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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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영환경의 격변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일류가 돼야 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업이어야 하는데, 삼성의 수준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이건희 회장의 진단이었다. 15만 대, 150억원에 달하는 휴대폰을 불태운 이건희 회장의 결단이 바로 신경영 선언의 핵심이었다. 


뿔난 이건희 "삼성은 싸구려야!…등에서 식은땀이 나네" 


1990년대까지 삼성은 실질보다 외형 중시의 관습에 빠져 있었다. 일선 경영진의 관심은 지난해에 비해 얼마나 많이 생산하고 판매했는가에 집중돼 있었다. 각 부문은 눈앞의 양적 목표 달성에 급급해 부가가치, 시너지, 장기적 생존전략과 같은 질적 요인들을 소홀히 했다.

이처럼 1990년대 초반 삼성은 위기의식을 갖지 못한 채 국내 제일이라는 자만에 빠져 있었다. 이건희 회장은 "우리는 자만심에 눈이 가려져 위기를 진정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자기 자신의 못난 점을 알지 못하고 있고, 이대로 가다간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내가 등허리에 식은땀이 난다"며 "싸구려에서 벗어나야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삼성이 만든 제품은 동남아 등 일부 시장에서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을 뿐, 미국, 일본 등 선진국 시장에서는 싸구려 취급을 받고 있었다. 이런 수준으로는 세계 초일류기업은 고사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조차 없겠다는 우려를 떨칠 수 없었다. 

마침내 이건희 회장은 1993년 2월 전자 관계사 주요 임원이 참석한 가운데 미국 LA에서 전자부문 수출상품 현지비교 평가회의를 주재했다. 삼성이 잘한다고 자부하며 만든 제품들이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자는 취지였다. 

현지 매장에서 삼성 제품은 고객으로부터 외면받아 한쪽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놓여 있었다. 임원들과 함께 이를 둘러보며 이건희 회장은 "삼성이란 이름을 반환해야 한다. 한쪽 구석 먼지 구덩이에 처박힌 것에다 왜 삼성이란 이름을 쓰는가? 그나마 진열대에 놓여 있는 제품 중에는 뚜껑이 깨져 있거나 작동이 안 되는 것도 있지 않은가? 이는 주주, 종업원, 국민, 나라를 기만하는 행위"라고 통탄했다. 

이건희 회장은 이대로 있으면 삼류, 사류로 전락하고 망할지도 모른다는 절체 절명의 위기감을 전 임직원이 공감하고 대전환의 길을 선택할 것을 바랬다. 그것은, 양(量)이냐 질(質)이냐의 선택이었고, 국내 제일에 머물 것인가, 세계 시장으로 나가 초일류로 도약할 것인가의 선택이었다. 

사진 =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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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영을 준비한 이건희…비행기에서 기존 판을 흔들다 


지난 1993년 6월 4일 이건희 회장은 일본 도쿄에서 삼성의 경영 현장을 지도해 온 일본인 고문들과 삼성이 지닌 문제점들에 대해 회의를 가졌다. 새벽까지 이어진 회의에서 이건희 회장은 디자인 수준을 어떻게 올려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을 털어 놓았다.

삼성전자 정보통신부문 디자인부서를 지도했던 후쿠다(福田) 고문은 삼성전자에서 4년간 근무하면서 보고 느낀 점을 이야기했다. "일류상품은 디자인만으로는 안 되고 상품기획과 생산기술 등이 일체화 되어야 하는데, 삼성은 상품기획이 약하다. 개발을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시장에 물건을 내놓는 타이밍도 놓치고 있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보고서에서 거론되고 있는 사항들은 그 동안 이건희 회장이 숱하게 지적하며 고치기를 강조해온 고질적 업무관행이었다. 도쿄에서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기내에 동승했던 사장단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논의하게 했다. 그 논의는 프랑크푸르트에서도 이어졌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이건희 회장은 세탁기 조립 라인에서 직원들이 세탁기 덮개 여닫이 부분 규격이 맞지 않아 닫히지 않자 즉석에서 덮개를 칼로 깎아 내고 조립하는 모습이 담겨 있는 품질고발 사내방송 프로그램 비디오테이프를 받아 보고 또 다른 충격을 받았다. 1993년 6월 7일 마침내 이건희 회장은 비장한 각오로 임원과 해외주재원 등 200여 명을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로 불러 모아 새로운 삼성을 여는 회의를 주재했다.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이건희 회장은 세기말적 변화에 대한 기대와 위기감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았다. 때로는 찬란한 비전과 희망에 흥분하기도 했고, 때로는 무섭게 엄습해오는 책임감 때문에 등골이 오싹해지기도 했다. 이런 변화는 삼성에게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빼앗아 가 버리는 종말의 시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사장단 회의를 갖고 여러 선진국들을 둘러보면서 이건희 회장은 국가도 기업도 개인도 변하지 않으면 살아 남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회장 자신부터 변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삼성이 뼈를 깎는 아픔을 감내하고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했고, 마침내 1993년 6월 7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삼성은 이제 양 위주의 의식, 체질, 제도, 관행에서 벗어나 질 위주로 철저히 변해야 한다"고 선언하며 삼성 신경영을 선언했다. 

사진 =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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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영 대장정 해외 회의…"이대로 가면 말기 암환자"


신경영 선언 이후, 주요 임원들은 프랑크푸르트로 긴급 소집됐다. 이때부터 신경영을 전파하기 위한 회의와 교육이 숨가쁘게 이어졌다. 그해 6월 24일까지 프랑크푸르트, 스위스 로잔, 영국 런던에서 이건희 회장이 주재하는 회의와 특강이 이어졌다. 7월 4일부터는 일본에서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로 옮겨가며 8월 4일까지 회의와 특강이 계속됐다.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이렇게 2개월에 걸친 긴 여정을 통해 삼성의 신경영 철학은 세계화의 현장에서 제시되고 확산됐다. 
 
