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카카오 때려잡은 '빈자리'...'공정' 아닌 '구글·MS'만 남는다

2023-06-08     이영아 기자
/그래픽=디디다컴퍼니 제작

"정부는 독과점을 없애겠다고 하지만, 네이버나 카카오 등 국내 플랫폼이 사라진 자리에는 '공정성'이 아닌 '해외 거대 플랫폼'이 들어설 뿐이다."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 논의가 급물살을 타자, 업계 관계자들이 한숨을 쉬며 이구동성으로 내뱉는 말이다. 플랫폼 기업의 '자율규제'를 강조하던 윤석열 정부가 최근 '법률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태도를 바꾸고 있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공정거래위원회는 별도 독과점 규제법을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사실상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대형 플랫폼 기업을 겨냥하는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구글·애플·마이크로소프트(MS) 등 해외 사업자는 국내법 적용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또 온플법은 네이버·카카오 등 대기업 뿐만 아니라 스타트업과 영세 상인의 성장을 옥죌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전세계 '자국 플랫폼 육성' 방점...한국은 정반대

8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태스크포스(TF)는 지난달 말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사전 규제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TF 의견을 토대로 규제안을 공개하기로 했다. TF는 오는 7월까지 규제안을 발표할 계획이었으나, 최근 일정이 당겨졌다. 

정부가 사실상 '자율규제'에서 '법률규제'로 선회한 것이란 평가다. 이미 국회에 발의된 플랫폼 규제 관련 법안이 19건에 달한다. 세부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법안들의 핵심은 플랫폼과 입점업체간 기업간 거래, 플랫폼과 소비자간 거래에서 플랫폼의 책임을 강화하고 문제 발생시 플랫폼의 의무를 무겁게 하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플랫폼 시장의 혁신 경쟁을 저해할 수 있단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입장문을 내고 "온플법이 법제화될 경우 국내 플랫폼 기업의 혁신 시도는 위축될뿐더러국내 스타트업은 엑시트가 어려워지고 유니콘 기업으로의 성장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내에 형성된 온라인 플랫폼 규제 분위기는 글로벌 흐름과 배치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위의 플랫폼 사전 규제안은 유럽의 디지털 시장법(DMA)과 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작 유럽은 국내 상황과 정반대로 '자국 플랫폼 보호'에 초점을 맞췄다. DMA에 해당하는 유럽 기업은 거의 전무하고, 미국 기업만 규제 대상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미국은 지난해 말 '플랫폼 독점 종식 법률' 등 빅테크 규제 법안을 줄줄이 폐기, 자국 기업 육성에 나섰다.


네이버·카카오만 위협?...스타트업 생태계 위축

글로벌 빅테크가 국내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워가면서 국내 플랫폼 기업들은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 놓였다. 이미 글로벌 기업의 국내 시장 잠식은 심화되고 있다. 포털(구글), 미디어(넷플릭스), 클라우드(아마존웹서비스), 인공지능(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빅테크 기업 점유율이 고공행진이다.

이런 상황에서 온플법 등 규제 압박이 이어지자, 국내 기업은 사업 추진 동력을 잃어가는 모양새다.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기업이 실시간 트렌드 추천 서비스 논란에 휩싸인 동안에 구글은 '구글 트렌드', 트위터는 '실시간 트렌드'를 운영하면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타트업 민관 협력체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최근 발간한 리포트에 따르면 온플법이 제정될 경우 입점업체 측에 입힐 사회적 손실은 약 31조원, 고용 감소는 약 22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플랫폼상 거래액은 13조원가량 줄고 이에 부수하는 각종 수출입, 배송 등 영역의 생산액은 18조원 줄어든다는 계산이다.

전성민 가천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플랫폼은 공급 업체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측면이 있는데 만약 규제를 받게 되면 입점 업체가 플랫폼에 진입하는 비용이 점점 높아지게 될 것"이라며 "이는 결국 플랫폼에 부과되는 비용 자체가 입점 업체로 전가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틈새시장을 상대로 신규로 진입하는 스타트업이나 기존에 있던 영세 상인들만 진입장벽이 커지는 것이다. 생태계가 위축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영아 기자 twenty_ah@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