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M 트렌드] 사라지는 한뼘폰…'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2022-04-24     남도영 기자
아이폰 SE 이미지. /사진=통신3사

 

"스마트폰은 한 손으로 조작이 가능해야 한다"

애플 창업자 고(故) 스티브 잡스의 철학을 담은 '한뼘폰'이 시장에 작별을 고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화면이 6인치대까지 커지는 가운데에서도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앙증맞은 매력으로 어필하던 한뼘폰은 결국 물리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소비자들에게 외면을 받고 있는 모습입니다.


아이폰 SE '괴물칩' 달고도 안 팔리네

지난 3월 출시된 대표적인 한뼘폰 '아이폰 SE' 3세대 제품은 판매부진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미국에서 아이폰 SE 3세대는 출시 초기 3주간 판매량이 전작 대비 80%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이폰 SE는 지난 2017년 출시된 '아이폰8'과 동일한 외형에 '아이폰13'에 탑재된 'A15 바이오닉' 프로세서를 탑재한 보급형 스마트폰입니다. 5년 전에 나온 구형 디자인에 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우수한 최신 칩셋을 탑재한 특이한 제품으로, 요즘 스마트폰에선 보기 드문 4.7인치 LCD 디스플레이를 달고 나왔습니다.

미국 내 아이폰 SE 출시 이후 주간 별 판매량 추이 /사진=카운터포인트리서치 제공

아이폰 SE의 판매 부진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여파를 받았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 기간에 스마트폰 시장 전체가 위축되면서 아이폰 SE 뿐만 아니라 다른 브랜드 스마트폰 역시 전보다 크게 덜 팔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화면이 작은 스마트폰에 대한 수요가 감소했다는 분석도 존재합니다. 해당 기간 전체 아이폰 판매량 중 아이폰 SE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3.7%로 예년보다 감소했기 때문입니다. 보급형인 아이폰 SE가 당초 예상보다 다소 높은 가격으로 출시된 점도 판매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입니다.


판매 부진 '아이폰 미니' 사라지나

애플의 플래그십 스마트폰 '아이폰13' 시리즈 내에서 한뼘폰을 담당하고 있는 '아이폰13 미니' 역시 잘 안팔리는 모습입니다. 시장조사업체 컨슈머 인텔리전스 리서치 파트너스(CIRP)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미국 시장에서 판매된 전체 아이폰 중 아이폰13 미니가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3%에 불과했습니다.

미니 제품은 전작인 '아이폰12' 시리즈 내에서도 부진한 판매를 보여왔습니다. JP모건에 따르면 2020년 전체 아이폰 매출 중 '아이폰12 미니'가 차지한 비중은 5%에 그쳤습니다.

아이폰12 미니

이렇게 판매 부진이 이어지자 애플은 결국 올해 출시될 '아이폰14' 시리즈에선 미니 모델을 제외시킬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니 모델을 없애고 일반 모델을 '아이폰14'와 '아이폰14 프로'로 재편할 것이란 전망입니다. 최근에는 이런 소문을 뒷받침할 아이폰14 금형 사진이 웨이보에 유출되기도 했습니다.


발뮤다도 못 살린 한뼘폰…왜?

잡스의 철학을 지켜오던 애플마저 한뼘폰에서 발을 빼면서 작은 스마트폰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은 선택의 폭이 점차 좁아지는 모양새입니다.

죽은 빵도 살리는 토스터기로 유명한 '가전업계의 애플' 발뮤다도 한뼘폰은 못 살렸습니다. 발뮤다는 지난해 4.9인치 크기의 스마트폰을 시장에 선보였지만, 혹평에 시달리다 결국 두 달 만에 판매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발뮤다는 특유의 독창적이고 간결한 디자인을 스마트폰에 적용했지만, 화면은 작은 데 가격은 프리미엄 스마트폰과 비슷하게 책정되면서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습니다. 결국 스마트폰 소비자들의 인식이 '큰 것=좋은 것'으로 굳어져 가는 모습입니다.

발뮤다 스마트폰 /사진=발뮤다 제공

스마트폰이 크다고 다 좋은 건 아닙니다. 주머니에도 잘 안들어가고, 조작하려면 양손을 써야 하기 때문에 동시에 짐을 들거나 메모를 하는 등의 업무가 어렵습니다. 한동안 이런 불편 때문에 작은 스마트폰을 찾는 소비자들이 존재했지만, 갈수록 한뼘폰이 외면을 받는 건 시대적 흐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잡스가 아이폰을 처음 선보인 2007년과는 기술적 배경이나 콘텐츠 소비 환경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최근 스마트폰에 고성능 프로세서가 탑재되고 통신 환경도 5세대(5G) 네트워크 중심으로 옮겨가면서 배터리 소모가 전보다 커지게 됐습니다. 물리적으로 배터리 크기이 작을 수 밖에 없는 한뼘폰은 충전 없이는 하루를 버티기도 힘들어진 상황입니다. 이런 불안한 배터리 환경은 소비자들이 한뼘폰을 택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콘텐츠 소비 환경이 텍스트와 이미지를 넘어 동영상 시대로 넘어 간 점도 한뼘폰을 택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실시간 동영상 서비스(OTT)를 즐기기엔 4인치대 화면으로는 아무래도 답답함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