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대기업 상생 가능한 방향으로 정책 검토해야"

(왼쪽부터) 박진호 동국대학교 교수,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 조문증 경상국립대학교 교수/사진=김가은 기자
(왼쪽부터) 박진호 동국대학교 교수,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 조문증 경상국립대학교 교수/사진=김가은 기자

디지털 전환(DT)이 전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자리잡은 후 소프트웨어(SW) 기술력 확보는 기업은 물론,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 요소로 떠올랐다. 디지털 생태계의 안정성 및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 미래 기술 구현·응용의 근간을 책임지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또한 디지털플랫폼정부를 구현해 국민 편의성을 제고하고, 행정 시스템 전반의 혁신을 이끌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제시했다. 이에 따라 공공에서 발주하는 SW사업 또한 크게 늘어난 상황이다. 그러나 현재 공공SW 사업 정책은 10년 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과거의 '낡은'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10년 전 도입된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를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가 올 상반기 중 공공SW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를 완화·폐지하는 방향으로 개선을 추진하고, 연내 입법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중소·중견기업과 대기업간 입장차가 불거지고 있는 모습이다.

18일 국회에서 열린 '공공SW 사업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 정책 토론회'에서 업계와 학계, 정부 관계자들은 입장 및 문제점, 개선방안 등을 두고 의견을 공유했다.


실효성 두고 엇갈린 입장

공공SW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는 과거 대기업이 점유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중소·중견기업에 하도급을 맡기는 관행을 타파하고자 마련된 정책이다. 이를 통해 중소·중견 SW 기업이 상생·협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제도 시행 7년만인 지난 2020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제도를 완화하고 대기업이 일부 공공SW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빗장을 열었다. 현재 고시에 따르면 대기업 참여제한 예외사업은 ▲국가안보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빅데이터 등 신기술 ▲긴급 장애대응 ▲기업이 이미 개발한 SW서비스 사용 ▲민간 투자형(클라우드 등 기업 50% 이상 투자) 등이다.

이처럼 정부가 발주한 대규모 사업에 대기업 참여가 인정되며 중견·중소기업 역량 강화를 위해 존속돼온 제도에 대한 실효성 문제가 제기됐다. 입장은 크게 둘로 갈린다. 대기업 참여제한이 지난 10년간 중소·중견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밑바탕이 됐기 때문에 유지·강화해야 한다는 측과 국내 레퍼런스를 기반으로 대기업이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제도를 완화·폐지해야 한다는 측이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 측은 사실상 진입규제인 참여제한 제도가 전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강력한 정책인데다, 10년전과 달라진 상황을 감안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왼쪽부터) 조미리애 브이티더블유(VTW) 대표, 은윤오 쌍용정보통신 전무, 한윤재 SK C&C 부사장, 채효근 IT서비스산업협회 부회장, 장두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프트웨어산업 과장/사진=김가은 기자
(왼쪽부터) 조미리애 브이티더블유(VTW) 대표, 은윤오 쌍용정보통신 전무, 한윤재 SK C&C 부사장, 채효근 IT서비스산업협회 부회장, 장두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프트웨어산업 과장/사진=김가은 기자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한윤재 SK㈜ C&C 부사장은 "공공SW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의 성격은 진입규제로, 이는 상당히 강력한 규제"라며 "제도가 도입될 당시 독식이나 하청 갑질, 일감 몰아주기 등 문제가 있었던 점은 사실이지만 10년이 지나 ESG(환경·사회·거버넌스)처럼 기업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있는 지금 같은 행태를 반복할 대기업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사람이 병에 걸렸을 당시에는 항생제를 먹지만 이를 장기복용하면 전체 건강이 저하되는 것처럼 전체 산업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며 "규제를 도입한 한국과 그렇지 않은 타 국가간 비교 분석으로 단순한 수치 비교가 아니라 정확한 성과를 측정하고, 이를 통해 진입규제에 대한 정당성을 입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견·중소기업 입장은 다르다. 대기업 참여제한이 존재했던 지난 10년간 SW전문기업으로 성장해온 중견·중소기업의 존속을 위협하고, 결국엔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시장환경이 되돌아갈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공공SW 사업 참여가 제한되는 기업 규모는 일반 대기업이 아닌 상호출자제한(상출제) 기업이라는 점, 공공SW 사업이 아니어도 기업 존속에 문제가 없다는 점이 강조됐다.

