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봤다] 대체재에서 독립재로...장르적 변주 택한 'POE2' 대중성 넘본다

2024-12-10     임경호 기자
다소 어색하게 느낄 수 있는 서구형 삽화는 서구에서 만든 게임이니 오히려 자연스러운 부분이라는 낙관으로 극복 가능하다. /사진=임경호 기자

카카오게임즈가 서비스하는 '패스 오브 엑자일 2(POE 2)'가 글로벌 얼리 액세스(앞서 해보기)로 첫발을 내디뎠다. 'POE 2'는 첫 주말 판매량 100만장을 돌파하며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하루 동시 접속자 수는 최고 57만명을 넘었고 스팀에서는는 글로벌 매출 1위에 올랐다. 

일부 유저들 사이에선 '폐지 줍는 게임'이라는 자조적 반응이 나오기도 한자. 하지만 "폐지 줍기야말로 게임의 본질적 재미 아니냐"는 어느 개발자의 말마따나 고유한 특성을 살린 게임 디자인과 팬들의 기대감이 어우러져 호평으로 여론이 굳어지는 모양새다.


'깊이'와 '다양성'이 재미가 되는 시대, 소통으로 선순환

기자가 지난 주말 직접 해본 감상은 여론에 부합했다. 'POE 2'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육성 시스템인데 전작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스킬 젬과 패시브 스킬을 활용한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이 핵심 요소로 자리했다. 

방대한 스킬트리가 중앙의 이미지를 기준으로 전방위에 뻗어있다. /사진=임경호 기자

개발사는 총 1500가지가 넘는 패시브 스킬로 자신만의 플레이 스타일을 구축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자유로운 커스터마이징 요소는 일부 유저들에게 연구에 가까운 수준의 깊이를 제공하며 게임에 대한 몰입감을 한층 높이는 배경으로 꼽힌다.

예컨대 첫 캐릭터로 선택한 소서리스의 경우 스탯을 향상할지 시전속도나 마나 리젠 속도를 올릴지 레벨업을 거듭하며 결정하게 된다. 한쪽을 선택했다고 해서 다른 쪽을 포기하는 일은 없다. 순서이자 선택의 문제이고, 이는 스킬 육성에도 유사하게 적용된다.

일각에서는 다채로운 커스터마이징이 부담스럽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특히 'POE' 시리즈는 주류로 취급받는 육성법 외에도 다양한 성장 루트를 밟을 수 있어 초심자는 게임의 방대한 시스템에 진입장벽을 느낄 가능성도 있다.

다행인 점은 이런 방대함이 유저들의 정보 공유와 토론을 유도한다는 부분이다. 'POE 2'에선 게임성에 대한 비판보다 콘텐츠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주를 이루며 채팅창을 통해 자체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상호작용이라는 특성이 긍정적인 경험 형성에 일조하는 것처럼 보였다.


핵앤슬래시에서 소울라이크로...관여도 상승의 나비효과

전작과의 변화도 눈에 띈다. 'POE 2'에서 가장 큰 변화는 핵앤슬래시 스타일에서 소울라이크에 가까운 전투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꼽힌다. 개발사에서는 이를 '액션슬래시'라고 칭했다. 컨트롤 필요성이 높아졌고 유저 관여도가 상승했다. 구르기라는 회피기가 적극적으로 활용되며 적에게 둘러싸이면 이동 경로가 차단된다.

화려한 스킬 효과로 시각적 즐거움을 더했다. /사진=임경호 기자

이런 요소는 유니크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마법을 사용할 때 이동 모션이 멈추는 식으로 여타 게임에서 느꼈던 의아함을 타파하는 'POE 2'의 시스템은 동시에 게임을 대표하는 상징성이 되어 유저들의 머릿속에 각인됐다. 

이를테면 이동하며 마법을 쓰고, 적의 공격을 구르기로 피하며 '길막'을 조심해야 하는 조작성이 두드러졌다. 이 변화에 일부 유저들은 이질감을 호소했다. 전작의 핵앤슬래시를 좋아하던 이들에게 변화된 전투 시스템은 '불편'과 '불쾌'의 어느 지점에 자리한 것 같았다.

반대로 이러한 변화가 'POE 2'의 새로운 매력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소울라이크적 요소가 강해지면서 보다 전략적이고 도전적인 전투가 가능해졌다는 평가다. 반복 전투를 통한 육성과 파밍에서 돌파구를 찾던 기존 장르의 노선에서 벗어나 조작 실력에 거는 기대감을 높였다.


대중성 확보 한걸음...'대체재'에서 '독립재'로 발돋움

'POE 2'를 즐기는 환경도 전작과 달라지며 새로운 팬층을 형성하는 중이다. 전작이 출시되던 2013년 당시에는 특유의 깊게 파고드는 커스터마이징 요소가 대중적 인기를 얻기 전이라서 상대적으로 얕은 유저층을 위한 마니악한 게임으로 인식된 바 있다. 

유료로 구입할 수 있는 외형 변화 아이템이 다양하다. /사진=임경호 기자

전작의 무게감이 '디아블로'처럼 존재감 짙은 게임의 비교군으로 제한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POE' 뿐 아니라 한때 동류의 게임으로 함께 거론되던 '토치라이트'도 대중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고유의 게임성과 별개로 유사 '디아블로'와 같은 오명을 얻기도 했다.

'POE 2'는 이제 '디아블로'의 대체재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게임 세계를 구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해 출시 이후 유저들의 기대감과 큰 괴리감을 선사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디아블로 4'의 색채가 동류 시장에서 옅어지며 유일한 경쟁 상대는 전작인 'POE'가 될 것이라는 의견마저 나온다.

초반부 호평을 바탕으로 팬층의 외연을 확장하고 있는 점도 긍정적이다. 정식 출시와 함께 무료로 제공되는 'POE 2'는 입소문이 유료 얼리 액세스 팩 판매의 한 가지 유인으로 작용 중이다. 팬층 확장은 온라인 플레이를 바탕으로 한 범 RPG 장르에서 결국 게임의 PLC(제품 수명 주기)를 늘리는 동력이 되어줄 것으로 보인다.


진화 또는 변질, 판단은 개인 몫...변주에 따른 PLC 주목

종합하면 'POE 2'는 전작의 장르적 틀을 한바탕 비틀었다. 이 변화를 '진화'로 해석할지 '변질'로 해석할지는 유저 개개인의 판단이다. 다만 깊이 있는 RPG라는 평가를 등에 업고 대중성 확보를 위한 걸음을 내딛었다는 점에서 시리즈물의 생존 가능성은 전보다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컴퓨터 사양에 대한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다. 적당히 타협하면 비교적 저사양에서 플레이 가능하다는 의견들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설정에 따라 많은 리소스를 요구하기도 한다. /사진=임경호 기자

정식 출시 이후 인기 유지 여부도 주목된다. 개발사 그라인딩 기어 게임즈는 얼리 액세스가 최소 6개월 이상 지속될 것이라 예상했다. 해당 기간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통해 정식 출시 때 보다 확장된 게임 콘텐츠를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게임은 6개 직업과 총 12가지에 이르는 직업별 전직 시스템 외에도 6종 캠페인, 600여종 몬스터, 100종 보스 등을 선보인다. 새로운 전투 시스템과 깊게 파고드는 육성 시스템으로 무장한 2024년형 'POE'가 향후 써내려갈 서사에 업계 안팎의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임경호 기자 lim@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