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린이톡] 세금보다 무섭다? 코인판 금융실명제 '트래블룰'이 필요한 이유

2022-01-06     이수호 기자
그래픽=픽사베이

국내 디지털자산(가상자산) 투자자가 가장 싫어할 규제가 올 1분기가 마무되는 3월 등장하게 된다. 가상자산 송수신 정보를 확인하는 이른바 '트래블룰' 규제가 가시화되는 것. 이름도 어려운 트래블룰은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자금 세탁을 방지하기 위해 가상자산 전송 때 사업자에게 송·수신자의 정보 등을 기록하도록 의무화한 규제다. 


정부가 가상자산 이동 정보를 모두 확인한다

오는 3월 25일부터 모든 가상자산 투자자에 적용될 트래블룰은 쉽게 말해, 기존 화폐 자산의 이동을 금융당국이 일일이 꿰고 있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가상자산이 여행(트래블)하는 과정에서 입출금하는 양측 당사자의 정보와 거래 목적을 기록, 정부 요청이 있을 때 관련 정보를 즉시 제공해야한다. 자금세탁방지를 담당하는 금융당국과 시중은행, 원화거래를 중개하는 4대 가상자산 거래소가 트래블룰에 따라 상호 협조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정부는 가상자산이 불법 사업자에게 전달되는 것을 차단할 수 있고, 상속 및 과세 회피, 범죄수익 은닉 등을 차단할 수 있다. 또한 정부가 불법시하고 있는 해외 선물거래 등도 관리할 수 있을 전망이다. 

사실 우리 금융당국은 지난해 3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특금법) 시행령' 개정안에 가상자산사업자에게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과했다. 당초 이에 맞춰 가상자산 이전시, 트래블룰을 적용하려 했지만 시스템 구축 시간을 고려해 내년 3월 25일로 유예했다. 과세가 1년 연기됐지만, 트래블룰 적용만큼은 양보하지 않겠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디파이 참여는 더 어려워진다

그간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는 누구의 허락 없이도 메타마스크 등 외부의 지갑을 자유롭게 생성, 국내 가상자산을 외부로 전송하거나 국내로 들여올 수 있었다. 세금을 내지 않고 천문학적인 수익을 누린 사례가 속출했고, 디파이를 통해 외화를 반출하는 시도도 적지 않다는 게 가상자산 거래업계의 중론이다. 

그런데 트래블룰이 적용되면 이용자 환산 금액 기준 원화 100만원 이상인 때 사업자(거래소)에 정보(성명, 주소, 국적 등) 제공이 의무화된다. 이제는 법정화폐와 마찬가지로 탈중앙이 아닌, 중앙의 관리를 받는 신세가 된 것. 

문제는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 상당수가 선물거래를 비롯, 탈중앙화 기반의 금융투자상품(디파이)을 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때문에 정부와 기관, 대형 거래소의 관리에서 벗어나야한다는 비판의 글이 커뮤니티 등을 통해 쇄도하고 있다. 블록체인의 탈중앙화 정신을 외면한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메타마스크 등을 통한 해외 디파이 참여가 쉽지 않다는 비판이 핵심이다.


트래블룰 적용으로 더 안전한 투자환경 기대된다

그러나 금융권에선 자금세탁방지 의무와 책임이 명확해져 가상자산 산업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등 긍정적 요소가 더 크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에선 불법인 선물 거래소로의 대량 전송 또는 해외 개인지갑으로의 대량 인출, 자금세탁을 위해 가상자산을 활용하는 것 또한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증권가의 한 관계자는 "트래블룰 준비가 미흡하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한국이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트래블룰을 적용하는 국가가 되는 만큼, 글로벌 자산시장에서 기대가 클 것"이라며 "해외 선물거래소로의 자금 이동 등을 선제적으로 막을 수 있어 국내 기업과 자산을 보호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권의 또다른 관계자 역시 "현재로서는 가상자산이 자본시장법에 적용받지 않아 시세 조작이나 거래량 부풀리기, 투자자 기만 등이 잇따르고 있지만 트래블룰을 시작으로 규제가 안착할 경우, 점차 기존 금융업에 흡수돼 빠르게 제도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수호 기자 lsh5998688@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