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과 AI, 그리고 스마트 글래스…'비전프로'와 다른 저커버그의 '큰 그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거느린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업 메타가 다시 움직이고 있다. 팬데믹 이후 광고 수익의 감소와 개인 정보 규제 등에 시달리며 추락하는 듯 했던 메타는 올해 최대 화두인 생성형 AI 시대를 맞아 다시 부활의 날개를 펼쳤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그리고 생성형 AI를 버무린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의 비전이 27일(현지시간) 메타의 연례행사 '커넥트 2023'를 통해 펼쳐졌다.
시들어가는 메타버스 열기…'메타퀘스트3'가 되살릴까
메타퀘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가상현실(VR) 디바이스다. 하지만 VR 시장 자체가 침체되고 있는 걸 막지는 못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가상/증강현실(VR/AR) 헤드셋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46% 감소했다. 이는 4분기 연속 감소로, 지난 1분기 54.4% 감소를 겪은 데 이어 가파른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메타가 선보인 '메타퀘스트3'는 VR 시장 회복에 가장 중요한 제품으로 손꼽힌다. 메타퀘스트3는 전세대인 메타퀘스트2 보다 작고 가벼우면서 퀄컴의 최신 '스냅드래곤 XR2 2세대' 칩셋을 탑재해 그래픽 성능을 끌어올렸다. 메타 측은 메타퀘스트3의 칩셋이 메타퀘스트2에 탑재된 1세대 XR2 칩셋에 비해 두 배 빠른 그래픽 성능을 구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메타퀘스트3에는 메타퀘스트 프로나 플레이스테이션 VR2 등과 같은 팬케이크 렌즈를 탑재했다. 팬케이크 렌즈는 기존에 볼록한 프레넬 렌즈에 비해 두께가 훨씬 얇을 뿐만 아니라, 평평하기 때문에 화면 가운데부터 바깥 부분까지 균등하게 선명도를 유지할 수 있다. 메타는 팬케이크 렌즈 덕에 메타퀘스트3를 전작 대비 40% 더 얇게 만들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메타퀘스트3는 화질도 개선됐다. 메타퀘스트2의 경우 눈당 1832x1920 픽셀의 해상도를 제공했지만, 메타퀘스트3는 이보다 개선된 2064x2208 해상도를 지원한다. 시야각도 수평 110도, 수직 96도로 전세대 대비 약 15% 개선됐다. 다만 메타퀘스트 프로에서 선보였던 시선 추적 기능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애플 '비전프로'와는 다른 게임을 한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메타퀘스트3가 가상현실(VR)을 넘어 혼합현실(MR)로 도약을 노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신제품은 전작의 흐릿한 흑백화면을 넘어 컬러로 주변 환경을 볼 수 있는 패스스루 기능을 탑재했다. 오른쪽 관자놀이를 두 번 탭하면 가상현실에서 혼합현실로 전환할 수 있다. 메타는 혼합현실을 활용해 실제 주변 환경에 영구적으로 가상 개체를 배치할 수 있는 '증강(Augments)' 기능 등을 선보였다. 또 엑스박스 클라우드 게임을 스트리밍할 수 있는 초대형 가상 화면 기능을 선보이며 비전프로를 견제했다.
메타퀘스트의 가장 큰 경쟁력은 가격이다. 메타퀘스트3의 출시 가격은 499달러(약 65만원)으로, 내년에 3499달러에 출시될 비전프로과 비교하면 꽤 경쟁력 있는 가격이다. 가격은 메타의 전략에서 중요한 요소다. 최고 사양의 프리미엄 제품에 집중하는 애플과 달리, 메타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기기를 사용하길 원한다. 애플과 메타는 '다른 게임'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더 버지(The Verge)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디바이스를 비싸게 팔아서 엄청난 돈을 벌려는 게 아니다"라며 "훌륭한 제품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매주, 매일 사용하고 싶게 만들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사용자를 수억 또는 수십억으로 확장하고 싶은 것"이라고 전했다.
