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욱 프록시헬스케어 대표 인터뷰

김영욱 프록시헬스케어 대표
김영욱 프록시헬스케어 대표


양치를 하면 이가 개운해지는 이유는 무얼까. 바로 치아에 붙은 '바이오필름'이 떨어져 나가면서 뽀드득 뽀드득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바이오필름은 주로 습한 환경에서 박테이라가 물체 표면에 머무르며 형성하는 보호막으로, 쉽게 말하면 미끈미끈한 '물때'다. 이 바이오필름은 세균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발생하며, 닦아도 닦아도 계속 생긴다. 만약 몸 속에 바이오필름이 생기면 염증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최대 5000배까지 증가시킨다.

이런 천덕꾸러기 바이오필름의 '천적'인 남자가 있다. 바로 프록시헬스케어의 창업자인 김영욱 대표다. 김 대표는 미국 유학 시절 박사학위 과정 중 고안한 바이오필름 제거 기술 '트로마츠 웨이브'를 기반으로 지난 2019년 프록시헬스케어를 창업했다. 미세전류를 이용해 바이오필름을 떼어내는 트로마츠 웨이브는 전세계에서 아직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특허기술로, 관련 논문은 국제학술지 '네이처' 자매지에도 게재됐다.

프록시헬스케어는 2020년 첫 제품 '트로마츠 미세전류 칫솔'을 시장에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다. 이 회사는 이듬해 20억원 규모의 프리 시리즈A, 올해 82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 등 총 132억원의 투자를 성공적으로 유치하며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올랐다. 올해 연매출 1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는 프록시헬스케어는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칫솔을 시작으로 전문 의료기기로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있으며, 자동차 공조장치 오염 방지기술, 선체부착생물 처리기술 등 트로마츠 웨이브 원천기술의 다양한 변신을 준비 중이다.

프록시헬스케어 뒤에는 김 대표의 특별한 삶이 자리한다. 의대생에서 공대생으로, 회사원에서 창업자로, 20년이 걸린 여정 끝에 '의대 자퇴생 출신 공학박사 창업자'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바이오 분야와 전자공학 분야의 전문성을 동시에 갖춘 독특한 이력이 운명처럼 트로마츠 웨이브 기술로 그를 이끌었다. 프록시헬스케어 사업계획서는 병원에서 쓰여졌다. 대장암이었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 창업이었다. 이 한 편의 드라마가 같은 창업기를 김 대표에게 직접 들어봤다.


왜 의대를 그만뒀나

"늘 가슴 속에 뭔가 있었다. 이전까지 공부 잘 하는 모범생으로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가슴 한쪽이 늘 답답했다. 어릴 때부터 공대에 가고 싶었지만, IMF 때 아버지가 직장을 잃으셨다. 공대보다는 전문직을 얻길 바라셨고, 마침 '종합병원'이란 드라마가 인기를 끌어 의사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의대를 다닐 때도 현대물리 과목을 가장 잘했다. 본과에 가니 생각할 게 없이 암기만 하니 재미가 없었다. 그러다가 의약분업 투쟁이 시작됐다. 처음엔 선배들이 시키는대로 열심히 참여했는데, 결국 우리만 남았다. 어린 나이에 책임감 없는 그들이 지조없게 느껴졌고, 결국 회의를 느끼고 의대를 그만뒀다."

공대는 적성에 맞았나

"이미 의대에서 100학점을 듣고 갔기 때문에 왠만한 기초 의학은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바이오 분야 기반이 강했지만, 어린 마음에 과거에 집착하면 못나 보인다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더 의학과 상관 없는 전통 전자공학에서 승부를 보고 싶었다. 특히 전자회로가 너무 재밌어서 이 분야의 달인이 되고 싶었는데, 젊고 머리 좋은 애들을 못 이기겠더라. 순간 이들을 이기기 위한 내 장점을 생각하니 바이오와 전자공학의 융합이었다. 회로로 이길 수 없다면 이걸로 승부를 걸어야겠다 싶어 이후로는 바이오 전자공학 쪽으로 갔고, 미국에서도 이 전공으로 석박사를 했다."

