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은 총재 '비은행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하면 19세기식 혼선'...신중론 고수

2025-07-10     서미희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 사진=ECB 2025 유튜브 제공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를 공신력있는 기관으로 제한해야 한다며 은행 외 기관에 의한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대해 다시 한 번 신중한 입장을 내비쳤다.

10일 이창용 총재는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 직후 서울 남대문로 한은 별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비(非)은행 기관에 허락해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날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2.5%로 동결했다. 이번 금리 동결은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가계대출 증가 리스크, 대외적으로 미국 관세정책의 불확실성을 우려한 결과다.

스테이블코인은 원화나 달러 등 법정통화의 가치를 연동해 설계된 디지털 자산이다.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에서 활용도가 높아 현재 유통 중인 스테이블코인의 90% 이상은 미국 달러에 기반을 두고 있다. 국내에서는 최근 들어 원화 연동형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는 추세다.

이창용 총재는 "다수의 비은행 기관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면 여러 민간 화폐가 생기는 셈이 되고, 이 경우 가치가 다른 여러 화폐가 유통될 위험이 생긴다"며 "그런 나라에선 통화 정책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어렵고 금융 시스템에 여러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프로그램화된 거래가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스테이블 코인은 필요하다"면서도 "문제는 도입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특히 "비은행까지 발행을 허용하면 다수의 민간 화폐가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19세기 민간은행이 자유롭게 화폐를 발행해 혼선이 있었던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마구 허용하면 외환 자유화 정책과 충돌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는 "비은행에 지급결제 업무를 허용하면 은행 수익구조도 많이 바뀌게 된다"고 거듭 우려했다.

아울러 "비은행 기관에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락하고, 나아가 스테이블코인 예금 등이 생기게 될 경우 동일 업무, 동일 규제 원칙에 따라 은행에 상응하는 매우 강력한 규제를 이들 기관에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생각해봐야 한다"며 "스테이블코인이 국민 경제 전체에 끼칠 영향을 하나씩 찬찬히 테스트해보면서 충분히 시간을 두고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은행은 시중은행들과 협력해 스테이블코인 유사 모델을 실험하는 '한강 프로젝트'를 추진해왔으나, 지난 4월 1차 테스트를 마친 뒤 관련 정책의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후속 단계는 일시 보류된 상태다. 일각에서는 해당 프로젝트가 사실상 무산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이 총재는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일시 정지된 상태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듯하다. 기재부·금융위·정치권 등에서 방향이 잡히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총재는 이달 초 포르투갈에서 열린 유럽중앙은행 포럼에서도 "규제되지 않은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허용하면 달러 기반 스테이블 코인으로의 환전이 가속화하고 이는 자본 유출입 관리 규제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서미희 기자 sophia@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