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우리는 이미 'AI 강국'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다
얼마 전 한국을 찾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한국은 AI 리더가 될 가능성이 무한대"라고 말했다. 한국이 소프트웨어와 제조업, AI 역량을 모두 갖춘 흔치 않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소프웨어가 강하지만 제조업이 약하고, 유럽은 반대로 제조업이 강하지만 소프트웨어가 약하다. 사실상 중국을 제외하면 엔비디아가 꿈꾸는 '피지컬 AI'를 구현하기 위한 파트너는 한국밖에 없다는 해석이 나온다.
황 CEO 뿐만 아니라 최근 한국을 찾는 수많은 글로벌 리더들은 한국을 AI 혁신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로 꼽고 있다. 첨단 인프라, 연구개발(R&D) 기반, 글로벌 혁신 기업, 빠른 기술 수용도, 정부의 과감한 지원 등 AI 혁신을 가장 먼저 구현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AI 프론티어 기업들이 한국에 연이어 사무소를 열고 앞다퉈 투자에 나서는 모습을 보면 우리만의 자화자찬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만 가능성이 '무한대'라는 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26만장의 AI칩을 한국에 우선 공급하겠다고 약속하며 이제 겨우 AI 인프라 구축의 첫 발을 떼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 이 칩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 지 구체적인 계획도 나오지 않았다. 칩만 있으면 다 되는 것도 아니고, 데이터센터, 전력, 네트워크 등 갖춰야 할 제반 여건도 수두룩하다. 무엇보다 이 만한 인프라를 운영해 본 경험과 인재가 부족하다.
AI가 자동차라면, 기름은 '데이터'다. AI가 잘 달리려면 좋은 데이터를 넣어줘야 한다. 정부가 축적한 공공 데이터를 더 과감히 개방하고, 민간 기업들이 데이터를 원활히 확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생성형 AI를 둘러싼 법적 분쟁이 이미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선제적으로 기준을 제시해 낭비되는 사회적 비용과 시간을 줄어야 한다. 최근 연이어 터진 정보 유출 사고를 반면교사 삼아 신뢰할 수 있는 보안 체계를 구축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이렇게 기반이 마련되고 나면, 그 위에서 다양한 시도와 창의적인 도전이 이어져야 한다. 인터넷 시대에 네이버와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과 같은 게임사들이, 모바일 시대에 카카오, 쿠팡, 토스, 배달의민족 같은 플랫폼 기업들이 탄생해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창출한 것처럼, AI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 다시 한 번 창업의 열기가 확산되고 젊은 혁신가들이 나오려면 규제 족쇄부터 풀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줘야 한다.
새로운 건 없다. 그동안 전문가들이 한국의 혁신 생태계를 위해 수없이 지적하고 조언한 내용들이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문제는 실행력과 속도다. 'AI 3대 강국'이란 방향이 정해졌고, 마침 순풍이 불고 있다.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AI 허브'가 될 한국을 주시하고 있는 이때, 민관정이 일치단결된 모습으로 노를 젓는다면 '한강의 기적'은 'AI 혁명'으로 반드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