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글로 먹고 사는 '프로'지만, 맥북 '프로' 앞에선 절로 숙연해진다. 기자가 맥에서 가장 많이 쓰는 프로그램은 '텍스트 편집기'다. 여기에 '크롬'만 있으면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다. 아마 맥북 프로의 성능에 반의 반의 반도 못 쓸 거다.
하지만 'M3 맥북 프로'를 샀다. 레슨도 받기 전에 프로선수들이 쓰는 골프채부터 뒤적거리듯, '장비빨'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다. 기존에 쓰던 맥북 에어로도 충분하지만, 왠지 프로와 함께라면 글도 더 잘 써지고 영상도 척척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왜 자꾸 맥북을 사는가
2020년에 구매한 'M1 맥북 에어'는 확실히 업무 생산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줬다고 자부한다. 그동안 써온 노트북 중에 가장 빠릿빠릿한 녀석이었다. 예쁘기'만' 하다던 과거의 맥북과 달리 발열이나 소음 관리, 배터리 성능도 매우 만족스러웠고, 당시 쓰던 인텔 맥북 프로를 능가하는 압도적인 쾌적함이 존재했다. 이게 모두 애플실리콘 덕이었다.
이때부터 애플실리콘의 노예가 됐다. 이듬해에는 유튜브 시대에 대응하겠다고 16인치 'M1 맥북 프로'를 샀다. 하지만 편집툴을 잘 다루지 못했기에 그냥 크기가 큰 맥북으로 남았다. 작년엔 M1 맥북에어를 팔고 'M2 맥북 에어'로 주력 기종을 바꿨다. 솔직히 성능보단 100% 디자인 때문이었다. 실버 색상의 단정한 M2 맥북에어는 마치 보석처럼 빛이 났다.
돈은 돈대로 쓰고 애플실리콘의 강력한 성능을 제대로 다 쓰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더 이상 업그레이드는 없다고 스스로 못을 박았지만, 애플의 상술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올 연말, 애플이 갑작스럽게 내놓은 'M3' 칩의 성능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허나 느닷없이 등장한 '스페이스 블랙'의 검은 마력을 피해가지 못했다. 결국 어쩌면 있을 수도 있는(없을 가능성이 큰) 고사양 작업을 위해 들고 다닐 수 있는 14인치 프로 모델도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자기합리화를 거쳐 사전구매에 성공했다.
맥북의 더 큰 성능은 가지고만 있어도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을 준다. 물론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지만. 이제 긴 반성문은 접어두고 본연의 임무로 돌아와 독자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M1부터 M3까지 맥북을 써본 소감을 전하도록 하겠다. 부디 무의미한 지름으로 체득한 경험들이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빈다.
갑작스레 등장한 M3 칩, 필요한가?
앞에서 얘기했듯, 텍스트 위주의 작업이나 인터넷 서핑, 유튜브 시청 등의 용도에는 M1 제품군도 아직 충분하다. 오죽하면 애플도 이번 M3 제품군의 타깃은 애플실리콘이 아닌 구형 인텔 맥 사용자라고 언급했을까. 그동안의 사용해 본 경험에 따르면, M2만 하더라도 왠만한 동영상 편집이나 그래픽 작업 등에 쓰기에 충분한 성능을 갖고 있다.
허나 새로 맥북을 구매하고자 하는 소비자라면 당연히 M3 칩을 탑재한 이번 맥북 프로 신제품에 먼저 관심이 갈 것이다. 애플에 따르면 M3 칩 제품군은 M1 칩 제품군에 비해 CPU 성능 코어와 효율 코어 성능이 각각 30%, 50% 향상됐으며, 특히 AI 성능을 담당하는 뉴럴엔진 처리 속도는 60%나 늘었다. 또 '다이내믹 캐싱'이라는 새로운 기술로 메모리 효율이 늘었으며, 하드웨어 가속형 레이 트레이싱과 메시 셰이딩을 지원해 그래픽 성능이 더 좋아졌다.
