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이머들의 은퇴 이후의 삶, 함께 고민해야"

/그래픽=이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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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 몰아쳐도 이겨내고, 일곱번 넘어져도 일어나라!"

옛날에 유명했던 애니메이션 주제곡 가사입니다. 일곱번이나 실패를 경험해도 또 도전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좌절하지 말라는 이야기지만 현실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다섯번만 넘어져도 살이 패이고 다리 뼈가 부러지기 때문에 일어서고 싶어도 일어설 수 없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 그 어려운 것을 해낸 프로게이머가 있습니다. 남들은 한번도 하기 힘들다면 일곱번의 준우승, 그리고 여덟번째 도전 만에 당당하게 우승컵을 들어 올린, 스타크래프트2 프로게이머 어윤수 입니다.

e스포츠 팬들이 자기 일처럼 이렇게 한 선수의 우승을 바란 적은 홍진호를 제외하고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홍진호는 결국 은퇴할 때까지 공식대회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지만 어윤수는 결국 우승을 차지하며 팬들의 답답한 응어리를 싹 풀어줬죠.

'7전8기'의 살아있는 전설, 어윤수가 잠시 팬들과 안녕을 고합니다. 군입대를 앞둔 어윤수는 덤덤하게 이별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13년 차 베테랑 프로게이머 어윤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커피한잔과 함께 들어봤습니다.


준우승만 7번... '콩라인' 수장 홍진호를 위협하다


어윤수는 자신의 이름보다 '콩라인'으로 더 많이 불렸습니다. e스포츠 역사에서 준우승을 두번 이상 한 선수는 '콩라인'에 이름을 올립니다. 준우승의 대가 홍진호의 별명인 '콩'을 따서 만든'콩라인'에는 수많은 선수들이 종목을 가리지 않고 회원으로 등극하기도 했습니다. 

그 중 가장 우수한 회원이 어윤수였습니다. 어윤수는 스타크래프트2에서만 무려 7번의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수장인 홍진호의 기록을 훌쩍 뛰어 넘는 '대기록'이었습니다. 팬들은 이제 수장은 어윤수라고 치켜 세웠습니다. 

사실 7번의 결승전에 오른 것만으로도 엄청난 기록입니다. 프로게이머를 하면서 결승에 한번도 오르지 못하고 은퇴하는 선수가 부지기수인 상황에서 어윤수의 7번 결승 진출은 또 하나의 대기록이기도 합니다. 

/사진=이소라 기자
/사진=이소라 기자

하지만 7번 모두 준우승을 차지했다는 것은 더 놀라운 기록이죠. 사람들은 그의 준우승 기록에 경의를 표하기도 하고, 그가 우승하는 날 강남 한 복판에서 춤을 추겠다고 공약한 팬들도 있었습니다. 이제 어윤수가 결승에 올라가면 모든 사람들은 누가 우승할까를 궁금해 하지 않고 '과연 어윤수가 준우승을 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우승자보다 어윤수에게 더 많은 관심이 쏠리는 기이한 현상까지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어윤수의 준우승에 열광했지만 막상 당사자는 너무나 힘들었다고 고백합니다. 어윤수는 "누가 준우승을 좋아하냐"고 손사래 쳤습니다. 겉으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하루, 하루 힘든 나날을 보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너무나 감사하고 좋은 일이죠. 하지만 결승전에서 준우승하고 싶은 선수는 아무도 없을 거에요. 원하지 않은 결과를 7번이나 받고 나면 나중에는 이제 그만 해야 하나, 나는 안 되는 사람인가, 좌절감이 많이 밀려 들어요. 게다가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나 하면 상금 차이가 어마어마하잖아요(웃음). 제가 7번의 준우승으로 놓친 상금이 몇 억입니다(웃음)."

가뜩이나 아픈 추억인데, 7번의 준우승 중 과연 어떤 준우승이 가장 아팠는지 조금은 잔인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대답을 반드시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이야기 했지만 어윤수는 괜찮다며 덤덤하게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이어갔습니다. 

"두번째 준우승 까지는 괜찮았던 것 같아요. (홍)진호형도 있고 두번 정도 준우승 한 선수는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세번째 준우승을 했을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3번 연속 준우승인데다 상대가 정말 친했던 (김)도우형이라 더 충격적이었어요.

