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연말은 올해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기억조차 남지 않을 만큼 충격적인 사건의 연속이었다. 초유의 비상계엄 선포와 헌정 사상 두 번째 대통령 탄핵안 가결, 사상 첫 권한대행 탄핵까지, 정국의 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15년 여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환율과 내년 초 트럼프 2기 출범, 미중 패권 다툼과 난무하는 자국우선주의 속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까지, 경제 역시 '시계제로'다.
새해를 전망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로, 극도의 불확실성 앞에 놓여있다는 것만이 유일하게 확실한 상황이다. 다만 어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도 희망과 지혜를 모아 슬기롭게 극복해 온 저력이 우리 안에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불안과 희망이 교차하는 새해를 앞두고, 테크M 기자들이 올해 취재 현장에서 체감한 가장 인상적인 사건들을 꼽았다. 어수선한 연말이지만 차분히 한해를 돌아보며 송구영신의 마음으로 지나 보내야 할 일들은 과감히 정리하고 기억해야 할 일들은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 봄은 어떨까.
배수현 기자 : 사상 초유의 총수 공백, 김범수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 구속
카카오 창업주인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이 SM엔터테인먼트 인수 당시 시세조종을 했다는 혐의로 지난 7월 구속됐다. 사상 초유의 총수 공백에 카카오의 쇄신 전략에도 급제동이 걸렸으며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기도 했다. 검찰 측은 김범수 위원장이 인수 과정에서 하이브의 공개 매수를 방해할 목적으로 SM엔터 주식의 시세를 조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범수 위원장측은 이에 대해 합법적 장내 매수와 경쟁 행위였고, 김 위원장은 단순 보고만 받았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김범수 위원장은 구속 101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재판부는 보증금 3억원 납부와 소환 시 출석, 주거 제한 등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보석 심사 과정에서 김범수 위원장은 경영 과정에서 단 한번도 불법적인 것에 대해 승인한적이 없고 억울한 상황을 참작해 달라며 직접 사유를 밝히기도 했다. 검찰은 이에 대해 재판부에 항고했지만 지난 24일 기각됐다.
카카오는 총수 구속이라는 리스크 가운데서도 지난 3분기 영업이익을 지켜냈고, 인공지능(AI) 브랜드 '카나나'를 내세우며 신사업에 청신호를 켰다. 이에 힘입어 오는 2025년 카카오의 멈춰있던 쇄신 전략도 한번 더 기지개를 펴고 수익성 역시 개선될 적으로 기대된다.
임경호 기자 : 이커머스 시장의 불안요소, 티몬·위메프 사태
최근 이커머스 업계에서 이 같은 사건이 또 있었을까. 티몬·위메프 사태는 7월 높은 파고가 되어 업계를 덮쳤다. 높은 할인율의 상품권 판매를 포함해 최저가 판매 정책을 고수하던 1세대 소셜커머스의 공격적 행보는 대규모 미정산 사태를 낳았다.
피해는 전방위적이었다. 금융당국은 관리감독 부실 문제로 국회의 질타를 받았다. 입점사 대표들은 야밤에 본사를 항의 방문했다. 쿠팡과 네이버 등 동종업계는 난데없는 부정 이슈로 곤혹을 치렀다. 당장은 아비규환이었고, 중장기적으론 재앙이 됐다.
해결 방안도 난항이다. 티몬과 위메프의 판매 대금을 모회사 큐텐그룹의 경영난 해소를 위한 자금으로 유용한 뒤 이에 대한 변제 계획을 제시하지 못했고, 진상을 밝히는 과정에서 피해 사실을 축소하거나 허위 신고한 혐의를 받았다. 문제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특히 이 모든 일의 이면엔 큐텐그룹의 무리한 나스닥 상장계획이 자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는데, 업계가 그리는 이상이 결국 2010년대 중반 유니콘 기업으로 각광받던 티몬과 위메프가 부실기업으로 전락하는 방아쇠가 됐다는 사실은 성공을 꿈꾸며 시장에 뛰어들었던 이들에게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조성준 기자 : 7전8기에도 불발된 정부의 제4이통
올해 초 28㎓ 주파수경매를 통해 스테이지엑스가 제4이통 사업자 대상으로 선정됐다. 정부가 꾸준히 추진하던 제4이통이 이번에는 결실을 맺으리라 여겨졌다.
