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이튼 생태계서 활용돼야 할 클레이
거래소들 연이은 상장으로 투자수단으로 각인
파트너간 불협화음이 프로젝트 앞길 막는다

#클레이튼 생태계서 활용돼야 할 클레이가

#연이은 '무단상장'으로 고위험 투자대상으로 전락

#파트너 관계인데... 불협화음이 프로젝트 앞길 막아서야


카카오의 블록체인 계열사 그라운드X가 발행한 가상자산(암호화폐) '클레이'의 가상자산 거래소 상장을 두고 여전히 말들이 많습니다. 지난달 지닥이 그라운드X와 협의없이 '클레이' 상장을 강행했고, 이번엔 이른바 '4대 거래소'로 꼽히는 코인원까지 상장에 나섰습니다.

그라운드X는 원화가 지원되는 거래소에 '클레이'가 상장되면 급격한 가격변동이 우려되는 만큼 이들의 상장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거래소들은 블록체인과 가상자산의 특성상, 발행회사와 협의없이도 상장하는 것이 가능하다며 상장을 강행했죠.

특히 지닥과 코인원은 그라운드X의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을 위해 그라운드X와 협력하는 파트너 관계에 있던 거래소들입니다. 파트너십을 맺은 거래소들이 그라운드X 협의 없이 상장을 강행함에 따라 그라운드X는 이들과의 파트너십을 해지한다고 밝히며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상장이 이어지면서, 그라운드X의 우려는 현실이 됐습니다. 당장 코인원만 놓고 보면, 183원에 상장됐던 클레이 가격은 상장 첫날 한때 490원까지 치솟았다가 8일 오전 8시 현재 337원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습니다.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네요.

그라운드X가 내놓은 가상자산 지갑서비스 '클립' / 사진 = 그라운드X
그라운드X가 내놓은 가상자산 지갑서비스 '클립' / 사진 = 그라운드X

급격한 가격 변동 우려한 그라운드X, 국내 투자자 피해만은 막고 싶었나


그라운드X의 전후사정을 취재해보니, 그라운드X가 상장을 그리도 원치 않았던 이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라운드X는 클레이튼 개발을 위해 일부 클레이를 기관 투자자들에게 판매했습니다. 기관 투자자별로 상이하지만 6개월에서 1년 가량 재판매를 금지한 소위 '락' 기간이 있었을 겁니다. 일부 투자자들의 락은 이미 해제됐을 것이고, 또다른 투자자들의 락도 곧 해제될 예정인 것 같습니다.

그라운드X 입장에서는 곧 락이 해제돼 시장에 유통될 클레이가 부담일겁니다. 락이 해제되기 전에 클레이가 거래소를 통해 유통되고 가격이 상승하면, 소위 '개미'라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이 달려들겁니다. 대기업코인, 카카오코인 이라는 수식어는 개미들에게 그야말로 '호재'일지도 모릅니다.

가격이 급등락을 반복하는 동안 기관투자자들은 수익을 실현하고 떠날겁니다. 그들이 수익을 실현하는 동안 소위 '고점'에 물린 개미들은 언제 떠날 수 있을까요? 벌써 누군가는 490원에 물려 있을지도 모릅니다. 락이 해제된 기관투자자들의 물량이 쏟아지면 가격은 어떻게 될까요? 물론 투자는 개인의 책임이겠지만, 이런 얘기가 계속 들려오는건 업계에도 좋은 일은 아닐겁니다. 누군가는 정부가 가상자산을 미리 규제하지 않아서 피해를 봤다고 주장할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어쩌면 그라운드X는 락이 해제된 이후에나 국내 거래소 상장을 추진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미 클레이가 해외 거래소에선 거래되고 있었던 만큼, 기관 투자자들이 수익실현을 해외 거래소에서 하길 바랐을지도 모릅니다. 안그래도 정부가 가상자산에 대한 부정적인 기조를 거두지 않고 있는데,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활용'돼야 할 클레이가 고위험 투자수단으로 '전락'


이런 상황을 모를리 없는 파트너 거래소들은 왜 파트너십 해지까지 당하면서 상장에 나서는 것일까요? 게다가 일부 거래소들은 카카오가 주는 전국민 재난지원금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홍보문구를 내세우며 이용자들의 '클레이' 환전을 유도했습니다.

