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진맥] '도대체 어떻게 더 공정하게 하란 말이죠?'...CEO '외풍'에 흔들리는 KT
#KT 차기 CEO 경선 과정에 '또' 반대한 정부와 여당
#정관이 정한대로 해도 납득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차라리 그냥 누구라고 정해줘라'는 댓글이 뼈아프다
"최종 4명 중에 원하는 사람이 없을수도 있어요."
"에이, 설마요. 저희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더 어떻게 공정하게 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요, 설마 또 그러겠어요?"
지난달 28일 MWC가 열리고 있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KT 관계자와 만나서 나눴던 대화입니다. 이날은 KT 차기 CEO 최종 후보 4인이 발표된 날입니다.
저는 MWC 취재를 위해 스페인에 나와 있었기 때문에 현지 분위기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사실 농담을 섞어서 저런 말을 했었습니다. 정말 '설마'했습니다. 그런데 그 설마가 정말 현실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KT 차기 CEO 경선 과정에 또 쓴소리 낸 여당과 용산
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KT 이사회는 차기 대표 후보면접 대상자 4명을 발표했다"며 "그러나 전체 지원자 33명 중 KT 출신 전현직 임원 4명만 통과시켜 차기사장 니선이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해버렸다"고 했습니다.
용산 대통령실도 거들었습니다. 이날 오후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부는 '기업 중심 시장경제'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민생에 영향이 크고 주인이 없는 회사, 특히 대기업은 지배구조가 중요한 측면이 있다"고 했습니다.
또 그는 "공정·투명한 거버넌스가 안되면 조직 내에서 모럴 해저드가 일어나고, 그 손해는 우리 국민이 볼 수 밖에 없지 안느냐는 시작에서 보고 있다"고 했다고 합니다.
사실상 최종 4명 후보에 대한 '반대' 입장을 여실히 들어낸 것이죠.
정관대로 해도 문제 삼아...정관대로 하지 말란 소리인가
이번 KT의 차기 CEO 경선을 보면, 정말 KT가 사기업인지 공기업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KT 정관이 정한 차기 CEO 선임절차를 정관대로 진행하고 있는데 자꾸 외부에서 압력이 들어옵니다.
구현모 대표의 연임 도전과 철회 과정에서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긴 힘듭니다. 설사 문제가 있다면, 정관을 수정하는 것이 먼저겠지요. 현재 정해진 절차에 따라서 진행했는데도 결국 구 대표가 스스로 연임 포기를 선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누구도 '외압'이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누구나 '외압'이라고 생각하는 이유 때문이겠죠.
새 CEO 선임 과정도 그렇습니다. KT 이사회는 공정하지 못하다는 외부의 지적을 수용, 이보다 더 투명할 수 없을 정도로 신경을 많이 섰습니다. 외부 전문가 5인을 인선자문단으로 구성해 사내외 후보 압축 작업을 했죠.
혹시라도 있을 '개입'을 우려해 전문가 5인에 대한 정보도 최종 후보 발표때까지 철저히 비밀로 했습니다. 그리고 국민연금을 비롯한 30대 주주 및 KT 노동조합으로부터 수렴한 의견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내·외 후보자들을 검증습니다.
그렇게 나온 최종 후보가 지난 28일 발표된 4인의 후보입니다. 공교롭게도 모두 전현직 'KT맨'입니다. 정치권에서 도전장을 던진 후보들은 모두 고배를 마셨습니다. 그런데도 또 정부와 여당이 '반대'를 하니 KT는 당혹스러울겁니다. 혹시 정관대로 하지 않길 바라는 걸까요?
언제까지 5만명 넘는 직원들을 흔들어대야 하나
물론 KT 출신이 아니라고 해서 KT를 잘 이끌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KT 사정을 잘 알아야 KT를 잘 이끌 수 있는 것이란 것은 누구나 예측할 수 이는 부분입니다. 'KT맨'이 아니라면, 누구나 납득할만한 이유와 근거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통신산업은 정부로부터 주파수를 할당받아 망을 구축하는 사업입니다. 수익모델인 요금제도 정부의 규제를 받죠. 정부의 정책이나 규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산업인 것입니다. 그래서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당의 압박에 대통령실 발언까지 더해졌으니, 차기 CEO 경선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이석채 회장에 이어 CEO를 한 황창규 회장, 그리고 그 뒤를 이어 CEO를 한 구현모 대표까지...외압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누구나 납득할만한 역량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앞선 두번의 대표 교체때도 이 정도까지 고난을 겪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CEO 선임 과정이 길어지면서 KT 업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여러 언론보도들을 통해 접하고 있으실겁니다. 통신사들의 글로벌 마케팅 경연장인 MWC에서도 힘이 빠진 것이 사실입니다.
선장이 없는 배는 어디로 갈까요? 선원들이 납득할 수 없는 선장은 배를 어떻게 운영할까요? 재계순위 12위, 직원 수만도 5만명이 넘는 KT호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이럴거면 차라리 '누구'라고 얘기를 해주면 좋겠다"는 기사의 댓글에 참 마음이 아픕니다.
바르셀로나(스페인)=허준 기자 joon@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