은윤오 쌍용정보통신 전무는 "대기업이라는 단어가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는데, 참여제한 대상이 되는 기업은 일반 대기업이 아닌 상출제 기업"이라며 "이 기업들은 제도가 유지돼도 중견·중소기업이 진입할 수 없는 내부 계열시장이 존재하기 때문에 존속에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교육, 의료 등 각 영역별로 전문성 및 맞춤형 인재를 양성하고 있는 중견기업들의 경우 제도 폐지·축소 시 대안 시장이 없다"며 "또한 그간 키워온 우수 인력들이 대부분 상출제 기업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물론, '독과점 해체 및 상생을 위한 토대 마련'이라는 목적은 파괴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LG CNS와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 구축사업에 참여하며 갈등을 빚은 조미리애 브이티더블유(VTW) 대표는 제도 완화 또는 폐지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중견, 중소기업들은 전문영역에 집중해 전문성을 키우고 주도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게 됐다"며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시장은 제조, 금융 등 대기업 IT계열사가 버티고 있지 않은 공공시장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특히 그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하는 사업에서 지분에 따라 '동일책임 동일대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대기업이 참여하는 대규모 공공SW 사업은 사실상 중소기업과 컨소시엄을 꾸려야만 가능하다. 지난 2013년 개정된  SW산업진흥법 개정안에 따라 사업자 평가 방식에서 중소기업 사업 비중을 50% 이상으로 배정해야만 '상생 가산점 ' 5점을 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전체 지분 중 50%는 대기업이, 나머지 50%는 여러 중소기업이 나눠갖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 대표는 "대기업이 공공시장에 들어와서 하는 역할을 보면 프로젝트 관리, 품질관리, 인프라 외에는 인건비가 비싸기 때문에 모두 하도급을 쓸 수 밖에 없다"며 "대기업의 사업 관리 역량은 분명히 있지만, 사업에서 실무는 이미 다 중견, 중소 기업이 수행을 하고 있으나 제값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생 가능한 방향으로 정책 검토 필요

전문가들은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를 합리적이고 유연한 방향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정책 도입 이후 효과를 분석해 타당성을 입증하고, 존속기한이 있는 일몰제로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채효근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부회장은 "2013년 제도 도입 이후 정부가 진행한 정책 효과 분석은 지난 2014년 미래창조과학부가 진행한 정책연구 1건과 지난 2019년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 연구 1건에 그친다"며 "강력한 규제인만큼 매년 효과 분석을 통해 타당성을 확보하고, 존속 기한이 있는 일몰제로 운영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공공SW 사업 환경과 방식은 그대로인데 시장만 나누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기업 간 상생 생태계를 구축해야 각 산업 성장이 가능하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채 부회장은 전반적인 공공SW 사업 예산을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산이 줄어든 것은 물론, 대부분이 기존 구축 시스템에 대한 유지보수로 흘러들어가 새로운 사업 진출 기회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시장에 적은 파이를 나워주면 약육강식 구조에 따라 아래로 갈 수록 더 열악해진다"며 "시장 규모를 정상화하고, 정부와 정치권이 역할을 제대로 한 뒤에 상생 및 갑질방지 등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조문승 경상국립대학교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공공SW 산업 발전을 위해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등이 각각 역할을 새로 정립해야 할 시기"라며 "완벽한 제도보다 합리적 운영이 중요하고, 발주기관 자체 역량 강화 및 SW 제값받기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가은 기자 7rsilver@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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