이런 미사여구는 아무래도 기존 제품의 성능을 최대한 다 써서 모자른 사용자들에게는 의미가 있겠지만, 여전히 가진 것도 다 쓰지도 못하는 사용자에게는 크게 와닿진 않는다. M3 맥북 프로를 써봐도 M2 맥북에어보다 얼마나 좋은지 체감할 길이 없다. 텍스트나 사진 위주의 작업환경에선 이미 둘 다 충분하기 때문이다.
M3 칩이 기초체력에 해당하는 싱글코어 성능이 이전 모델보다 우수하긴 하지만, 작업 환경에 따라 M1, M2 제품군에서도 코어 수에 따라 더 적합한 성능의 제품이 있을 수 있다. 맥북을 처음 구매하는 소비자라면 무조건 최신 제품을 고르기 보단 자신이 사용하고자 하는 용도나 수준에 맞춰 신제품 출시로 할인율이 커진 M2 제품군이나 혹은 상태가 좋은 중고 제품쪽도 한 번 고려해보길 추천한다.
그래도 기왕 사는 김에 최신 제품을 사서 오래 쓰고자 할 수도 있다. M3 칩 내에도 기본 M3부터 M3 프로, M3 맥스 제품이 존재한다. 기본 M3 칩의 활용 범위는 일반적인 사무작업, 간단한 영상 편집이나 그래픽 작업이다. M3 프로는 4K 해상도 수준의 영상을 편집하는 개인 크리에이터 수준, M3 맥스는 8K 영상 작업이나 대용량의 3D 작업 등 주로 스튜디오 수준의 작업을 하는 전문가에게 추천된다.
이번 M3 맥북 프로 제품군 중에서는 수치상 성능 향상이 가장 눈에 띄는 M3 맥스 칩 제품이 400만원대 이상의 가격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쇼핑몰 사전예약에서 가장 먼저 품절됐다. 예산의 한계만 없다면 역시 스펙은 '고고익선'인 듯하다.
프로 살까, 에어 살까
일반적인 학생이나 직장인 수준에서는 주로 맥북에어나 14인치 맥북 프로가 추천된다. 우선 맥북 에어는 얇고 가볍다는 게 장점이다. 13인치(무게 1.24kg, 두께 1.13cm)와 15인치(무게 1.51kg, 두께 1.15cm) 모두 부담없이 들고 다닐 수 있다. 요즘 초경량 모델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수치만 놓고 보면 인상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실제 들어보면 밸런스가 좋기 때문에 체감상으로는 더 가볍게 느껴진다.
14인치 맥북 프로는 무게 1.55kg, 두께 1.55cm로 에어보다 두껍고 무겁다. 여기부턴 휴대성이 좋다고 보긴 어렵다. 허나 디스플레이 밝기와 주사율이 더 우수하고 스피커도 더 빵빵하다. 그렇다고 에어가 부족한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이 차이로 프로를 고르긴 애매하다. 참고로 16인치 맥북 프로는 2kg이 넘는 무게를 감안하더라도, 워낙 크기가 큰데다 전원 어댑터마저 거대해 갖고 다니려면 커다란 백팩이 필수다. 들고 나갈 엄두가 잘 나지 않기 때문에 책상에 붙박이로 쓰고 있다.
실사용에선 포트 구성이 더 큰 차별점으로 느껴진다. 맥북 에어는 휴대성을 위해 포트 구성이 달랑 C타입 2개가 전부라 모니터를 연결하거나 SD카드를 꼽기 위해선 별도 허브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맥북 프로는 HDMI 포트와 SD카드 슬롯이 제공되며, C타입 포트도 3개로 하나 더 많다. 사진이나 영상 작업을 많이 한다면 상당한 차이가 될 수 있다. 아무리 허브가 있어도 본체에 달린 편이 훨씬 편하다.
