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View] 'AI 아이폰만으론 부족해'…애플은 변화가 필요하다
애플이 인공지능(AI) 전략을 공개할 세계 개발자 대회(WWDC24)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한동안 'AI 지각생'이라 불리며 고전을 면치 못했던 애플 주가도 이 행사에 대한 기대감으로 어느새 전고점 부근까지 상승하며 시가총액 3조달러를 탈환했습니다. 그동안 AI 사업에 공을 들여 온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다른 빅테크들에 비해 한발 늦긴 했지만, 전 세계 20억대 이상의 활성 디바이스 생태계를 보유한 애플이 본격적으로 AI 도입에 나설 경우 시장 판도를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입니다. 과연 AI는 애플을 다시 정상의 자리에 올려 놓을 수 있을까요?
'AI 아이폰'엔 어떤 기능이 담기나
10일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애플은 이번 행사에서 '애플 인텔리전스'라는 이름의 새로운 AI 시스템을 공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아이폰, 아이패드, 맥 등의 운영체제(OS)와 통합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애플의 AI 전략은 이미지나 동영상 생성 등 최신 기능을 제공하는 것 보다는 앱을 더 잘 제어하고 일상 생활을 편하게 해주는 방식으로 제품의 사용성을 향상시키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행사에서 공개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능은 웹 브라우저 '사파리'에서 기사와 웹페이지 내용을 요약해주거나 메모나 문자, 이메일 등 놓친 알람들을 정리해주는 기능 등 입니다. 또 사용자를 대신해 이메일이나 문자 메시지의 답변도 작성해주고, AI가 입력한 문구나 단어를 나타내는 이모티콘을 즉시 생성하는 기능도 탑재된다고 합니다. AI 비서 '시리(Siri)'도 LLM 기반으로 업그레이드 될 전망입니다. 사용자는 시리를 통해 앱 내 개별 기능과 동작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애플이 거대언어모델(LLM) 등 생성형 AI 기반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오픈AI와의 파트너십을 공식 발표할 것이란 예상도 나옵니다. 이미 오픈AI는 지난달 최신 AI 모델 'GPT-4o'를 공개하며 윈도보다 맥에 먼저 데스크톱용 전용 앱 지원에 나서는 등 밀월 관계를 암시한 바 있습니다.
애플은 그동안 데이터 보안 문제와 할루시네이션(환각) 현상 등 때문에 생성형 AI 도입을 망설여 온 것으로 알려집니다. 이 때문에 최대한 기기 내부에서 데이터를 처리하는 온디바이스 AI 기능을 활용하고, 일부 기능만 클라우드 방식으로 처리할 것으로 전해집니다. 또 보안 강화를 위해 사용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프로필을 만들지 않고, 자신의 정보가 판매되거나 누군가에게 읽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사용자들에게 보고서로 알릴 계획이라고 합니다.
