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과 혁신IV] (9)기후변화 보도, '북극곰 저널리즘' 넘어 '솔루션 저널리즘'으로
"너무 절망적인 뉴스만 나오니까 아예 안 보게 되더라구요"
최근 필자의 대학원 수업에서 기후보도에 대한 토론을 진행할 때 나왔던 한 학생의 이야기이다. 다른 학생들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였는데, 몇 가지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기후변화가 심각하다는 건 다 아는데 계속 비슷한 보도만 하는 느낌이 들어요" "기후위기, 기후재앙, 나아가 기후종말까지. 공포를 조장하는 기후보도가 오히려 피로감만 누적시키는 것 같아요"
각자가 말한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현재의 기후보도에 대한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
'심각성' 전달 반복에 피로감
기후변화에 대한 보도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IPCC 보고서의 경고 메시지, 극지방 빙하 융해 소식, 세계 석학들이 뽑은 기후 위기 티핑포인트까지 전 지구적 차원의 기후변화 뉴스들이 연일 보도되지만, 해당 보도의 내용은 시민들이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일상적 실천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 같다. 정작 해당 뉴스를 접하는 수용자들은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떠올릴 뿐이다.
더 큰 문제는 현재의 기후보도가 모든 시민이 비슷한 인식 수준을 가졌다고 가정하고 기후변화의 심각성 전달에만 초점을 둔다는 점이다.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로버트슨 박사에 따르면, 수용자들이 뉴스를 지속적으로 회피하는 주된 원인이 "뉴스가 과도하게 부정적이고 우울감을 조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위기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반복하게 되면 수용자에게 정보 과부하와 피로감만을 야기할 뿐, 실질적 행동 변화를 촉진하기 어렵다. 기후 기자들 사이에서 시민의 일상과 동떨어진 북극곰을 소재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는 보도를 두고 '북극곰 저널리즘'이라는 자조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솔루션 저널리즘(Solutions Journalism)'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문제 제기'에서 '대안 모색'으로
솔루션 저널리즘은 '문제에 대한 대응에 초점을 맞추는 보도기법'이다. 전통적 저널리즘이 "누가, 언제,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왜"라는 '5W1H'에 머물렀다면, 솔루션 저널리즘은 여기에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What's next?)"라는 질문을 더한다. 기후변화에 대해 문제만을 들춰내는 북극곰 저널리즘에서 벗어나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자는 것이다.
기후변화 보도는 이미 여러 진화 단계를 거쳐왔다. 1990년대에는 기후변화가 실재로 일어나는지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기후변화 회의론에 대한 반박에 집중했다. 2000년대 이후부터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데 주력했다. 현재는 기후위기가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상당 부분 이루어진 상태다.
이제는 북극곰 저널리즘에서 솔루션 저널리즘으로 전환해야 할 때다. 해외 주요 언론사들은 이미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기후 약속(Climate Pledge) 섹션을 통해 개인, 기업, 지역사회 단위의 구체적 실천 방안들을 지속적으로 보도하고 있으며,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기후 해결책(Climate Solutions) 코너에서 기술적 혁신부터 생활밀착형 대안까지 다층적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다.
수용자 맞춤형 소통이 필요하다
'기후변화 인식 유형에 따른 메시지 전략 탐색'이라는 제목으로 최근 한국언론학보에 게재된 한 연구는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 연구의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후변화 인식은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적극적 경고형'(29.0%)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높게 인지하고 이에 대한 강한 신념과 효능감을 가진 집단이다. '무관심형'(35.1%)은 전체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기후변화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도가 낮다. '신중한 우려형’(15.4%)은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과 신념은 있으나 개인적 효능감이 부족한 집단이며, '무시형'(20.5%)은 기후변화 자체에 회의적 태도를 가지며 낮은 효능감을 가진 집단이다.
주목할 점은 이들 각 집단이 서로 다른 정보 니즈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적극적 경고형에게는 과학적 근거가 충분한 심층 정보와 정책 참여에 대한 경로를 제시하면 좋을 것이다.
무관심형에게는 일상적 경험과 연결된 내러티브를 통해 이슈에 대한 연관성을 높이는 것이 효과적이며, 신중한 우려형에게는 집단적 해결 방안을 강조하여 개인의 무력감을 완화하는 메시지 전략이 적절하다. 무시형에게는 기후변화 심각성을 전달하기보다 기후행동 참여에서 오는 경제적 편익이나 건강상의 이점을 강조하는 우회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기후변화 보도의 근본적 재구성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시민들이 실행 가능한 대안 제시해야
한국 언론도 이제 이러한 변화에 동참할 때가 되었다. 기후변화는 더 이상 '환경 섹션'의 전유물이 아니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영역에 걸친 총체적 현상이다. 따라서, 언론의 접근 방식도 부서 간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적 관점이 요구되며 그 중심에는 "시민들이 실제로 실행 가능한 대안이 무엇인가"라는 기후 효능감에 대한 질문이 자리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뉴스 수용자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맞춤형 소통이다. 같은 기후변화 이슈라도 20대 여성 직장인과 50대 남성 자영업자, 60대 농촌 지역 주민과 30대 도심 거주자가 느끼는 절박함과 관심사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들 각각에게 맞는 접근법으로 소통해야 기후변화에 대한 진정한 공론장을 형성할 수 있다.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도전 앞에서 언론은 어두운 미래 대신 희망을 이야기하고 무력감 대신 실천 의지를 배양하는 공론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 출발점은 다양한 수용자층의 목소리에 경청하고, 시민들이 각자의 상황적 맥락에서 스스로 실행 가능한 행동 방안을 발견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며, 이를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는 건설적 담론을 형성하는 것이다.
글=정수린 서강대학교 교수
정리=남도영 기자 hyun@techm.kr
<Who is> 정수린 서강대학교 교수
정수린은 기후와 재난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공공외교를 탐구하는 미디어 학자이다. 미주리대학교 저널리즘 스쿨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오하이오 대학교 E. W. 스크립츠 저널리즘 스쿨에서 조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공공커뮤니케이션 및 공공외교 대학원 과정 주임교수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