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M 이슈] 마이크로소프트의 '알트만 일병 구하기'…AI 업계 지각변동 일으킬까

2023-11-21     남도영 기자
샘 알트만 전 오픈AI CEO /사진=엑스

마이크로소프트가 이사회의 기습 해고로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난 샘 알트만 오픈AI 전 최고경영자(CEO)를 이틀 만에 전격 고용하며 백기사를 자처했다. 알트만 축출로 '쿠데타'에 성공한 듯 했던 오픈AI 이사회는 이후 내부 분란을 막지 못하고 사면초가에 빠졌고, 그동안 AI 시장을 선도하던 오픈AI가 흔들리자 업계 전반의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열받은' 사티아 나델라, 샘 알트만 구하기 나섰다

20일(현지시간)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자신의 엑스(옛 트위터) 계정을 통해 "샘 알트만과 그레그 브록먼이 동료들과 함께 마이크로소프트에 합류해 새로운 첨단 AI 연구팀을 이끌게 됐다는 소식을 전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고 전했다.

/사진=사티아 나델라 CEO 엑스 캡쳐

나델라 CEO는 지난 17일 오픈AI 이사회가 알트만을 해임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눈이 멀 정도로' 화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픈AI에 130억달러(약 17조원)을 투자했으며, 영리법인 지분 49%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비영리단체로 시작한 오픈AI의 이사회는 영리법인과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었고,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이사회에 대한 어떠한 통제권도 발휘하지 못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AI의 관계는 경영권이나 지분이 아니라 오직 계약과 파트너십에 기반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알트만이 퇴출되기 겨우 1분 전에 그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이에 분노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픈AI 이사회에 참여하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알트만의 복귀를 원했고, 19일 알트만은 마지막으로 이사회와 복귀 협상을 진행했으나 끝내 결렬됐다. 이후 이사회는 트위치의 공동 설립자인 에밋 시머를 오픈AI의 새 CEO로 임명하며 올트먼의 복귀 가능성을 일축했고, 이어 마이크로소프트는 알트만을 영입한다고 발표했다.


'환상의 짝꿍'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AI는 기막한 파트너였다. 올트먼과 나델라 CEO는 2018년 선밸리 콘퍼런스에서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자금이 필요했던 알트만은 나델라에게 자신들이 개발 중인 거대언어모델(LLM)과 인공일반지능(AGI)에 대한 아이디어를 설명했고, 나델라는 그들이 클라우드 서비스 '애저(Azure)' 확장에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19년 오픈AI가 영리법인을 설립할 때 10억달러를 투자했고, 올해 초 향후 100억달러 가량을 추가로 투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픈AI가 GPT를 개발하는 동안 애저의 인프라를 맞춤형으로 지원해왔다. 지난해 말 오픈AI가 '챗GPT'를 선보이고 두 달 만에 전 세계 1억명이 쓰는 서비스가 되자, 마이크로소프트는 기다렸다는 듯 자시 제품 전반에 AI를 결합하며 혁신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샘 알트만 전 오픈AI CEO(왼쪽)과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진=행사 영상 캡쳐

'날으는 공룡'이 된 마이크로소프트는 엄청난 속도전으로 구글, 아마존 등 경쟁자들을 압박했고, 알트만이 이끄는 오픈AI는 후방을 든든하게 지켜왔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픈AI의 유명세를 애저의 확장에 효율적으로 활용했고, 챗GPT를 기반으로 '빙' 검색 엔진을 강화해 구글을 위협하기도 했다. 알트만은 계속해서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선보이며 AI 트렌드를 주도하고 AI 규제 논의 등을 이끌며 시장을 이끄는 얼굴마담 역할을 해냈다. 나델라 CEO는 최근 열린 오픈AI의 첫 대규모 개발자행사 '오픈AI 데브데이' 행사에도 직접 출연해 알트만을 지원사격하는 등 각별함을 드러낸 바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알트만을 품으면서도 공식적으론 계속해서 오픈AI와 파트너십을 이어가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나델라 CEO는 "우리는 오픈AI와의 파트너십에 전념하고 있으며 제품 로드맵, 마이크로소프트 이그나이트에서 발표한 모든 것을 통해 혁신을 지속할 수 있는 능력, 고객과 파트너를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며 "에멧 시어와 오픈AI의 새로운 리더십을 알고 있고, 그들과 함께 일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궁지에 몰린 오픈AI 이사회

마이크로소프트라는 든든한 후광을 얻은 알트만은 당당히 오픈AI를 나와 새 둥지를 향했다. 나델라 CEO는 "이들의 성공에 필요한 리소스를 제공하기 위해 신속하게 움직일 것"이라며 든든한 후원을 약속했다.