메타퀘스트3는 오는 10월 10일 정식 출시되며, 이날부터 사전 주문을 시작했다. 국내 출시가는 128GB 모델이 69만원, 512GB 모델이 89만원이다.
눈에 쓰는 '스피커'이자 '카메라'
이날 메타는 레이밴과 협업한 차세대 스마트 글래스도 선보였다. 오는 10월 17일 출시되며, 가격은 299달러다. 기능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개인용 오디오다. 헤드폰을 대체해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콧대에 하나씩 장착된 총 5개의 마이크로 통화도 할 수 있다.
또 다른 기능은 카메라다. 오른쪽 관자놀이 부근에 탑재된 카메라는 1200만 화소 사진과 풀HD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 또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으로 라이브 스트리밍도 할 수 있다.
메타는 크리에이터들이 스마트 글래스를 착용하고 자연스럽게 요리를 하거나 드럼을 연주하는 모습을 촬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녹화 중에는 렌즈 주변에 흰색 불빛이 깜빡거리도록 해놨지만, 여전히 프라이버시 문제가 도마에 오를 가능성이 존재한다.
메타 스마트 글래스는 레이벤과 디자인 협업을 통해 가장 안경다운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안에는 퀄컴 '스냅드래곤 AR 1세대' 칩셋이 탑재됐다. 스마트 글래스 배터리 사용시간은 4~6시간이다. 함께 제동되는 케이스로 스마트 글래스를 8번 더 충전할 수 있다.
생성형 AI 전쟁 참전한 메타…복병은 스마트 글래스?
메타는 새로운 하드웨어와 함께 생성형 AI 챗봇 '메타 AI'를 선보였다. 사용자는 메타 AI와 직접 대화하거나 인스타그램 메신저, 왓츠앱 등 메타의 SNS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메타 AI를 불러 올 수 있다. 가령 왓츠앱에서 친구와 대화하다가 내일 아침 샌프란시스코에서 맛있게 아침식사를 할 곳을 물으면 메타 AI가 장소를 추천해주는 식이다. 메타 AI는 메타의 대규모언어모델(LLM) '라마 2'를 기반으로 하며, 마이크로소프트와 제휴해 검색 엔진 '빙'을 통해 실시간 정보를 제공한다.
메타는 스포츠 스타와 헐리우드 스타 등 28명의 캐릭터를 이용한 AI 챗봇도 선보였다. 전 미식축구 유명 쿼터백 톰 브래디, 패리스 힐튼, 래퍼 스눕 독 등이 AI의 얼굴 표정으로 등장하며, 이용자들이 마치 이들과 대화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AI에 '개성'을 심었다. 이외에도 메타는 이용자가 텍스트를 입력하면 5초 안에 사진 속 배경을 바꾸어거나 스티커를 만들어주는 등 이미지를 생성해 주는 AI 모델도 공개했다.
메타가 본격적으로 참전하면서 생성형 AI 경쟁은 한층 더 뜨거워지고 있다. 세계 최대 SNS 제국인 메타는 LLM 모델을 개발하거나 생성형 AI 챗봇 서비스를 만드는 데 유리한 환경을 확보하고 있다. 메타의 AI가 경쟁자들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는 이유다. 다만 메타는 AI를 '독점'할 생각이 없다. 이 회사는 자사의 LLM 모델 '라마'를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대신 자신들의 플랫폼 위에 더 많은 AI가 뛰어놀길 원한다. 이날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이용자들이 각자 하고 있는 일을 위해 여러 AI와 상호 작용하기를 원한다"라고 전했다.
저커버그는 이날 스마트 글래스에 생성형 AI를 탑재해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공유하며 AI와 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AI에게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게 뭐야"라거나 "저건 어떤 종류의 식물이야"라는 식으로 물어볼 수 있다는 얘기다. 스마트 글래스는 사용자가 보는 것을 보고 듣는 것을 듣기 때문에 AI 경험에서 가장 중요한 폼팩터가 될 것이라는 게 저커버그의 생각이다. 스마트 글래스가 생성형 AI 시대에 스마트폰을 대체할 만한 가장 중요한 제품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이날 발표에서 주목할 만한 대목이었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