1993년 6월부터 8월 초까지 프랑크푸르트에서 도쿄에 이르는 대장정을 통해 이건희 회장은 사장단, 국내외 임원, 주재원 등 연인원 1800여 명을 대상으로 회의와 교육을 실시했다. 임직원들과 나눈 대화시간은 350시간에 달했으며, 이를 풀어 쓰면 A4 용지 8500매에 해당하는 방대한 분량이었다. 

삼성 신경영은 이제까지 지속되었던 양 위주 경영의 악순환 고리를 끊고 질을 중심으로 양이 조화를 이루는 선순환의 경영구조를 실현하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따라서 질 위주 경영은 신경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은 양 위주 경영의 한계를 절감하고, 양적 사고의 결과로 생기는 불량을 고질적인 병폐라고 지적했다. 불량은 암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회사를 망하게 할 수 있는 불량의 폐해를 강조했다. 이 회장은 "나는 20년이 넘도록 '불량은 암'이라고 말해왔다. 위궤양은 회복되지만 암은 진화한다. 초기에 잘라내지 않으면 3~5년 뒤에 온몸으로 전이되어 사람을 죽인다. 삼성은 자칫 잘못하면 암의 말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암은 초기에 수술하면 나을 수 있으나 3기에 들어가면 누구도 못 고친다"고 토로했다.

그는 "내 말은 양과 질의 비중을 5:5나 3:7 정도로 가자는 것이 아니다. 아예 0:10으로 가자는 것이다. 질을 위해서라면 양을 희생시켜도 좋다. 제품과 서비스, 사람과 경영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하다면 공장이나 라인의 생산을 중단해도 좋다는 말이다. 질 위주의 경영을 해야 불량이 줄고, 품질이 좋아지고, 효율도 더 나고, 물건이 더 나와서 결국은 좋은 의미의 양이 된다. 지금 우리의 경영은 불량품을 대량으로 생산해서 오히려 마켓셰어를 자꾸 줄이고 있다. 생산량은 늘지만 마켓셰어가 줄어 적자가 자꾸 커진다"고 강조했다. 

사진 =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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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억 휴대폰이 한 순간에 잿더미…화형식으로 하나된 삼성


삼성은 불량을 없애는 제품의 질부터 혁신을 시작했다. 생산라인을 중단시키더라도 불량을 선진 수준으로 낮추도록 했으며, 한 품목이라도 좋으니 세계 제일의 제품을 만들기로 했다. 사람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인사제도를 개선하고,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조직문화를 만들어 나갔다. 경영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형식적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인프라를 구축하고, 사업구조를 고도화시켰다. 

대표적인 것이 라인스톱 제도다. 삼성의 초일류를 향한 출발은 불량 추방에서 시작됐다. 삼성은 무한한 성장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량으로 인해 질적인 면에서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고, 선진시장에서도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희 회장은 당시 삼성전자의 현주소에 대해 "생산 현장에 나사가 굴러다녀도 줍는 사람이 없는 조직이 삼성전자고, 3만명이 만들고 6000명이 고치러 다니는 비효율, 낭비적인 집단인 무감각한 회사"라고 질타하며, 품질에 대한 임직원들의 기본 의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품질을 최우선으로 불량을 뿌리 뽑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들이 잇달아 취해졌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라인스톱 제도였다. 

라인스톱제란 생산현장에서 불량이 발생할 경우, 즉시 해당 생산라인의 가동을 중단하고 제조과정의 문제점을 완전히 해결한 다음 재가동함으로써 문제 재발을 방지하는 혁신적인 제도다. 생산물량이 밀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라인을 세워야 하는 생산 담당자들에게는 상당한 고통이었지만, 효과는 컸다. 전자제품의 경우 1993년의 불량률이 전년도에 비해 적게는 30%, 많게는 50%까지 줄어들었다. 
 
라인스톱제와 함께 질 위주로 가기 위한 삼성의 뼈를 깎는 의지를 보여 준 사례가 1995년 3월에 있었던 불량 무선전화기 화형식이다. 당시 삼성전자의 무선전화기 사업부는 품질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완제품 생산을 추진하다 제품 불량률이 무려 11.8%까지 올라가는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불량은 암이고, 양을 버리고 질로 가기 위해 모두 변할 것을 다짐한지 1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불량품이 나오는 것에 대해 원성이 높았다. 이건희 회장은 "신경영 이후에도 이런 나쁜 물건을 만들고, 엉터리 물건을 파는 정신은 무엇인가? 적자 내고 고객으로부터 인심 잃고 악평을 받으면서 이런 사업을 왜 하는가? 삼성에서 수준 미달의 제품을 만드는 것은 죄악이다. 회사 문을 닫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시정해야 한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강하게 질타했다. 

1995년 1월 이건희 회장은 품질사고 대책과 향후 계획을 점검하면서 고객들에게는 사죄하는 마음으로 무조건 새 제품으로 교환해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수거된 제품을 소각함으로써 임직원들의 불량의식도 함께 불태울 것을 제안했다. 15만 대, 150여억 원 어치의 제품이 수거되었고 화형식을 통해 전량 폐기 처분됐다. 자기 손으로 힘들게 만든 제품이 불타는 것을 보면서, 임직원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불량품 화형식은 전 임직원의 마음을 하나로 뭉치는 계기가 됐다. 

 

이수호 기자 lsh5998688@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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