스마트폰, 그 이후의 AI
애플의 새로운 AI 기능을 활용하기 위해선 '아이폰 15 프로' 이후 모델과 'M1' 이상 칩셋을 장착한 아이패드와 맥 제품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AI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더 나은 프로세서와 메모리 용량이 필요하게 되면서 제품 업그레이드를 촉진할 것입니다. 이미 시장에서 갤럭시 S24 시리즈가 AI 기능을 앞세워 전작 대비 준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점을 미뤄봤을 때, 아이폰 역시 잠재된 교체 수요가 폭발하며 '슈퍼 사이클'을 맞이할 것이란 기대감도 커지고 있습니다. 웨드부시 증권의 댄 아이브스 애널리스트는 "수많은 AI 기능이 도입되는 아이폰 16을 통해 아이폰 업그레이드 수요의 '슈퍼 사이클'이 예상된다"며 "아이폰 16이 발표되면 총 2억7000만대의 아이폰이 새로워질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애플의 전략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스마트폰 시장 포화에 따라 아이폰 성장은 정체되고 있고, 최근 몇 년 간 성장을 이끌었던 중국 시장도 현지 업체와의 경쟁 심화로 이전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AI 아이폰이 교체 수요를 자극해 반짝 성과를 낼 순 있겠지만, 장기적으론 '넥스트 스마트폰' 시대에 대한 비전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올해 시장에는 생성형 AI 붐과 함께 AI 전용 디바이스에 대한 가능성을 모색한 제품들이 등장한 바 있습니다. 휴메인 'AI 핀'이나 '래빗 R1'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 제품들은 올 초 'CES 2024' 행사에서 스마트폰을 대체할 차세대 디바이스로 큰 관심을 모았지만, 막상 제품 출시 이후에는 부족한 성능과 완성도로 혹평을 받으며 AI 전용 디바이스는 시기상조라는 인상만 남겼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모바일 디바이스가 컴퓨터와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완벽히 바꿔 놓은 것처럼, AI 시대에도 새로운 디바이스가 등장할 가능성이 큽니다. 자연어로 대화할 수 있는 AI 에이전트가 등장하면서 굳이 앱을 실행하고 명령어나 검색어를 입력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형태는 애플 '비전프로'와 같은 헤드셋이 될 수도 있고, 영화 'Her'에 등장하는 이어폰이 될 수도 있습니다. 좀 더 나아가 휴머노이드가 될 수도 있구요.
이 때가 되면 애플이나 삼성 같은 디바이스 업체들의 전략도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애플이 비전프로에 미래를 걸고, 삼성전자가 로봇 사업에 박차를 가하는 것도 이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새로운 생태계 전략이 필요하다
애플의 넥스트 스마트폰 시대 비전은 아직 뚜렷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성장동력이 시급한 가운데 야심차게 내놓은 비전프로의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애플카' 프로젝트도 무산됐습니다. 결국 애플도 AI 사업에 사활을 걸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애플 소식에 정통한 블룸버그의 마크 거먼은 "AI 집약적 장치가 조만간 전통적인 스마트폰을 대체하며 다음 대세가 될 것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며 "애플이 거기에 도달하려면 '하드웨어-소프트웨어-서비스' 구조의 접근 방식을 전환해 '하드웨어-AI-클라우드' 회사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구글은 초거대 AI 모델 '제미나이'를 기반으로 AI 기본 인프라인 클라우드부터 검색 등 각종 서비스, '픽셀' 하드웨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혁신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비록 새 모델과 서비스를 내놓을 때마다 AI가 일으키는 실수로 삐걱거리는 듯 보이지만, 그만큼 '속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AI 연합도 마찬가지 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애저 클라우드에 GPT 모델을 독점 공급하고, 윈도와 오피스에 발빠르게 AI를 통합하고, '코파일럿+PC'로 명명한 AI PC 생태계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결국 애플도 이런 생태계 전략을 따라가게 될 것이란 전망입니다. 현재 애플은 내부적으로 '프로젝트 에이잭스(Ajax)'라는 자체 LLM을 개발 중이며, 데이터센터에서 자체 칩으로 AI 연산을 처리하는 'ACDC'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만 현재와 같이 1년 단위로 신제품과 새로운 소프트웨어 기능을 선보이는 방식으론 AI 혁신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 것이란 게 마크 거먼의 분석입니다. 그는 "AI는 사용자가 작업을 위해 앱을 실행하도록 강요하는 대신 사용자를 대신해 작업을 처리하도록 만들어졌다"며 "1년에 한 번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 하는 것은 경쟁사를 따라잡을 만큼 빠르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애플이 이런 변화를 수용하기 위해 폐쇄적인 생태계를 어느정도 개방할 수 있을 지, 클라우드 인프라와 AI 모델 개발을 위한 투자를 어느정도 집행할 지가 향후 AI 시대 애플의 행보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당장 시장의 초점은 'AI 아이폰'이 얼마나 팔리느냐에 맞춰지겠지만, 애플이 AI 시대에 적응하며 현재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지는 이런 장기적인 전략 방향에 달려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