '비욘드 코리아, 비욘드 모바일'이란 새로운 전략방향을 제시해야만 했다.

코로나 특수가 지나고 인터넷 업계가 전반적인 하향세로 돌아선 가운데, 카카오 역시 이전만한 성장세를 발휘하기 어려운 환경이 되고 있다. 여기에 상장 당시 과열된 공모시장으로 높은 기업가치를 받았던 자회사들이 최근 고금리 기조에 따른 시장 냉각으로 주가가 급락하며 투자자들의 불만도 최고조에 이른 상황이다.

다방면에서 카카오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 이번 사고까지 겹치자 정부와 정치권은 카카오의 공적 책임을 무겁게 언급하면서 플랫폼 독점을 단속해야 한다는 논의로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카카오톡 중단 사태와 관련해 "민간기업에서 운영하는 망이지만 사실상 국민들 입장에서는 국가기간통신망과 다름없다"고 언급했고, 이어 공정거래위원회는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 및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심사지침' 제정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10년 넘게 스스로 성장해 이제 막 수익을 내고 있는 민간기업의 서비스에 '국가인프라'라는 족쇄를 채우는 것도 모자라, 전 세계 시장을 독점해 온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글로벌 빅테크에 맞서 시장을 지켜온 토종 서비스를 오히려 우리 정부가 규제로 옭아매겠다는 상황이다. 그동안 정부가 글로벌 빅테크의 사업 행태에 실효성 있는 집행을 한 적이 없다는 점을 두고 보면, 플랫폼 기업들에 대한 규제 칼날은 결국 국내 사업자들에게만 피해를 줄 것이란 예상이 가능하다.

이번 카카오 서비스 중단 사태를 빌미로 여론에 떠밀린 정치권과 정부가 섣불리 규제 칼날을 들이밀 경우 국내 인터넷 산업 전반의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최근 카카오, 네이버 등 국내 인터넷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 개척을 위한 막대한 투자를 감행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규제 역차별로 인해 내수시장을 글로벌 빅테크들에게 내주게 된다면 국내 산업 자체가 고사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