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 3법 무엇이 문제인가](상)n번방 방지법

방송통신 3법은 이른바 'n번방 방지법' 'CP 책임강화법' 'IDC 규제법'으로 불리는 전기통신사업법, 정보통신망법,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을 말한다. 해당 법안은 인터넷 사업자에 대해 디지털 성범죄물에 대한 유통방지 의무를 부과하고, 통신사들이 관리하는 망품질 유지 의무를 함께 부담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 인터넷데이터센터(IDC)를 재난관리시설로 지정해 관리 감독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들 개정안은 지난 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20일 국회 본회의 상정이 유력시되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 스타트업 업계는 방송통신 3법 통과를 앞두고 '졸속처리'라며 반발하고 있다. 법안의 실효성이나 명확성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검토 없이 20대 국회가 통과를 강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는 이번 개정안이 인터넷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안인 만큼 공청회 한 번 없이 급하게 통과시키기 보단 21대 국회에서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쳐 다시 논의 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국회는 성착취물 유통을 근절하고 해외 사업자와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해소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개혁입법을 업계가 발목 잡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테크M은 인터넷 규제 3법 통과의 분수령이 될 법사위 전체회의를 앞두고 논란이 되고 있는 방송통신 3법의 문제점을 최종 점검해본다.<편집자 주>

12일 체감규제포럼, 인터넷기업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벤처기업협회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n번방 방지법' 등 인터넷 산업 관련 쟁점법안의 통과를 중단하고 21대 국회에서 다시 논의할 것을 촉구했다. / 사진 = 남도영 기자
12일 체감규제포럼, 인터넷기업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벤처기업협회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n번방 방지법' 등 인터넷 산업 관련 쟁점법안의 통과를 중단하고 21대 국회에서 다시 논의할 것을 촉구했다. / 사진 = 남도영 기자

#'n번방 방지' 보다는 '2차 유통방지'가 주목적

#대상, 방법 시행령 포괄 위임에 '사적검열' 오해

#성범죄물 걸러낼 기술 없는데 법 통과만 서둘러


'n번방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국민적인 공분을 산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국회가 마련한 법안이다.

개정안은 인터넷 사업자의 디지털 성범죄물 유통 방지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사업자는 디지털 성범죄물 유통방지 책임자를 지정하고, 매년 투명성 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또 디지털 성범죄물에 대한 삭제·접속차단 등 유통방지와 기술적 관리적 조치에 대한 의무도 명시했다.

법안 통과시 사업자가 이런 의무를 다하지 않을 경우 과징금과 함께 형사처벌까지 받게 된다. 하지만 정작 자율규제와 기존 법령에 따라 조치를 취해 온 국내 사업자는 규제 대상이 되고, n번방 사건이 일어난 텔레그램처럼 해외에서 운영되는 폐쇄적 커뮤니티를 규제할 방법은 마땅치 않아 '텔레그램은 못잡고 네이버, 카카오만 잡는다'는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n번방 방지법' 아닌 '성범죄물 2차 유통 방지법'이 정확


n번방 방지법이 국회에서 논의되기 시작하면서 인터넷 업계는 사업자들이 디지털 성범죄물 유통을 차단하기 위해 이용자들의 대화방이나 비공개 게시물까지 들여다보는 '사적검열'을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했다.

이에 지난 15일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번 개정안에서 정의한 유통방지 대상이 '일반에 공개돼 유통되는 인터넷 정보 가운데 불법촬영물, 딥페이크, 아동 청소년 대상 성착취물'이라고 설명했다. 이용자 간 1대 1 대화 내용이나 입장이 제한된 비공개 대화방에서 공유된 내용은 조치 대상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문제는 이런 개정안이 통과돼도 n번방 사건 재발을 막을 수 없었다는 데 있다. n번방 사건은 금전적 대가를 지불한 특정 당사자에게 성착취물이 폐쇄적으로 공유돼 유통된 사건이다.방통위의 설명대로라면 실제 'n번방'은 이번 개정안에 명시된 규제 대상에 적용되지 않는다.

결국 이번 개정안은 폐쇄된 영역에서 공유된 디지털 성범죄물이 공개적인 서비스를 통해 2차 유통되는 걸 막겠다는 의도로 보는 게 맞다. 물론 2차 유통 방지도 중요한 사안이지만, 'n번방 방지법'이란 이름에 걸맞는 근본적인 대책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어느 사업자까지 의무 대상이 돼야 하는가


인터넷 업계 역시 디지털 성범죄물의 유통을 신속히 차단해 피해자들의 2차 피해가 없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입법 취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법안에 명시한 실현 방식은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개정안에는 사업자의 의무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부가통신사업자는 불법촬영물등의 유통을 방지하기 위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술적 관리적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대상과 구체적인 조치 방법을 모두 시행령에 포괄적으로 위임한 점이 문제가 되고 있다.