그렇게 그라운드X가 이용자들에게 지급한 클레이는 바로 거래소로 흘러들어가 환전됐습니다. 가상자산과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를 경험해보라고 준 클레이인데, 결국 돈이 되어 버렸지요.

카카오톡 클립을 통해 받은 50 클레이(오른쪽)를 국내 가상자산 거래업체 계정에 옮겨, 5분만에 현금화(왼쪽)한 모습/ 사진 = 이수호 기자
카카오톡 클립을 통해 받은 50 클레이(오른쪽)를 국내 가상자산 거래업체 계정에 옮겨, 5분만에 현금화(왼쪽)한 모습/ 사진 = 이수호 기자

지금도 이용자들은 클레이의 가격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클레이가 어떻게 활용되고, 왜 발행됐는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가격이 오를지, 내릴지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렇게 클레이는 투자의 대상이 돼 버렸습니다.  클레이튼 생태계에서 활발히 활용되면서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구축했어야 할 클레이가 엉뚱한 곳에 쓰이게 된겁니다. 물론 가상자산은 투자의 수단도 맞습니다. 하지만 투자 용도로만 활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투자와 활용 두가지가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지금 '클레이'는 투자로만 활용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겁니다.

여기서 한가지 아쉬운 것은 그라운드X가 클레이를 일괄 지급하지 말고 토스의 송금지원금처럼, 클레이를 다른 친구에게 송금할때 지원하는 형태였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또 클레이를 사용할만한 블록체인 앱도 클립과 함께 연동돼 등장했으면 더 좋았겠지요. 아쉽습니다.

어찌됐든, 이미 클레이 가격은 급등락을 오가고 있습니다. 이미 이용자들에게 클레이를 활용대상이 아닌, 투자 대상으로 각인됐습니다. 그것도 가격 변동이 극심한 고위험 투자 대상으로 각인됐죠. 이미 그렇게 각인된 클레이를 다시 활용대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을 겁니다.

락이 풀리면서 곧 시장에 유통될 클레이가 가격 하락을 이끌 것이라는 분석도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이 분석이 현실이 된다면, 어쩌면 클레이에 투자했다가 몇십프로씩 손실을 보는 투자자들이 곧 쏟아져 나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다시 정부가 '역시 가상자산은 문제야'라는 시선을 가지지 않을까요?


불협화음이 프로젝트 앞길 막는다


그토록 그라운드X가 우려하던 일이 하나씩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라운드X는 거래소들의 상장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파트너십 해지를 통보하면서, 우리가 공식적으로 지원하지 않았다는 말을 되풀이할 뿐입니다.

파트너 거래소가 아닌 다른 거래소라면 모르겠습니다. 나는 클레이튼의 행보는 잘 모르겠고, 이용자들이 거래하고 싶어하니 그냥 지원하겠다는 논리라면 이해라도 하겠습니다.

파트너십을 맺고 클레이튼 플랫폼을 위해 협력하는 관계였던 거래소들이 그라운드X와 협의가 잘 되지 않는다며 일방적으로 상장을 강행한 것이 합리적인 일일까요? 더 많이 소통하며 상호협력해 상장하는 그림을 만들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정말 클레이튼을 위하는 길이 상장강행 밖에 없었나요? 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라운드X도 거래소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더 설득하고, 더 이해를 구했어야 합니다. 혹시라도 일방적으로 상장불가 방침만 전달하고 거래소들과의 대화에 제대로 임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까? 파트너 거래소들이 일제히 이렇게 움직이는 것은, 그라운드X의 소통방식도 좋지 못했단 방증이지 않을까요?

업계에서 클레이튼과 클레이에 거는 기대감이 크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겁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프로젝트가 불협화음 때문에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쉽습니다. 지금 이런 모습이 최선인가요?


허준 기자 joo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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