왜 그런 것 있잖아요. 김태희 동생은 김태희를 보고도 아무 감흥이 없듯 저 역시 너무 친하다 보니 (김)도우형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거죠. 그날 저 아마 고개를 한번도 안 들었을 거에요. 진짜 충격적이었어요."

이후에도 어윤수는 네번이나 더 준우승을 차지합니다. 정말 전무후무한 기록입니다. 개인전으로 치러지는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우승 한번 없이 7번이나 준우승을 차지한 선수는 어윤수가 유일할 것 같습니다. 


꿈만 같았던 첫번째 우승


스스로 우승과 인연이 먼 선수라 생각했던 어윤수. 그래서인지 그는 이제 준우승을 해도 별다른 감흥 없이 덤덤했다고 합니다. 신기한 것은 좌절하지 않고 계속 결승까지 갔다는 점이죠. 대부분 '콩라인'의 경우 2번의 준우승 이후 우승하지 못하면 거짓말처럼 결승조차도 진출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어윤수는 이후에도 밥 먹듯이 결승전에 진출했습니다.

7전8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윤수는 8번째 도전 만에 그것도 가장 큰 국제 대회에서 드디어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작년 IEM 글로벌 파이널에서 어윤수는 생애 처음으로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섰습니다. 그는 프로게이머가 된 이후 가장 행복했던 날이라고 그날을 회상했습니다.

/사진=이소라 기자
/사진=이소라 기자

"저는 프로게이머들이'꿈만 같다'는 인터뷰를 할 때 너무 오버한다고 생각했어요(웃음). 그렇게 말하는 동료들한테도 현실로 일어나고 있는 일인데 어떻게 꿈 같을 수 있냐고 오버하지 말라고 말했죠. 그런데 그 말이 사실이었어요. 정말 꿈 같더라고요. 내가 지금 진짜 우승을 한 것인지, 제 눈앞에서 펼쳐지는 모든 광경이 슬로우 모션처럼 흘러갔어요.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자신의 앞에서 환호하던 팬들, 그리고 온라인으로 이어진 엄청난 축하 행렬을 보면서 그는 우승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7번의 실패 끝에 맛본 우승이었기에 아마 어떤 선수보다도 기쁘고, 보람되고, 감격하지 않았을까요?


은퇴후의 삶... e스포츠 산업의 숙제


어윤수는 10월에 군에 입대합니다. 이제 프로게이머를 더이상 하지 못할지도 모르죠. 29살의 적지 않은 나이기에 어윤수는 고민이 깊습니다. 전역 이후 무엇을 해야 할지 감조차 잡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17년 전 임요환 선수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어요. 선수들이 은퇴 이후 할 일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며 그런 부분들을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기사였죠. 그런데 17년이 지난 지금 저 역시 똑 같은 이야기를 해야 하는 점이 너무나 안타까워요. 제가 알기로는 리그 오브 레전드 선수들 역시 같은 고민들을 한다고 들었어요. 연봉을 많이 받는다 해도 은퇴 후의 삶을 고민하는 모습은 전혀 달라지지 않아 너무 아쉬워요."

베테랑 프로게이머답게 그는 후배들을 걱정하고 e스포츠 미래를 걱정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프랜차이즈가 되면 조금은 발전하지 않겠냐는 희망적인 생각을 가지고 군에 입대하게 돼 다행이라는 말도 덧붙였지만 아마도 빠른 시일 내에 이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e스포츠가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고질병처럼 가지고 가는 것 같거든요. 제가 전역하면 그런 부분들이 적어도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는 많이 발전됐으면 좋겠어요."

전역 후 그의 삶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계속 프로게이머를 할 수도, 게임단에서 일을 할 수도, 아니면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갈 수도 있죠.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가 보여준 7전8기 정신은 e스포츠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란 점입니다. 

"그래도 e스포츠 역사에 제 이름 하나 새기고 갈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군 입대 전 팬들과 만나는 자리를 갖고 싶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인사도 못 하고 가는 것이 가장 아쉬워요. 다들 건강하시고, 전역 후에는 더 나아진 e스포츠의 미래를 기대합니다. 응원해 주신 팬들께 항상 감사 드립니다."

 

이소라 기자 sora@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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