디자인면에서는 거의 동일한 무드를 갖고 있지만 색상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맥북 에어는 실버, 스타라이트, 스페이스 그레이, 미드나이트 등 4가지 색상을 고를 수 있다. 맥북 프로는 기본형은 실버와 스페이스 그레이, M3 프로와 맥스 모델은 실버와 스페이스 블랙이 제공된다. 이번에 새로 나온 스페이스 블랙은 당분간 "M3 프로 이상을 탑재한 최신 맥북 프로를 쓰고 있어요"라는 말을 대신 해주게 됐다.
아노다이징 처리된 알루미늄 재질의 노트북은 진한 색상의 컬러를 만들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만들어도 지문이 잘 묻는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M2 맥북에어에서 처음 선보인 미드나이트 컬러도 매력적인 색감임에도 불구하고 지문 이슈에 시달린 바 있다. 이 때문에 M3 맥북 프로는 스페이스 블랙 제품에 지문 방지를 위해 특별히 산화막을 추가해 가공했다. 덕분에 지문을 확실히 덜 묻히면서 맥북에선 아주 드문 블랙에 가까운 진한 색을 누릴 수 있게 됐다.
M3, 지금 살까, 기다렸다 살까, M2 살까
맥북 에어는 지난해 7월 13인치 모델이 M2 칩을 달고 풀체인지 됐고, 올해 6월에는 15인치 M2 모델이 처음 선을 보였다. M3 칩 탑재 모델은 이르면 내년 3월 출시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맥북 프로는 올 1월 M2 칩 탑재 모델이 출시된 데 이어, 11월(국내는 12월) M3 칩 탑재 모델이 갑자기 출시돼 한 해 신제품이 두 번 출시됐다.
현재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최신 제품은 M2 맥북 에어나 M3 맥북 프로라는 얘기다. 두 제품을 비교하자면 성능은 당연히 M3 맥북 프로가 좋겠지만, 휴대성을 중시하는 사용자라면 지금 M2 맥북에어를 구매하거나 내년 M3 칩 탑재 제품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M3 칩 제품이 미묘한 타이밍에 나온 바람에 M2 칩 제품군의 포지션이 애매해진 구석이 있다. 신형도 아닌 것이 구형이라 하기엔 여전히 현역 수준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M3 칩 제품은 M2 칩 제품군 사용자들이 업그레이드하길 바라고 나온 제품이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성능 업그레이드에 대한 메리트가 크지 않는 데다 가격적 부담도 있기 때문에 M2 칩 제품군 사용자라면 굳이 M3 제품으로 넘어갈 필요가 없고, 지금 M2 제품을 사도 충분하다는 얘기다.
제품보다 사용 용도부터 살펴보자
노트북을 구매하기 전에는 예산을 얼마까지 쓸 수 있는지, 내게 필요한 성능은 어디까지인지, 제품 간 비교까지 정말 많은 고민이 든다. 특히 자주 살 수 있는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성능에 대한 고민이 크다. 당장 다 쓰지 못하더라도 왠만하면 최대한 성능이 좋은 제품을 갖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번 M3 맥북 프로 신제품의 성능에 실망을 표하는 이들도 더러 보인다. M1 맥스 이상이나 M2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다면 투자한 만큼 뚜렷한 성능 차이가 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픽처리장치(GPU)쪽에 상당한 개선이 있었지만, 맥은 고사양 게임도 많지 않고, 왠만한 영상 편집 수준에선 큰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체감도가 낮은 편이다. 반면 애플실리콘을 처음 접하거나, 조금이라도 더 성능을 쥐어 짜내야 하는 현업의 전문가 입장이라면 얘기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이처럼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 어느 관점에 서서 보느냐에 따라 이번 M3 맥북 프로의 평가는 상당히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맥북 프로는 프로를 위해 프로답게 쓰이는 게 가장 좋은 방향인 듯하다. 일반 사용자 입장에서 역시 가장 인상적인 건 성능보단 스페이스 블랙 컬러였다. 이 색상이 딱히 매력적이지 않은 일반 사용자라면 좀 더 시야를 넓게 보고 적당한 M1·M2 모델을 찾거나 내년에 나올 맥북에어를 기다려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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