창업은 왜 했나

"창업도 원래 꿈이 있었다. 대학원 때부터 기술 개발하고 논문 쓰는 것보다는 기술을 현실에 적용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곧바로 창업하는 데는 반대가 많았다. 이 만큼 열심히 오래 공부했는 데 망하면 안된다는 두려움도 컸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나름 직장에서도 잘 나갔지만, 또 다시 큰 계기가 왔다. 건강검진을 했는 데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이미 종양이 장을 90% 틀어막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산다면 하고 싶었던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슴 속에 못하고 남아 있던 일, 창업을 했다. 지난 9월 2일이 회사 창립 3주년이었다. 2019년 8월 병원에서 퇴원해 곧바로 법인을 설립했다. 사업계획서는 병원에서 썼다. 병원에서 처절하게 시작했기 때문에 죽더라도 하고 가겠다는 각오로 3년을 달려왔다. 원래 뭐든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다. 노는 것보다 일하는 게 더 좋다."

김영욱 프록시헬스케어 대표
김영욱 프록시헬스케어 대표

 

트로마츠 웨이브는 어떤 기술인가

"전기를 이용해 바이오필름을 떼낸다는 게 핵심이다. 정전기 때문에 빗에 머리카락이 딸려 오는 원리가 들어간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전기 중에서도 미세전류라는 기술을 쓴다. 전기를 이용해 치료법을 개발하는 건 옛날부터 시도됐다. 심실세동기나 물리치료, 피부미용기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체지방 측정에 쓰는 게 미세전류다. 다만 아무 미세전류만 주면 바이오필름이 분리되는 게 아니라 최적화된 특정한 형태의 미세전류가 있다. 이를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반도체 칩을 만들었다. 기술을 상용화하면서 가장 먼저 칫솔을 만들었다. 플라그도 바이오필름의 일종이다. 칫솔모가 닿기 어려운 곳까지 미세전류가 타고 나가 플라그를 제거한다."

바이오필름 연구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처음 대학원에서 연구한 주제는 미생물막 양을 감지하는 센서를 만드는 일이었다. 석사는 센서로 받았다. 센서를 만들고 나서 테스트하니까 10시간이면 다시 자라더라. 골든타임이 너무 짧았다. 아무리 센서가 좋아도 다시 생기는 시간이 너무 짧아 의미가 없었다. 그렇다면 생긴 미생물막을 없애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미생물막을 보다 보니 미세전류를 가하면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교수님한테 얘기하니 처음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했다. 그래서 딱 500달러만 지원해달라고 했다. 밤낮없이 3개월 실험하니 최적화 포인트가 보였다. 교수님도 결과를 보고 놀랐다. 미세전류는 근육을 뚫고 가고 뼈에도 흘릴 수 있다. 감염 두려움 없이 인공관절에 생긴 염증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그때부터 재료공학, 바이오, 기계공학 엔지니어들과 함께 열심히 연구했고, 이 결과를 네이처 자매지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첫 제품으로 칫솔을 만든 이유가 있나

"사업을 시작하면서 현금흐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현금 유동성 위기가 왔을 때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봤다. 칫솔 시장은 경직된 시장이지만, 미세전류 기술이 확실히 효과가 있기 때문에 캐시플로우를 만들 거라고 확신했다. 이를 기반으로 의료기기 쪽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현재 염증치료기에 대한 선행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지금 몸에 생긴 염증을 치료하려면 냉찜질을 하거나 소염제를 먹는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제거하려면 거기에 붙은 고름을 제거해야 한다. 하지만 그 안에 붙은 미생물막 때문에 약이 안듣는다. 외과적 수술이 제일 빠르다. 열어서 다 닦아내야 한다. 대표적인 게 비염이다. 비염은 낫지 않는 질환으로 불린다. 광대뼈 뒤쪽까지 고름이 퍼지면 얼굴을 열지 않는 한 해결이 안된다. 우리 기술을 이용하면 미생물막을 떨어뜨릴 수 있다. 현재 비염치료기를 개발해 의료기기 허가 심사 절차를 밟는 중이다. 이와 함께 임플란트 환자용 칫솔도 개발 중이다. 임플란트 시술은 성공률이 높지만, 이후에는 잇몸을 제대로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이런 임플란트 환자용 칫솔을 만들어 의료기기 허가를 받을 계획이다."