이후 상황은 오픈AI 이사회에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알트만 합류 소식을 전한 이후, 오픈AI 직원 700여명 중 500명 이상이 이사회에 공개 서한을 통해 "자신들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사임하고, 알트만이 이끄는 마이크로소프트 AI 자회사로 이직하겠다"고 경고장을 날렸다. 직원들은 이사회를 "오픈AI를 감독할 능력이 없다"고 비판하며 알트만의 복귀와 이사회 전원 사임을 요구했다.

오픈AI 직원들은 처음 이사회가 알트만을 해임하고 임시 CEO로 미라 무라티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지명했을 때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이사회가 다시  AI 기술 발전 속도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한 트위치의 공동 설립자인 에밋 시어를 CEO에 올리자 등을 돌렸다.

특히 이번 서한에는 이번 쿠데타의 주범으로 지목되던 최고데이터과학자 일리야 수츠케버의 이름도 올라 눈길을 끌었다. 알트만과 함께 오픈AI를 설립한 공동 멤버이기도 한 그는 엑스에 "이사회의 행동에 참여한 것을 깊이 후회한다"며 "회사를 재결합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고 전했고, 알트만은 이 게시물을 하트 이모티콘과 함께 리포스팅했다.

현재 오픈AI 임직원들은 샘 알트만 엑스 계정에 "오픈AI는 그들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다"는 릴레이 댓글을 달고 있다. 이에 알트만은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단합과 헌신, 집중력이 강하다"며 "우리 모두 어떤 식으로든 함께 일하게 될 것이고, 정말 기대가 된다"고 포스트를 올렸다.

/사진=사티아 나델라 CEO 엑스 캡쳐

 


AI 업계 지각변동 시작되나

불과 3일 남짓한 시간 동안 오픈AI에 벌어진 엄청난 사태로 인해 AI업계는 지각변동을 예고하게 됐다. 그동안 생성형 AI 시장을 주도한 오픈AI가 알트만의 이직으로 힘을 잃게 된다면 시장 판도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앞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체적으로 AI 모델 개발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왔다. 이미 오픈AI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오픈AI의 두뇌 유출은 마이크로소프트에겐 시장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다만 알트만의 새 AI 회사가 자리를 잡기에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 IT 매체 디인포메이션은 이번 사태가 오픈AI와 경쟁 중이던 구글에게는 호재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오픈AI에 시장 주도권을 뺏긴 구글은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해 차세대 멀티모달 초거대 AI 모델 '제미니' 개발에 전사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당초 기대와 달리 연내 출시는 커녕, 내년 1분기 출시도 불투명하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챗GPT의 시장 선점에 제미니 개발까지 연기돼 사면초가에 빠진 구글이 이번 사태로 한숨 돌릴 시간을 얻게 될 것이란 분석이다.

/사진=디디다 컴퍼니 제공

그동안 오픈AI의 그늘에 가려져있던 AI 스타트업의 약진도 예상된다. 대규모 언어 모델을 개발하는 코히어(Cohere)나 엔트로픽(Anthropic) 등이 투자자들에게 좀 더 나은 대안으로 보일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이번 오픈AI 사태로 투자자들은 AI 스타트업의 지배구조와 이사회 구성 등을 더 유심하게 살펴볼 가능성이 커질 전망이다.

향후 인공일반지능 개발을 둘러싼 대립도 더 첨예해질 전망이다. 인공일반지능은 인간과 유사한 인지 능력을 가진 AI로, 향후 사회 전반에 엄청난 파급력을 가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보다 신중하게 규제하며 AI 기술 개발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오픈AI의 공동 창립자였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이런 이유로 이 회사에서 발을 뺀 바 있다.

이번 알트만 퇴출의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대규모 자본 유치로 급진적인 사업화를 추구하던 알트만과 '인류를 위해 안전하고 유익한 일반 인공 지능을 구축한다'는 오픈AI의 비전을 고수하려던 이사회 간의 충돌로 분석하는 시각이 많다. 애초에 AI 기술이 구글과 같은 일부 거대기업 손에 지배되는 것을 막겠다고 설립된 오픈AI였지만, 알트만이 빅테크인 마이크로소프트행을 택하면서 이 같은 대의도 빛을 잃게 됐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