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게임정책의 거시적 방향성을 담은 '게임산업진흥 종합계획'이 업계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산업진흥을 위한 5개년 계획이지만 해묵은 난제들에 대한 실효성 있는 조치가 담겨있지 않다는 비판이다.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계획 발표를 전후해 산업계와의 적극적인 소통을 어필했지만 일각에선 여전히 잡음이 인다. 테크엠'은 업계에서 제기되는 의견을 종합해 ▲역차별 ▲게임중독 ▲갈등심화 이슈를 시리즈로 다룬다. <편집자주>


'게임중독' 이슈가 재점화하면서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고시에 게임 과몰입이 질병으로 등재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1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최근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 국내도입 문제 관련 민관협의체'가 활동을 재개했다. 관련 회의가 지난 10일 열린 것.

협의체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이용 장애에 질병코드를 부여하는 국제질병분류 개정안(ICD-11)을 2019년 채택함에 따라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 문제의 합리적 해결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같은 해 발족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3월 발표한 정신·행동·신경발달 장애 진단가이드(CDDR)에 '게임 장애(Gaming disorder)'에 대한 내용이 게재돼 있다. /사진=CDDR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3월 발표한 정신·행동·신경발달 장애 진단가이드(CDDR)에 '게임 장애(Gaming disorder)'에 대한 내용이 게재돼 있다. /사진=CDDR

문화체육관광부와 보건복지부 등 다양한 정부 부처 관계자와 민간 인사들이 참여한 협의체는 당시 수차례에 걸친 회의와 관련 연구용역에 착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고 활동을 한동안 중단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게임이용 장애 국내 도입 여부는 2025년 KCD 고시 시기로 연기됐다.

질병코드가 등재되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는 통계법에 의거해 통계청이 1993년부터 5년마다 개정, 고시하고 있다. 통계청은 2002년부터 KCD를 7월에 고시해왔다. 지난 고시 시기는 2020년 7월 1일이다. 내년 고시도 7월에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협의체가 최근 활동을 재개한 배경으로 풀이된다.

질병코드 도입 이슈도 공론장에 오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4월 열린 제22대 국회의원선거 당시 통계법 개정을 통해 게임 과몰입을 질병코드로 등재하려는 움직임을 저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정치권의 저지 공약은 질병코드 등재 가능성에 대한 방증으로 읽힌다. 2022년에는 통계청 관계자가 WHO의 게임이용 장애 도입 결정을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파장이 일기도 했다.

게임산업 주무부처인 문체부에서도 논의 필요성을 드러냈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지난 8일 열린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제도 시행 게임 이용자 현장 간담회'에서 "어디까지를 게임중독으로 보아야 하느냐"고 화두를 던졌다.


WHO '게임장애' 시선 여전...업계 우려↑"도입 결정 연기할 수밖에"

보건의료계에서는 중독 장애를 전두엽 기능이 저하되는 일종의 뇌 질환으로 보고, 게임중독에 대한 접근을 지속해왔다. 앞서 WHO가 ICD-11을 채택할 당시에도 국내 도입 여부를 두고 찬성 측의 보건복지부와 반대 측의 문체부가 대립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왼쪽)이 지난 8일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제도 시행 현황 점검'의 일환으로 서울 서대문구 게임물관리위원회 수도권사무소를 방문해 문호준 프로게이머(가운데), 홍진호 전 프로게이머와 함께 게임위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유 장관은 이날 열린 간담회에서 "게임은 무조건 진흥"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사진=임경호 기자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왼쪽)이 지난 8일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제도 시행 현황 점검'의 일환으로 서울 서대문구 게임물관리위원회 수도권사무소를 방문해 문호준 프로게이머(가운데), 홍진호 전 프로게이머와 함께 게임위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유 장관은 이날 열린 간담회에서 "게임은 무조건 진흥"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사진=임경호 기자

지난 3월에는 WHO가 정신·행동·신경발달 장애 진단가이드(CDDR)를 발표했다. CDDR에는 국내에서 게임이용 장애 도입 반대 논거에 대한 반박 자료가 담겼다. 

CDDR은 게임이용 장애로 인해 게임을 중단함으로써 불쾌감을 느끼거나 공격성을 드러낼 수 있다고 봤다. 또 게임 이용 시간에 따라 식이, 수면 장애를 겪을 수 있고, 불안이나 두려움, 주의력 결핍, 강박 등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서술했다.

이달 9일에는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대진 교수 연구팀이 '인터넷 게임 중독 증상'이 있는 20대 남성 22명을 대상으로 2018년부터 진행한 경두개직류자극 치료 연구 결과가 국제 학술지에 게재됐다.

업계 관계자는 "사회적으로 논의하고 검토할 부분이 많다면 충분히 안배가 돼야 하는데 그동안 KCD에 ICD를 통째로 들여오는 것이 관행처럼 이뤄졌다"며 "과거부터 유관 부서에서 이견으로 크게 부딪혀왔고, 국무조정실에서 이를 조정하려고 민관협의체를 구성했는데 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꽤 오랫동안 협의체 회의가 없었는데 최근에 회의가 열린 것은 고시 개정을 앞두고 논의를 시작하려는 단계 같다"며 "도입을 막을 뚜렷한 방안이 없다면 도입 여부 결정을 연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임경호 기자 lim@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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