의료쪽 외에도 활용 분야가 무궁무진할 것 같다

"우선 다른 한쪽은 환경 분야다. 텀블러나 정수기 필터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다. 현재는 자동차 공조장치를 관리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자동차 에어컨에서 냄새가 나는 이유는 증발기 표면에 미생물막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걸 없앨 수 있는 부품을 개발해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테스트 중이다. 결과는 잘 나오고 있고, 10월에 학회에서 결과를 발표하고 논문도 낼 계획이다. 내년에는 실증실험도 목표로 하고 있다. 호흡을 길게 가져가려는 프로젝트 중 하나는 선박 분야다. 선박에 붙은 따개비를 제거하는 기술로, 정확히 얘기하면 따개비가 붙는 미생물막을 제거하는 개념이다. 깨끗한 배에 미세전류를 활용해 중요한 부위에 따개비가 붙지 않도록 방지하는 일이다. 현재 울산항만공사에서 지원해 줘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고, 9월 말부터는 자체 보트를 띄워 추가 테스트를 할 예정이다. 복잡한 바닷물 조건에서 미생물막 제거 기술을 최적화하는 게 과제다. 내년에 시제품을 만들고 2024년 실증테스트를 하는 게 현재 목표다."

모든 제품을 직접 만들긴 어렵지 않겠나

"만약 칫솔 사업이 안정되면 다음은 텀블러를 만드는 전략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확장하면 우리가 직접 다 만들기는 어렵다는 허들이 생긴다. 그래서 협업 모델을 구상하고 있다. 우리 제품 회로 안에는 미세전류를 발생하는 핵심 부품이 있다. 이걸 '트로마츠 코어'라는 브랜드로 공급하는 전략적 협업 모델을 만들 계획이다. 노트북에 인텔 마크가 붙듯이 우리와 협업한 제품에는 트로마츠 코어 마크를 붙이는 식이다. 이를 위해선 우선 칫솔 사업이 성공하고, 학술적 기반을 더 만들고, 더 많은 실증을 통해 효과를 확인해야 한다."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미세전류 기술로 미생물막을 떼는 기술은 우리가 유일하다. 지금 미생물막을 없애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청소다. 물리적인 방법이 크게 불편하지 않다면 굳이 우리 기술이 필요하진 않다. 모든 미생물막을 없애는 일을 대체할 수 있다고 보진 않는다. 지금 이 분야에 많은 사람들이 뛰어들지 않는 건 이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불편한 일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다. 사업적으로는 설립 5주년이 되는 2024년 상반기 국내에 상장하고, 추후 의료 쪽 사업으로 나스닥에 상장하는 게 꿈이다. 개인적으로는 더 많은 발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도록 안정적인 성장을 하길 바란다. 올해 흑자전환이 예상되는 데, 이후에는 제2의 트로마츠 기술도 개발하고 싶고, 연구소를 차려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데만 집중하고 싶다. 지금은 창업자로서 디딤돌을 만들기 위해 대표를 하고 있지만, 앞으로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하고 연구로 돌아가고 싶다. 제2, 제3의 트로마츠 기술이 나오면 또 창업할 생각이다."


김영욱 대표는...

-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3년 수료(2001)
- 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 학사(2007)
-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전자컴퓨터공학 석·박사(2014)
- 삼성전기(2014~2017)
- 분자진단 장비업체 씨젠(2017~2019)
- 프록시헬스케어(~현재)

김영욱 프록시헬스케어 대표
김영욱 프록시헬스케어 대표

 

 

남도영 기자 hyun@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