최성호 방송통신위원회 사무처장이 15일 정부과천청사에서 '디지털 성범죄물 유통방지 의무 강화법안' 관련 브리핑을 개최해 발표하고 있다. / 사진 = 방통위
최성호 방송통신위원회 사무처장이 15일 정부과천청사에서 '디지털 성범죄물 유통방지 의무 강화법안' 관련 브리핑을 개최해 발표하고 있다. / 사진 = 방통위

방통위는 의무 부과 대상에 대해선 규모와 유형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지정한다는 방침이다. 아직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 이용자가 많은 네이버, 카카오톡 등 대형 사업자 뿐만 아니라 스타트업들도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작은 스타트업들이 당장 규제 대상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결국 기업이 성장하면 규제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미 어느정도 규모를 갖춘 플랫폼 사업자들은 자체적인 모니터링 방침이나 자율규제로 불법 정보 유통에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규모가 작은 기업의 경우 규제에 대한 체감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지나치게 적용 범위를 넓힐 경우 스타트업들이 시장에 진출하는 데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실성 떨어지는 '기술적 관리적 조치' 의무


사업자들이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할 기술적 관리적 조치 방법에 대해 방통위는 이용자 신고 기능, 검색 송수신 제한, 경고문구 발송 등을 예로 들었다. 이는 현재도 대부분 적용하고 있는 내용이라 큰 의미는 없다.

이와 함께 방통위가 제시한 'DNA 필터링'은 적용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DNA 필터링은 인간의 DNA를 분석하듯 영상의 고유 구성 요소를 분석하는 기술로, 현재 웹하드 서비스 등 특수유형 부가통신사업자를 대상으로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서비스 유형이 다양한 전체 부가서비스사업자에게 이 기술을 확대 적용하는 건 무리라는 게 업계 입장이다. 기술 자체가 이미 데이터베이스(DB)에 저장된 불법촬영물의 특징값과 유통되는 영상물을 대조하는 방식이라 n번방 사건처럼 성착취물을 만들어 올리는 경우에는 대처가 어렵다.

다른 대안으로 거론되는 인공지능(AI) 기술을 적용해 디지털 성범죄물을 탐지하는 기술 역시 이제 막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개발 사업을 기획하는 단계일 정도로 아직 표준화 된 기술이 없다.

이렇게 마땅한 기술도 없는 상황에 기술적 조치를 법으로 정해 일률적으로 인터넷 서비스 전반에 적용하는 건 자칫 오랜기간 여러 서비스에 불편을 준 '공인인증서'의 재림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섣부른 법안 통과로 '사이버망명' 재현 우려


국회/ 사진 = 테크M DB
국회/ 사진 = 테크M DB

인터넷 업계는 이런 조치 의무 대상과 내용에 대해 좀 더 업계 의견을 수렴하고 폭넓게 논의하기 위해 법안 통과를 21대 국회로 넘기자는 입장이다. 지금은 청문회 한 번 없이 n번방에 분노하는 국민 여론에 등 떠밀려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지만, 일단 법이 한 번 통과되면 부작용이 있어도 다시 되돌리기 어렵다.

이런 업계 주장에 대해 국회에선 국내 사업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들을 통해 반드시 필요한 입법에 발목을 잡고 있다고 불만을 표하고 있다.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방송정보통신 수석전문위원은 "침소봉대식으로 해석하고 근거 없는 선입견만으로 문제 삼고 있는 것"이라고 업계 주장을 비판하기도 했다.

국회와 정부, 업계가 자중지란에 빠진 사이 이익은 해외 사업자들이 챙길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정작 n번방 사건의 범행장소로 쓰인 텔레그램은 물론이고, n번방 수사가 시작된 이후에도 한동안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연관검색어 등을 그대로 노출시킨 구글 등 해외 사업자들에 대한 보다 강력한 조치가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방송통신 3법에 선언적 의미로 역외규정 도입과 국내 대리인 지정제도 신설 등이 이뤄졌지만, 실제 규제 집행력을 갖추는 데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이 사이 국내 사업자에게만 필터링 의무가 부과돼 서비스의 품질 저하나 검열 논란 등이 발생할 경우 국내 이용자들이 해외 서비스로 옮겨가는 '사이버 망명'이 재현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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