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철 님 /캐리커쳐=디미닛
안희철 님 /캐리커쳐=디미닛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창업자의 업력이나 인성, 비즈니스 모델, 해당 분야의 전망 등을 보고 투자를 하기 때문에 스타트업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경제적인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투자자로부터 투자를 받는 대가로 과도한 지분을 주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가능성이 매우 큰 스타트업임에도 불구하고 투자자가 그 가능성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낮은 가치 평가를 한 후 적은 지분만 받는 경우가 있다.

실리콘밸리의 세계적인 액셀러레이터인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는 위와 같이 초기 스타트업 가치 평가가 어려운 것을 보완하기 위해서 투자 시에는 스타트업 가치를 정하지 않고 투자금만 집행하는 대신 후속 투자 시에 평가되는 스타트업 가치에 일정 할인율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지분을 취득하는 SAFE 투자계약(조건부 지분인수 계약)을 체결해 왔다. 


한국에서의 SAFE 투자계약

한국의 경우 상법 등에서 SAFE 계약의 근거 조항이 없었기 때문에 SAFE 계약의 적법성에 관한 이견이 많았다. 그런데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벤처투자법)'이 지난해 8월 시행되면서 드디어 적법성에 관한 이견 없이 SAFE 계약을 체결할 수 있게 됐다.

벤처투자법 제2조 제1호에서는 '투자'의 종류에 대해서 나열하고 있는데 '투자금액의 상환만기일이 없고 이자가 발생하지 아니하는 계약으로서 중소벤처기업부령으로 정하는 요건을 충족하는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을 통한 지분 인수', 즉 SAFE 계약을 투자 중 한 종류로 정의하면서 드디어 한국에서도 SAFE 계약이 투자계약의 하나로 도입되게 된 것이다. 


SAFE 투자계약의 요건 및 절차

SAFE 투자계약이 적법하게 체결되기 위해서는 중소벤처기업부령인 벤처투자법 시행규칙에서 정하는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벤처투자법 시행규칙 제3조에서는 아래와 같이 총 3가지 요건을 나열하고 있다. 


1. 투자금액이 먼저 지급된 후 후속 투자에서 결정된 기업가치 평가와 연동하여 지분이 확정될 것

2. 조건부지분인수계약에 따른 투자를 받는 회사가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의 당사자가 되고, 그 계약에 대해 주주 전원의 동의를 받을 것

3.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을 통해 투자를 받은 회사가 자본 변동을 가져오거나 가져올 수 있는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이 체결된 사실을 해당 계약의 상대방에게 문서로 고지할 것


1번 요건과 3번 요건의 경우 SAFE 투자계약의 본질적인 내용을 그대로 표현한 것으로서 특별한 점은 없으나, 2번 요건의 경우 SAFE 투자계약 체결 시 주주 전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다른 투자계약과 차이가 있다.

SAFE 투자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상법이나 벤처투자법에서 이사회 결의나 주주총회 결의 등의 절차적 요건을 별도로 정하고 있지는 않으나, 위와 같이 주주 전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다만 비록 상법이나 벤처투자법 등 관련 법령에서 SAFE 투자를 받을 때 이사회 결의나 주주총회 결의 절차를 명시적으로 요구하고 있지는 않지만, 벤처투자법상 주주 전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실무적으로는 주주총회 결의를 거치고, 이에 더하여 신주인수를 통한 투자계약 체결 시와 같이 이사회 결의 또한 거치는 것이 추후 불필요한 분쟁을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SAFE 투자 후 후속 투자에 따른 지분 산정 방법

투자자가 SAFE 투자 계약을 체결한 후 해당 스타트업이 후속 투자를 받을 때 투자자가 받을 지분, 즉 주식수는 어떻게 산정하면 될까?

SAFE 투자 계약의 내용에 따라 조금은 달라질 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주식수를 산정하는 과정에서 할인율(Discount rate)과 가치평가 상한(Valuation Cap.)이라는 2가지 요소가 고려돼야 한다. 할인율이란 후속 투자 가치 대비 할인율을 의미하고 가치평가 상한이란 피투자 스타트업 기업가치의 상한선을 의미한다. 아래와 같은 예시를 통해서 살펴보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SAFE 투자계약 조건] 
SAFE 투자자의 투자금: 1억원
가치평가 상한: 25억원
할인율: 20%

[후속 투자 내용]
후속 투자자가 투자할 때 피투자 스타트업의 가치(Pre-value): 100억원
후속 투자자의 투자금: 10억원
후속 투자자 투자 전 피투자 스타트업의 기발행 주식수: 100만주


후속 투자자가 투자할 당시 피투자 스타트업의 가치는 100억원이고 100만주의 주식이 발행되어 있으므로 후속 투자자는 1주당 1만원에 투자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후속 투자자는 1주당 1만원에 10억원을 투자하는 것으로 총 10만주를 인수하게 된다.

만일 SAFE 투자계약에서 할인율을 별도로 정하지 않고 가치평가 상한만 정하고 있는 경우, 스타트업의 가치는 100억원이 아니라 25억원이 되고 100만주의 주식이 발행되어 있으므로 SAFE 투자자는 1주당 2500원으로 주식을 인수하게 된다. SAFE 투자자는 1억원을 투자했으므로 4만주(=1억원/2500원)를 취득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SAFE 투자계약에서 가치평가 상한은 별도로 정하지 않고 할인율만 정하고 있는 경우, 스타트업의 가치는 100억원이 아니라 80억원(20% 할인)이 되고 100만주의 주식이 발행되어 있으므로 SAFE 투자자는 1주당 8000원으로 주식을 인수하게 된다. SAFE 투자자는 1억원을 투자했으므로 1만2500주(=1억원/8000원)를 취득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SAFE 투자계약에서 가치평가 상한과 할인율을 함께 정하고 있는 경우, 각각의 1주당 가치인 2500원 및 8000원 중 더 적은 가치인 2500원(=min[2,500원, 8000원])으로 주식을 인수하게 되고, SAFE 투자자는 1억원을 투자했으므로 4만주(=1억원/2500원)를 취득하게 되는 것이다.


건강한 스타트업 생태계를 위한 SAFE 투자의 활성화

SAFE 투자는 투자금액의 상환만기일이 없고 이자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추후 후속 투자를 받을 때 조금 더 신뢰할 수 있는 가치 평가에 따라 투자자에게 지분을 준다는 점에서 스타트업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 있는 투자계약이다.

다만, 반대로 초기 스타트업의 가치 평가를 굳이 하지 않아도 되고 일단 투자를 한 후 추후 후속 투자 시의 가치 평가에 따라서 지분을 받으면 된다는 점에서 투자자 입장에서도 효율적인 투자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벤처기업법의 제정을 통해서 도입된 SAFE 투자가 보다 활성화되어 더 건강한 스타트업 생태계가 조성되길 바란다.

 

글=안희철
정리=김현기 기자 khk@techm.kr


<Who is> 안희철님은?
법무법인 디라이트 변호사이자 스타트업 프랙티스 그룹(Practice Group) 팀장으로서 다수의 스타트업 및 밴쳐캐피탈, 액셀러레이터 등을 자문하고 있으며,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2020년에 '스타트업법률가이드 2.0'을 공저로 출간했다. 현재 한국엔젤투자협회, 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창업진흥원, 청년창업꿈터 등을 비롯해 다양한 스타트업 유관기관의 자문 및 강의 등을 진행하고, 스타트업 법률자문단 단장으로 스타트업 생태계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또 서울사이버대 창업비즈니스학과에 출강해 창업기업법률 강의를 하는 등 스타트업 생태계의 발전을 위해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