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블록체인이 '게임 체인저'된다
MS가 '빙'으로 구글을 위협할 날이 올 줄 알았나
무너지는 업의 경계, 디지털 기술이 가속화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왜 통신사는 통신보다 AI와 로봇에 더 관심이 많을까. 왜 네이버와 카카오는 콘텐츠와 커머스에 목을 맬까. 게임사들이 블록체인 개발에 열을 올리고 증권사가 코인을 만지작 거리는 이유는 뭘까. 테크M 창간 3주년 특별기획 <테크&비욘드>를 통해 디지털 혁신 기술이 산업 지형도를 바꾸는 '빅블러' 시대를 조망한다.<편집자주>


1985년 나이키는 NBA 루키 마이클 조던과 함께 브랜드 '에어 조던'을 론칭한다. 80년대만 해도 아디다스나 컨버스에 밀려 농구화 시장 꼴찌였던 나이키는 마이클 조던의 성적과 함께 수직상승한 에어 조던의 인기로 시장을 뒤집었다. 

나이키의 본질은 신발의 품질에 있지 않다. 마케팅 능력이야말로 나이키가 정의한 '업의 본질'이었다. 나이키보다 질 좋은 신발은 시장에 얼마든지 넘쳐난다. 이들에 맞서 나이키는 더 값싸고 오래 신는 신발을 만드는 대신, 전설적인 스포츠 선수들과 계약을 맺고 제품에 이미지를 덧씌우는 데 집중했다. 그 유명한 'Just Do It'과 같은 명료한 메시지를 통해 나이키를 착용하면 선수들처럼 열정적이고 충만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처럼 느껴지도록 소비자들을 홀렸다.

인공지능(AI) 기반 이미지 생성 툴 '달리(DALL-E)'로 만든 이미지 /사진=테크M
인공지능(AI) 기반 이미지 생성 툴 '달리(DALL-E)'로 만든 이미지 /사진=테크M

경계가 무너진다. 아주 빨리

지금 나이키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이 회사는 지난2017년부터 고객 경험 혁신을 위해 D2C(Direct to Consumer) 전략을 펼쳐왔고, 이에 필요한 기술과 데이터 분석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인공지능(AI) 등 여러 테크 스타트업들을 인수해 왔다. 이제 나이키는 광고 카피를 고민하기에 앞서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마케팅 계획을 세우고 재고를 관리하며, 제품 생산주기와 수요를 예측해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발빠르게 선보인다. 또 한 번 업의 본질을 스스로 바꿔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의 흐름은 비단 나이키 뿐만 아니라 지금 모든 분야의 기업들이 고민하고 있는 지점이다. AI가 제품을 디자인하고 로봇이 제품을 만들며, 소비자 맞춤형 앱(또는 메타버스?)을 통해 판매된다면 나이키는 스포츠 브랜드일까, 혹은 디지털 테크 기업일까. 이제 업종을 가리지 않고 디지털 기술을 다루는 재주가 가장 핵심적인 역량이 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이 업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사진=나이키코리아 제공
/사진=나이키코리아 제공

인공지능과 로봇, 사물인터넷, 블록체인 등 파급력이 큰 디지털 신기술이 계속해서 등장하면서 전통 산업과 테크 산업의 간의 경계는 급속히 흐려지고 있다. 심지어 전통적인 테크 업계 내부에서도 변화가 가파르다. 1990년대 윈도 제국을 건설한 마이크로소프트는 2014년 사티아 나델라 최고경영자(CEO) 취임 이래 클라우드 기업으로 탈바꿈했고, 불과 10년도 안된 2023년 다시 한 번 AI를 중심으로 사업 재편에 나서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검색엔진 '빙(Bing)'으로 구글을 위협할 날이 올 줄은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디지털화로 인해 산업간 경계가 무너지는 '빅블러'란 용어가 나온 지는 꽤 됐지만, 코로나 팬데믹과 인플레이션, 고금리, 탈세계화 등 예상치 못한 거대한 변화들로 지금처럼 하루가 다르게 업의 본질이 달라지는 일들을 상상하긴 어려웠다. 불과 지난해 말 처음 선을 보인 '챗GPT'는 순식간에 전 세계를 뒤흔들며 기업들의 새로운 지향점을 제시했다. 이제 기업들은 엑셀 시트를 만들고, PPT 발표 자료를 준비하고, 일러스트를 그리고, 앱을 코딩할 사람을 찾는 대신, AI를 조련하고 이들을 학습시킬 데이터를 정비하며 필요없어진 사람을 내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테크가 업의 본질을 바꾼다

AI는 어쩌면 서막일지 모른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AI는 아직 컴퓨터나 스마트폰 속에 존재하지만, 앞으로는 우리가 그들이 사는 세상으로 직접 걸어들어 가게 될 지 모른다. 애플과 삼성, 메타 같은 거대 테크 기업들이 앞다퉈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AR), 나아가 확장현실(XR)로 진입하기 위한 장치들을 개발하고 있는 건 메타버스가 이미 시작된 미래라는 확신 때문이다. 테크 기업이라면 10년 전 모바일 혁명 같은 거대한 기회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챗 GPT 소개 이미지 /사진=디디다 컴퍼니 제공
챗 GPT 소개 이미지 /사진=디디다 컴퍼니 제공

인간이 완전한 가상 공간으로 발을 내딛는 동안, 현실의 일들을 대신 해 줄 존재들이 부상하고 있다. 테슬라가 처음 휴머노이드 '옵티머스'를 공개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일론 머스크의 실없는 장난감 정도로 생각했을 지 모른다. 하지만 팬데믹과 전쟁으로 인한 세계화의 붕괴와의 공급망 불안, 강대국들의 리쇼어링 열기는 한참 먼 미래로 보였던 로봇의 노동 대체를 시급한 현안으로 끌어오고 있다.

정치와 사회는 이처럼 강력한 디지털화의 물결 속에 더 이상 일부 테크 기업들이 막대한 권력을 독점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사용자들이 스스로 혁신을 주도하고 보상을 나눠 갖는 '웹 3.0'은 단순한 이상주의를 넘어 새로운 질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해하기 위해선 왜 아무런 쓸모가 없어보이는 비트코인이 아직도 시세를 유지하고 있는 지, 기껏해야 소셜네트워크(SNS) 프로필 사진을 바꾸기 위해 수백만원짜리 대체불가능한토큰(NFT)을 구매하는 지 이해가 필요하다.

앞으로 이런 변화에 등을 돌린채 사업을 이어가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아직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들과 무수한 선택지 가운데 한 가지 확실한 건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명제 뿐이다. 지금 변화하는 업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영영 나이키 같은 1등 브랜드가 되긴 어려울 지 모른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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