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모든게 부족했던 1970년대, 국민의 단백질 공급원으로 들여온 배스(bass)는 특유의 식감과 향 때문에 기대와는 달리 식탁에서 외면받는다. 마땅한 천적도 없었던 우리의 호수하천 생태계는 배스의 엄청난 번식력과 포식성으로 초토화 되고만다. 배스는 1998년 생태교란 어종으로 지정되며 본격적인 퇴치가 시작된다. 민관합동 베스퇴치단 조직을 시작으로 포획에 특화된 작살과 그물이 개발되고, 배스알의 부화를 막기 위한 산란틀이 보급된다. 민간 포획 베스의 공공 수매 등 온갖 기법과 아이디어, 그리고 인센티브까지 동원되며 배스와 사투가 벌어진다.

매립 외에 마땅한 대안이 없던 연간 5000톤에 달하는 포획 배스의 처리도 고민거리였다. 그렇게 힘겨웠던 배스 전선에 '스타트업'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등장한다. 기술과 창의력으로 무장한 스타트업은 배스의 풍부한 단백질과 칼슘을 유기농 비료와 수요가 급등하는 반려동물 식품으로, 더 나아가 어묵과 같은 가공식품 원재료로까지 탈바꿈시킨다. 일부 지역 어민들은 기업들과 대규모 배스 공급계약을 맺는 등 이 애물덩이는 지역민의 수입원이자 고부가가치 상품의 원재료로 화려하게 변모 중이다. 그리고 사라졌던 토종 물고기들이 돌아오며 하천생태계도 되살아 나고있다.


배스 퇴치 교훈 삼아 '탄소와의 전쟁'을 준비하라

지구는 탄수화물에 중독된 대사증후군 환자처럼 심각한 탄소의존증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홍수, 폭염 등 최근의 이상기후 에서 보듯이 이 오래된 지구의 기저질환은 언제든 심각한 합병증을 불러일으킬 태세다. 앞으로 1.5도 이상의 지구 체온 상승은 그 어떤 처방으로도 되돌릴 수 없다는 '티핑 포인트'로 여겨지고 있다. 탄소 줄이기, 즉 지구의 저탄소 전환은 배스 퇴치와는 비교도 안될 복잡하고, 난해하고, 절박한 사안이다. 하지만, 배스 퇴치과정에서 이 탄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일부 엿볼 수 있다. 

UN 주도의 기후위기 대응, 탄소중립 이행의 국제질서는 점차 공고해지고 있다. 전세계는 자국의 여건에 맞는 감축목표와 전략을 세우고 저탄소 기술개발과, 이와 연계할 법, 제도, 규제, 인센티브 등 제도적 기반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탄소와의 전쟁은 결국 탄소 줄이기로 만들어 낼 부가가치와 일자리 생태계가 활성화될 때 끝날 거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배스 전선의 지원군이 나타나는데 50여년이 걸렸다. 탄소 전선에는 그럴 여유가 없다. 저탄소 유니콘과 히든 챔피언 육성에 우리의 정책 역량이 집중되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 세계가 목표한 시간표대로 지구의 탄소 다이어트가 진행된다면, 불가피하게 막대한 충격과 양극화가 수반할 우려가 크다. 특히, 상대적으로 대응여력이 취약하고 준비가 덜 된 중소기업에 고스란히 그 여파가 미칠거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우리나라 고용의 약 81%, 매출의 47%를 책임지는 중소기업의 성공적 저탄소 전환은 탄소와의 전쟁,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를 견인하고 지원할 스타트업과 산업생태계 조성에 국가적 정책 역량을 집중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시급한 과제이다. 대기업 중소기업간의 상생협력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이러한 생태계 조성의 초기 과정에 마중물, 디딤돌 역할로 주목받고 있다. 


대전환 시대, 스타트업에 기회를 열어주자

고탄소 생산설비를 운영하는 대부분의 중소 제조업체들에게 저탄소화 추진은 쉽게 엄두 조차 내기 어려운 사안이다. 이들에 대한 국책연구기관 및 대기업의 기술과 공정혁신 지원은 저탄소 산업전환의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세제, 금융, 교육훈련 등의 정책 수단을 동원한 측면 지원으로 정책집행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이러한 과정 등을 통해 전문 엔지니어링 산업 생태계가 활성화되면 기술 컨설팅, 공정 재설계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창출이 가능해지고, 선순환의 수레바퀴를 돌릴 수 있게 된다. 민관협력 녹색기술 허브와 클러스터 구축 등은 이러한 생태계 조성 가속화에 촉매제가 될 것이다. 

지구의 저탄소화 과정은 그야말로 위기와 기회가 양립하는 도전의 시간이 될 것이다. 인류 역사가 증명하듯, 위기의 대응은 언제나 새로운 혁신을 불러 일으키고, 거대한 기회와 도전의 장을 열어 왔다. 특히, 탄소의존형 추격형 모델로 압축 성장한 우리에게는 더욱 와 닿는 이야기다. 전 세계는 저탄소화 과정의 충격과 비용, 그리고 탄소격차 극복을 위해 그동안 많은 자본을 충당해 왔고 과감히 지갑을 열 태세를 하고 있다. 이 기회를 활용한 우리 경제산업의 탈탄소형 전환은 오랜기간 염원해 온 선도형 모델로 가는 첫 걸음이자, 저성장의 덫에서 벗어날 모멘텀으로 활용할 수 있다. 

대전환의 시대, 탄소를 자원으로 전환을 기회로 활용해 우리의 스타트업이 유니콘과 히든챔피언으로 세계 무대에서 춤추게 해야한다. 그리고, 우선은 그 무대의 조명, 음향, 연출을 준비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그동안 국민의 소중한 세금으로 축적한 기술과 혁신역량은 스타트업의 탄소 줄이기에 작살과 그물, 산란틀로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다. 한국의 디지털 역량, 스마트 인프라, 위기에 강한 DNA는 탄소와의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 핵심자산이다. 이를 통해 세계가 주목하는 또 하나의 K-성공 신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포집된 탄소가 포획된 배스처럼 우리 국민과 기업의 안정된 소득원이자 미래산업의 핵심자원으로 화려하게 변모하고, 건강한 지구생태계가 복원될 그날을 기대해본다.


<Who is...> 원유형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 

원유형 책임연구원은 영국 서섹스 대학 정책학 박사로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 방문연구원을 지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25년간 국가 연구개발, 과학기술 거버넌스 등을 연구해 왔으며, 현재는 KIST 부설 녹색기술센터에서 국가기후탄소 정책을 연구 중이다. KIST 정책실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문위원 등을 역임한 바 있으며,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전임교원, 고려대학교 그린스쿨 겸임교원으로 후학양성에도 힘써오고 있다. 


글=원유형 KIST 책임연구원
정리=남도영 기자 hyun@techm.kr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