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진맥] 지원금 제한 푼다고 가계통신비 안 내려간다...정부, 주먹구구식 대응 멈춰야

2024-03-14     허준 편집장

#번호이동 가입자에 전환지워금 50만원 허용

#초고가 요금제 강제 뻔한데...가계통신비 내려간다고?

#주먹구구식 대응 대신 제조사-통신사-OTT 머리 맞대야


정부가 통신사들의 지원금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우선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한 뒤 시행령과 고시 개정을 통해 차별적 지원금을 허용했습니다. '전환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번호이동 가입자에게 최대 50만원까지 지원금을 허용한다고 합니다.

지원금을 마구 뿌릴 수 있는 판을 깔아줬으니, 단통법 이전처럼 마케팅비를 지원금에 태워서 치열한 가입자 쟁탈전을 펼쳐 보라는 것이 정부의 속내로 읽힙니다. 이를 통해 '공짜폰'을 살 수 있게 되면 국민들이 좋아하지 않겠느냐는 속내일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지원금을 왕창 받아서 스마트폰을 싸게 사면, 정말 소비자들에게 이익일까요? 정부가 얘기한 것처럼 가계통신비가 확 내려갈까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강변 테크노마트 6층에 갤럭시S24 시리즈를 홍보하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 사진=배수현기자

단말 구매비 대신 통신 요금 확 오를텐데...가계통신비 내려갈까? 

우선 모든 소비자들이 스마트폰을 싸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감안해야 합니다. 번호이동을 해야 하는 소비자들에게 전환지원금을 줄 수 있는데, 번호이동을 하지 않는 소비자들은 상대적 차별을 받게 됩니다. 결합할인 등으로 통신사 이동을 하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많습니다. 이들에게는 어떤 혜택이 돌아갈까요? 번호이동 가입자 유치에만 목을 메면, 기기변경을 하는 장기 가입자들에게 소흘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통법 이전에도 그랬습니다.   

게다가 스마트폰을 싸게 산다고 가계통신비가 확 내려가지 않습니다. 가계통신비는 단말기 구매비, 통신요금, 그리고 부가서비스 이용료로 구성됩니다. 통신사들이 지원금을 확 높이면서 초고가 요금제를 강제할 것이 확실시 됩니다. 단통법 시절에도 일부 '성지'에서 6개월간 초고가 요금제 유지 등을 명목으로 불법 지원금을 줬습니다.

현재 통신사들의 초고가 요금제는 13만원에 달합니다. 3~5만원대 요금제면 충분한 이용자들이 지원금을 받기 위해 초고가 요금제를 6개월간 사용한다면, 전환지원금 만큼의 추가 요금을 내는 셈입니다. 여기에 불필요한 부가서비스 가입 등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과연 이게 소비자에게 이득일까요?

또 이전 통신사와 약정 계약이 끝나지 않은 경우, 약정에 따른 위약금도 부담해야 합니다. 약정 기간도 24개월이 아닌 36개월을 요구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전환지원금이 최대 50만원이라고 해서 모두에게 50만원을 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원금은 시시각각으로 변할겁니다. 


'호갱' 나오는 심각한 차별은 안된다...효과적 대책 위해 머리 맞대야

통신요금체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모두 따져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어려워 하는 고령층의 경우 단통법 이전처럼 '호갱'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단통법은 도입 당시, 같은 스마트폰을 사는데 누구는 과도하게 싸게 누구는 과도하게 비싸게 사는 것이 부당하다는 취지로 도입됐습니다. 지금 정부의 정책은 다시 10년전으로 돌아가서 그 부당함을 인정하자는 취지로 읽힙니다. 정보에 밝은 이용자가 조금 더 싸게 사는 것은 인정하더라도 예전처럼 심각한 차별이 생기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모든 국민들이 인정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정부가 모를리 없습니다. 주먹구구식 정책으로는 가계통신비를 낮출 수 없다는 점을 말입니다. 단말기 제조사, 통신사, 동영상 플랫폼(OTT)을 포함한 부가서비스 사업자 등이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만만한' 통신사를 불러서 지원금을 높이라고 요구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단통법을 제정할때, 수많은 토론이 오갔습니다. 제조사와 통신사 등 이해관계자들의 의견도 수차례 물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단통법을 폐지하기로 하고, 전환지원금을 지급을 위한 고시 개정에 나서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이해관계자 의견이 수렴됐나요? 뭐가 그리 급해서 '졸속행정'이라는 비판까지 받아야 합니까. 전문가들과 이해관계자들의 토론을 통해 실질적으로 가계통신비 인하에 도움이 될 효과적인 대책이 마련되기 바라봅니다.

허준 기자 joon@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