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일운 님 /캐리커쳐=디미닛
안일운 님 /캐리커쳐=디미닛

 

지난달 12일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벤처투자법)이 새로 공포돼 시행됐습니다.

사실 벤처투자법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법령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는 이전에도 벤처기업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법령이 다수 있었습니다.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투자자를 개인투자자, 벤처캐피털(VC), 신기술투자자로 분류해놓고, 각각의 형태를 법률에서 정하는 이름인 개인투자조합, 중소기업창업투자조합(모태조합에서 출자를 받았다면 한국벤처투자조합), 신기술사업투자조합을 붙여 관리해 왔습니다.

이는 각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모아서 벤처기업에 투자하고자 할 때, 편리하게 그러한 투자기구를 설립하게 하면서도 자금을 운용할 때는 소관부처의 관리 감독을 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이런 감독 규정들이 '중소기업창업 지원법'과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흩어져 있어, 똑같이 벤처기업에 투자를 하려는 목적이 있어도 실무적으로 선택하는 조합의 형태에 따라 운용 조건이나 관리감독 형태가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이번 벤처투자법은 이러한 투자 형태를 '벤처투자조합'으로 통합해 일률적이고 체계적인 벤처기업 투자 체계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벤처투자법은 이 외에도 벤처투자의 법률적 형태와 방법에 다양한 변화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벤처 캐피탈과 같은 투자자들이 벤처기업에 투자할 때, 조건부지분인수계약(SAFE, Simple Agreement for Future Equity) 방식으로 투자를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SAFE 투자


SAFE는 실리콘밸리에서 처음 고안된 투자 방법입니다.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과 엑셀러레이터들은 투자대상 회사의 가치(밸류에이션)를 산정하는데 늘 어려움을 겪습니다. 신주인수 방식의 투자를 하는 투자자들은 먼저 기업의 가치를 환산해야, 투자를 통해서 취득하고자 하는 주식 수에 상응하는 금액을 투자금을 지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초기 스타트업의 가치를 환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초기 스타트업은 매출도 없고, 자산도 없고, 공장도 없고, 부동산도 없습니다. 인력도 창업자 2~3명이 전부이며 좋은 아이디어와 기술이 있지만 이러한 아이디어는 나중에 얼마의 가치를 지닐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SAFE는 이러한 회사 가치 산정을 '뒤로 미루는' 형태의 투자입니다. SAFE 투자자는 일단 투자금을 회사에 공급하고 나서, 나중에 회사가 밸류에이션을 산정하는 '정식 투자'를 받게 되면 그때 비로소 회사의 주식을 받게 됩니다.

이때 SAFE 투자자가 받는 주식의 수는 '정식 투자'시 회사의 밸류에이션에 따라 다르게 계산됩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SAFE 투자자가 처음에 예상했던 것 보다 지나치게 적은 지분을 가져가지 않도록, SAFE 계약을 체결할 때는 회사 가치의 상한(Valuation Cap)을 두어 SAFE 투자자가 '최소한 이정도' 수량의 주식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합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추후 '정식 투자'를 하고자 하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선행투자를 한 SAFE 투자자의 지분 비율을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초기 단계의 기업에 투자할 때 밸류에이션에 대한 엄격한 산정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투자자와 회사 모두 빠르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으며, SAFE 투자자는 비교적 자신의 지분을 지키기 용이하다는 점 때문에 미국에서는 SAFE를 이용한 투자가 활성화돼 있습니다.

벤처투자법이 제정되면서, 국내의 벤처캐피탈들도 이러한 SAFE 투자 방식으로 스타트업에 투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실제로 운용해보면 밸류에이션 캡의 설정 등 투자조건의 설정이 쉽지만은 않기 때문에 국내에서 크게 활성화되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의사 결정의 장벽을 낮춘다는 점에서 좀 더 활발한 벤처 스타트업 투자 환경을 조성하는 장치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글=안일운
정리=김현기 기자 khk@techm.kr


<Who is> 안일운 님은?

법무법인 비트의 수석변호사다. 주요 업무는 IT 기업과 가상자산/블록체인 기업의 법률 자문, 투자와 M&A 자문이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세계 대학생 프로그래밍 경시대회(ICPC) 한국 본선에서 입상하고 네이버 검색개발센터 과장으로 일하다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진학, 제5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ICT 스타트업 법률 멘토 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IT 블록체인 특별위원회 위원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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