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M 트렌드] 네카오에 밀린 신동빈과 정용진...혁신 'DNA' 발굴 안간힘  

2022-05-05     이수호 기자
사진=롯데쇼핑

 

수년간 오프라인 매장을 줄이며 '모바일 퍼스트'를 외쳐온 '유통 양강' 롯데와 신세계가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벤처·스타트업 시장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어 주목된다. 양사가 각각 밀고 있는 '롯데ON'과 'SSG닷컴'이 네이버-카카오-쿠팡으로 상징되는 인터넷 플랫폼 사업자들을 좀처럼 당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십년의 업력을 쌓아온 이들이 내부에서 디지털 DNA를 발굴·육성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에 최근 들어선 스타트업의 젊은 에너지를 발판 삼아 디지털 역량을 적극 수혈하는 모습이다. 

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롯데의 홈쇼핑 사업을 도맡고 있는 롯데홈쇼핑은 최근 NFT 마켓플레이스 'NFT 숍(SHOP)'을 론칭, 인기 캐릭터 '벨리곰' 기반의 NFT 판매에 나섰다. 롯데홈쇼핑은 동물 캐릭터 연작으로 유명한 조각가 노준 작가와 협업해 벨리곰 NFT를 60초짜리 3D 영상으로 만들어 개당 6만 원씩 300개를 한정 판매할 예정이다. 사실 벨리곰은 롯데홈쇼핑 사내벤처 프로젝트에서 탄생한 캐릭터로, 최근 들어선 굿즈 등 IP 상품으로의 진화를 꿈꾸고 있다.

보수적인 롯데에서 이같은 MZ 흥행 콘텐츠가 나온 이유는 꾸준히 외부에서 젊은 에너지를 수혈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21년 3월, 롯데의 커머스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롯데쇼핑은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서 밀린 후, 중고거래 스타트업인 '중고나라'에 300억원을 투자했다. 2030세대(MZ세대)의 리셀 커머스 경험을 직접 체득하기 위해서이다. 

같은 해 7월에는 롯데그룹의 시스템 인프라 개발을 주도해온 롯데정보통신이 메타버스 스타트업인 '칼리버스'에 지분을 투자(120억 원)했다. 한 달 뒤에는 자율주행 스타트업인 '포티투닷(250억원)'에도 롯데렌탈발 투자 소식이 전해졌다. 이들은 모두 직접적으로는 롯데그룹의 먹거리와 큰 연관이 없지만, MZ세대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전통 유통가의 올드한 이미지를 벗고, 고객층 저변 확대를 위해 씨앗 뿌리기에 나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포티투닷 투자 이후에도 지난 2021년 9월에 3000억원이라는 거액을 들여 가구&라이프 시장 1위 사업자인 한샘에 투자한 데 이어 펀딩 플랫폼 와디즈(800억원), 콘텐츠 제작사 초록뱀미디어(250억원), 카셰어링 스타트업 쏘카(1800억 원) 등에 잇따라 거액을 투자하며 신성장 동력을 꾸준히 수혈받고 있다. 최근에는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CVC)인 '롯데벤처스'를 통해 스타트업 발굴에 나선 모습이다. 롯데쇼핑 등으로부터 대거 자금을 확충한 롯데벤처스는 스마트 롯데쇼핑 이노베이션 펀드(가칭)을 조성, MZ 킬러 콘텐츠 발굴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스타필드 코엑스몰에 오픈한 번개장터의 '브그즈트 랩' 2호점 포디엄 공간/사진=이소라 기자

 

롯데의 경쟁사로 오랜 시간 유통가의 제왕으로 불리던 신세계 역시 벤처·스타트업 투자를 통해 유통 시장의 혁신을 꾀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벤처캐피탈인 시그나이트파트너스를 통해 중고거래 애플리케이션(앱)인 '번개장터'에 투자를 집행했다. 시그나이트파트너스는 신세계와 계열사인 신세계인터내셔날, 센트럴시티 등이 주축이 된 CVC로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신세계 벤처 투자의 핵심이다. 

또한 지난해 12월에는 IT 계열사 신세계I&C가 VR 스타트업인 '민트팟'에 투자를 진행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신세계는 초기 투자에 머물고 있는 롯데와 달리 이미 투자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지난 2019년 이마트와 신세계I&C가 동반 투자한 인터마인즈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신세계I&C는 인터마인즈와 스마트 리테일 매장 구축 관련 공동 연구를 진행, 셀프매장 도입 시 적용했던 저스트 워크 아웃 기술을 고도화해 '스마트 선반'을 출시했다. 이 기술 개발에 인터마인즈가 큰 역할을 맡은 것이다. 최근 투자를 진행한 스타트업인 '어반베이스'와는 증강현실(AR) 기반의 인테리어 플랫폼을 개발한 바 있다. 

이 같은 리테일테크는 정용진 부회장이 점찍은 생존 전략 중 하나로, 신세계I&C가 개발한 기술은 리테일테크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지난 9월 이마트24가 코엑스 스타필드에 문을 연 '무인 스마트 편의점' 또한 그간 쌓아둔 스타트업 혁신 기술의 집약체다.

이처럼 유통 공룡들이 저마다 IT 기술을 통한 혁신서비스 개발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코로나19 시대, 비대면의 일상화 속에서 '디지털화'의 필요성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유통 시장의 전장이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아닌 온라인 공간으로 옮겨간 후, 유통 채널과 상품 공급사 등 업태를 막론하고 발 빠른 혁신이 필요해진 상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판 '아마존 고'를 꿈꾸는 이들에게 오프라인 사업의 효율을 키워주는 디지털 기술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내부의 고인물로는 혁신이 어려운 만큼,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이들과의 협업을 통해 동반 성장과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나설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수호 기자 lsh5998688@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