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띠부오레 교수 "게임 시간과 게임이용장애와는 큰 상관 없어"
한덕현 교수 "문제성 게임 구분과 게임의 질병화는 다른 문제"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규정하려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국내외 전문가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현상에 관한 명확한 정의나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지 않았고, 논의를 위한 충분한 연구도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런 배경 속에 추진되는 질병코드 도입 움직임에 주의를 당부했다.
5일 오후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관 소강당에서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한국게임산업협회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게임이용장애 국제세미나'가 열렸다.
이번 세미나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 개정 시기가 내년으로 다가오면서 게임이용장애가 공식적인 질병코드로 등재될 수 있다는 사회적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마련됐다. 한국은 그동안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질병분류(ICD)를 관행적으로 도입해왔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한국을 찾은 석학들은 질병코드 도입의 근거로 활용되는 기존 연구들의 신뢰성을 지적했다. WHO의 ICD에 등재된 정의도 도마에 올랐다.
앤드류 쉬빌스키 옥스퍼드대 인간행동기술학 교수는 "비디오 게임이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질병으로 진단해 낙인을 찍게 되면 게임을 이용하는 전세계 인구의 4분의 1 정도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며 "그간 (게임)중독성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가 충분히 제시되지 못했고, 임상의학자의 의견도 참고하되 그대로 수용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마띠부오레 틸뷔르흐대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WHO의 ICD-11에서 도박으로 인한 장애와 게임으로 인한 장애의 패턴을 장애의 명칭만 바꾸는 식으로 흡사하게 정의했는데, 게임이 궁극적으로 사람의 정신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기 위해선 정확한 정보를 사용해야 한다"며 "실제로 사람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게임했는지 게임회사로부터 데이터를 받아 비교한 결과, 게임 시간과 사람들이 느끼는, 흔히 말하는 게임이용장애와는 큰 상관이 없었다"고 부연했다.
해외 학자들의 우려와 함께 국내 전문가들의 지적도 이어졌다. 사회과학과 의료보건계통에서 직접 진행한 연구를 근거로 기성 연구나 주장을 반박했다.
조문석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게임중독이나 게임장애에 대해 명확히 합의된 학술적 정의가 부재한 데다 횡단면적 연구설계에 있어 시간적 선후관계도 불명확 하다"며 "이런 배경에서 게임이용과 문제행동 간 연관성을 측정하는 도구의 신뢰성 문제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 사회에서 (질병코드) 제도가 공식화 해 정착하면 이런 논쟁은 잊혀질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게임문화도 더 이상 성장을 기대하긴 어려워 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덕현 중앙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게임이용에 따른 뇌 변화 연구에서 시간 경과에 따른 변화 추이가 미미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문제성 게임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이에 대한 정의나 기준을 정할 수는 있겠지만, 이와 별개로 사회가 게임과 관련된 어떤 현상을 질병으로 분류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울증을 가진 사람이든 ADHD를 앓는 사람이든 누구나 게임을 할 수 있기에 게임에 따른 인과를 짚는 연구군을 그룹핑 해내기 어려워 (게임 중독에 따른 변화를 주장하는 기존 연구에서) 진단 기준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는 것 같다"며 "도박이나 마약 중독 환자와 게임 중독을 겪는다는 이들의 2~3년 뒤 예후가 다른데 이를 같은 기준(의 중독)으로 얘기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경우"라고 비판했다.
세미나 좌장을 맡은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게임은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질병이냐 아니냐는 프레임을 벗어나기 힘들다"며 "이런 세미나가 여러 차례 열리고 연구가 진행돼서 질병 여부를 논의하던 시기가 옛날 얘기처럼 취급될 수 있는 때가 오길 바란다"고 했다.
임경호 기자 lim@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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