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 3법 무엇이 문제인가] (중) CP 책임강화법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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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CP에 돈 받고 싶은 통신사 위한 우회로 열어주느라...

#국내 CP들에게도 '안정'이라는 모호한 책임 강제

#사업자 반발 거세도 공청회 한번 없이 '속전속결'... 굳이 왜?


20대 국회가 충분한 논의없이 법 개정을 강행하고 있는 이른바 '방송통신 3법' 가운데 하나는 콘텐츠제공사업자(CP)에게 망 사업자(ISP)들이 관리하는 망 안정에 대한 책임을 지운다는 내용이 담긴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다.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이용자 수, 트래픽 양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대형 CP들에게 ISP의 통신서비스 품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안정적인 망 유지를 위해 대형 CP들도 책임을 다하라는 얘기다.

인터넷 업계는 이 개정안 자체가 ISP의 책임을 CP에게 떠넘기는 조항이라고 크게 반발하고 있다. 망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원활하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책임은 ISP에게 있는데, 왜 ISP의 의무를 CP에게도 지우려고 법을 개정하느냐는 반발이다. 일각에서는 ISP인 통신사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개정안이 아니냐는 원색적인 비판도 나온다.


글로벌 CP에 돈 받고 싶은 통신사에 '우회로' 열어준 개정안


국회가 이같은 법 개정에 나선것은 사실 국내 CP가 아니라 글로벌 CP를 겨냥한 것이다. 넷플릭스나 유튜브 같은 대형 CP들이 한국에서 발생시키는 트래픽이 폭증하면서 ISP의 망 안정성을 위한 투자 부담이 커졌다. 통신사 부담이 커지다보니, 글로벌 CP들도 망 안정을 위한 비용을 일부 부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리가 세워졌다. 일각에서 이 법을 '넷플릭스법'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사실 글로벌 CP들은 국내 ISP에게 인터넷 접속을 위한 비용을 내지 않는다. 이미 해외에서 인터넷에 콘텐츠가 올라간 상태에서 국내 이용자들에게 서비스되기 때문이다. 국내 CP들이 인터넷에 콘텐츠를 태우기 위해 국내 ISP에게 인터넷 접속료를 내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인터넷의 대원칙 자체가 연결이기 때문에 해외 콘텐츠가 국내 이용자들에게 연결되는 것을 막을수도 없고, 연결해주는 대가로 별도의 비용을 받을수도 없다. 그래서 대형 CP(대형 CP의 기준은 법 시행령을 통해 정해진다)에게 망 안정을 위한 책임을 다하라는 조항을 신설한 것이다. 망 이용료나 연결료가 아닌 안정을 위한 비용을 내라는 일종의 우회수단이다. 

그런데 이 법 개정안에는 어떤 형태의 책임을 다하라는 것인지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없다.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되면, 통신사들이 대형 CP들에게 망 안정을 명분으로 일정 비용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얼마만큼의 비용을 요구할 것인지는 지금으로선 예상하기 힘들다.


"제대로 된 의견수렴 과정도 없는 졸속 입법"


문제는 이 조항이 글로벌 CP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내 대형 CP들도 망 안정에 대한 책임을 부여받게 된다. 지금도 국내 CP들은 망 이용에 대한 대가로 인터넷 접속료를 통신사들에게 내고 있다. 명확히 알려지진 않았지만 네이버나 카카오와 같은 대형 CP들이 내는 인터넷 접속료가 연간 수백억원에 달한다. 이 비용 외에도 또 망 안정을 위한 비용을 더 내야 할수도 있다는 얘기다.

글로벌 CP 때문에 만들어진 법이 오히려 국내 CP들의 발목을 잡게 생겼으니, 사업자들의 반발이 거세다. 사업자들에게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법안의 주요내용이 안정이라는 모호한 용어로 이뤄졌고, 주요 내용은 모두 시행령에 위임돼 있기 때문에 법 시행 이후의 상황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과 인터넷기업협회, 벤처기업협회는 "법률 개정안은 중요한 내용을 모두 정부의 시행령에 포괄적으로 위임하고 있어 향후 어떤 제도가 만들어질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공청회 등 제대로 된 의견수렴과정도 없이 급하게 처리되고 있어 국민의 알권리도 침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통신사에게만 유리한 조항... 협상에 '악용' 우려


특히 인터넷 업계에서는 인터넷망을 설치하고 관리하며 관련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통신사이며 망품질을 유지할 의무는 통신사 본연의 업무인데 왜 CP에게 의무를 전가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 개정안이 통신사가 CP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도록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인터넷 업계 관계자는 "CP인 IT 기업과 스타트업들은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경쟁력 있는 콘텐츠 생산에 사활을 걸고 있다"며 "정부와 국회는 CP가 콘텐츠 생산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고, 통신사는 망품질 유지 및 적절한 투자 그리고 투명한 망비용 책정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망중립성 유지와 공정한 네트워크 질서를 견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코리아스타트업포럼과 인터넷기업협회, 벤처기업협회는 성명서를 통해 "통신사와 해외기업간의 분쟁해결을 이유로 오히려 결과적으로 국내 IT기업과 스타트업에게도 부당하게 망품질유지 의무를 전가하는 법안은 망중립성을 훼손함으로써 거대 통신사에 대해 국내 1만5000개 CP들에게 더욱 열악하고 부당한 지위를 부여할 우려 때문에 분명히 반대한다"며 "국회와 정부는 CP와 통신사 각각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공정한 경쟁환경을 보장해주길 간절히 요청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허준 기자 joo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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