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에게 '가성비'란?

#코로나 이후 '많이 팔고 보자'

#'SE' 앞세워 중저가 시장 노린다


그동안 '고가 전략'을 고수해 온 애플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지난해부터 애플 제품에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제품)'라는 낯선 평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타사 대비 저렴한 가격대라 보긴 어렵지만, 그동안 소비자의 지갑 사정 따윈 안중에 없던 애플의 행보에 비해선 그나마 납득할 만한 가격대의 제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

애플 M1 탑재 PC 제품군 / 사진 = 애플
애플 M1 탑재 PC 제품군 / 사진 = 애플

대표적으로 애플이 직접 설계한 'M1' 칩을 달고 나온 제품들이 가성비가 높다는 평을 받고 있다. 지난해 최초로 M1칩을 달고 출시된 '맥북 에어'는 기본형이 999달러(국내 출고가 129만원)에 고가의 '맥북 프로' 제품 못지 않은 성능을 발휘하며 '가성비 노트북'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이어 올해 M1 칩과 더불어 디자인까지 확 바꿔 출시된 '아이맥' 역시 기본형이 169만원부터 시작돼 그간 나왔던 모델에 비해 합리적인 가격대라는 평을 받고 있다. M1이 성능이 워낙 좋은 데다, 24형 4.5K 레티나 디스플레이까지 감안하면 일체형 PC치고 높은 가격이 아니라는 것.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신형 아이맥은 출고가 지연될 만큼 이례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

애플이 고가의 프리미엄 제품 일변도를 포기하고 가격대를 비교적 합리적인 수준으로 책정하고 있는 데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제품 확산 전략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애플의 콘셉트는 확실히 '많이 팔자'로 보인다.

애플 신제품 공개 영상에 출연한 팀 쿡 애플 CEO / 사진 = 유튜브 캡쳐
애플 신제품 공개 영상에 출연한 팀 쿡 애플 CEO / 사진 = 유튜브 캡쳐

코로나19 여파로 재택근무나 원격수업 등 비대면 환경이 확산하면서 애플은 아이폰은 물론이고 맥북과 아이맥, 아이패드, 애플워치 등 전체 제품 판매가 호황을 맞고 있다. 이에 힘입어 애플은 매 분기 '어닝 서프라이즈'를 달성하고 있으며, 올 2분기에도 호실적이 예상되고 있다. 애플은 이런 흐름을 틈타 공격적인 신제품 출시로 생태계를 확산하고, 이후 애플 TV+, 애플 뮤직, 애플 아케이드 등 구독 서비스까지 '락인(Lock-in)'을 유도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컨슈머인텔리전스리서치파트너스(CIRP)에 따르면 올 2분기 애플 iOS와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의 새로운 스마트폰 활성화 비율이 각각 50%씩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전까지 iOS와 안드로이드가 4대 6 비율로 가져갔던 것에 비해 애플이 격차를 상당히 줄인 수치다. 이는 기존 사용자들의 높은 충성도와 더불어 신규로 애플 생태계에 종속되고 있는 소비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SE' 앞세워 중저가 시장까지 노린다

애플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제품 가격 문턱을 낮추며 중저가 시장까지 점유율 확산을 노릴 것으로 보인다.

대만 디지타임스와 일본 닛케이아시아 등 외신 등에 따르면 애플은 내년 상반기 5G 기능을 탑재한 보급형 '아이폰 SE3'를 출시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 제품은 올해 출시될 '아이폰13'에 탑재될 칩과 동일한 'A15' 프로세서, 혹은 'A14 바이오닉' 등을 탑재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업계에선 아이폰 SE3가 '가장 저렴한 5G 아이폰'으로 포지셔닝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애플 보급형 스마트폰 '아이폰 SE' 2세대 / 사진=애플
애플 보급형 스마트폰 '아이폰 SE' 2세대 / 사진=애플

지난해 출시된 아이폰SE 2세대 제품은 코로나19로 소비심리가 위축된 틈을 타 가성비를 앞세워 높은 판매고를 올린 바 있다. 이와 더불어 애플은 '애플워치 시리즈6'와 함께 보급형인 '애플워치 SE'를 선보이기도 했다. 애플의 'SE' 제품군은 기존 제품과 부품을 공유해 원가를 절감하고, 이를 통해 개도국 등을 중심으로 점유율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제품 판매 자체는 마진이 높지 않지만, 플랫폼을 확장하는 차원에선 이익이 되는 전략이다.

아직은 '희망사항'에 가까운 내용이지만, 애플이 '맥북 SE' 모델을 검토하고 있다는 루머도 나오고 있다. 맥북 SE는 M1 칩셋을 탑재하고 아이패드 등과 일부 부품들을 공유해 원가를 절감, 699달러 이하 가격으로 판매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를 통해 애플은 '크롬북' 등이 버티고 있는 교육용 시장 등 중저가 시장을 노려 맥북의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아직 맥북 SE 개발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한국 시장엔 어떤 영향 미칠까

애플의 중저가 제품 판매 확대가 두려운 건 판매량 자체 보다 '애플 생태계'에 종속되는 소비자가 늘어난다는 점이다. 애플의 이런 전략은 한국 시장에서도 본격적으로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가성비가 높아진 애플 제품이 그동안 고가 전략에 반감을 가졌던 국내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애플은 최근 한국 시장 공략에 적극적이다. 애플은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 철수를 틈타 LG폰 보상판매 등 공격적인 프로모션을 펼친 데 이어, 'LG 베스트샵'에 자사 제품을 공급하겠다는 묘수를 던졌다. 스마트폰 사업의 공백을 메우고 가전과의 시너지를 노린 LG전자와, 한국 시장에서 판매 채널 확대를 노리는 애플의 노림수가 절묘히 맞아 떨어진 수라는 평이다. 양측 모두 아직 공식적인 언급은 피하고 있지만, 성사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으로 알려졌다.

애플스토어 여의도점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 사진=이성우 기자
애플스토어 여의도점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 사진=이성우 기자

이와 더불어 애플은 한국에 플래그십 매장인 '애플 스토어' 3, 4호점을 추가 출점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시들했던 '애플 뮤직'의 재정비와 함께 '애플 TV+' 진출을 추진하며 서비스 부문에서도 한국 시장 적응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미 애플 아이폰이 젊은층의 지지를 모으고 있는 가운데, 내년까지 가성비가 높은 제품들이 대거 출시된다면 시장 판도에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급해진 건 삼성전자다. 그동안 압도적 점유율을 자랑하던 자국 시장에서 애플의 입김이 강해지고 있는 데 속이 편할리 없다. 운영체제(OS)부터 제품, 구독 서비스에 이르는 완벽한 수직계열화를 이룬 애플 생태계에 소비자들을 뺏긴다면, 다시 찾아오기 어려울 수 있다. 삼성전자 역시 최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등 굵직한 파트너들과 '갤럭시 생태계'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생태계'와 '생태계'가 맞붙는 치열한 경쟁이 예고되고 있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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