스테이지엑스는 적극적이었다. 주파수 경매를 통해 할당대상법인으로 선정된 직후 기자간담회를 열고 3년후 매출 1조원 '흑자'를 목표로 내걸었다. 내년부터 새로운 통신 서비스를 선보이며 시장에 새로운 '메기'가 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스테이지엑스의 꿈은 반년을 채 넘기지 못했다. 정부는 신청기업과 등록법인의 차이, 자본금이 달랐던 부분 등을 중대 문제로 보고 스테이지엑스에 대한 할당법인 선정을 취소하며 제4이통 출범을 사실상 백지화 했다. 스테이지엑스 측이 청문절차,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며 적극적으로 소명했지만 결과는 번복되지 않았다. 새로운 통신사를 시장에 투입시켜 경쟁을 유발해 통신비를 낮추겠다는 정부의 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정부가 희망하는 제4이통사는 7전8기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직 28㎓ 주파수에 대한 활용방안조차 찾지 못했을 정도다. 국내 통신3사가 파이를 쪼개먹고 있는 통신산업에 새로운 메기가 등장할 수 있을까. 정부의 결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수호 기자 : 달러 패권 지키는 美 코인 현물 ETF
올해 1월 비트코인, 그리고 7월 들어 이더리움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미국 시장에 등장하며, 디지털자산(코인) 대중화 시대가 열렸다. 이로써 비트코인을 비롯한 코인은 제도권 자산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코인 현물 ETF는 기존 코인 투자 방식과 달리, 투자자가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을 직접 보유하지 않고도 이들 자산의 실제 가격 움직임에 따라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설계된 금융 상품이다. 기업의 주식처럼, 손쉽게 투자할 수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무엇보다 현물 ETF는 코인 그 자체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파생상품을 기반으로 한 선물 ETF와는 차별화된다는 점에서 코인 시장의 새로운 수급을 생성했다.
특히 현물 ETF는 기존 금융시장에 익숙한 기관 투자자들에게 코인 진입 장벽을 낮추며, 달러 기반 자산군 중 단연코 압도적인 성장세를 뽐냈다. 이제 개인보다 기업, 기관 등 큰손들이 인플레이션 대응 수단으로 금 대신 비트코인을 사모으고 있다. 여기에 코인 육성의 기치를 내건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을 앞두고, 미국은 코인을 제도화된 금융시장으로 통합하고, 투자 접근성을 확대하며 시장의 성숙도를 한층 높여갈 전망이다. 이를 통해 디지털 시대에도 미국의 압도적 영향력이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남도영 기자 : 나보다 훨씬 똑똑한 AI의 등장
'챗GPT'로 생성형 인공지능(AI) 시대를 연 오픈AI는 올해 9월 추론형 AI 모델 'o1'을 선보였다. 'GPT'라는 이름을 떼고 새로운 승부수를 던진 o1의 성능은 충격적이었다.
o1은 느리다. 질문을 하면 바로 답을 내놓는 챗GPT와는 다르게 생각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그만큼 체계적이다. 챗GPT는 왜 그 답이 나오는지 알려주지 않지만, o1은 자신이 생각한 과정을 보여주고 가장 정답에 가까운 답을 제시한다.
o1에 대해 충격을 받은 이유는 수학 문제 때문이다. o1은 어떻게 풀어야 할 지 감도 안 잡히는 한국수학올림피아드 중등부 문제와 고등부 문제를 눈 앞에서 척척 풀어냈다. 그리고 2024학년도 수학능력시험 수학영역의 '킬러문항'을 1분30초만에 맞췄다. 이 문제는 수능 당시 정답률이 1.4%에 불과했다. 정답을 검색해서 알려준 게 아니라, 정말 문제를 풀어냈다.
o1은 국내 AI 스타트업 마커AI가 치룬 수능 국어영역 시험에선 1등급에 해당하는 원점수 97점을 받았다. 유일하게 틀린 문제는 이번 수능 문제 중 오답률이 가장 높은 문제였다. 지난해 11월 나온 'GPT-3.5 터보'는 16점이었는데, 1년 새 8등급 학생이 1등급으로 돌아온 셈이다.
연말 오픈AI는 o1을 업그레이드 한 'o3'를 선보였다.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과연 아이들이 지금처럼 공부해서 AI와 경쟁하거나, 혹은 부리면서 살아남을 수 있을 지 걱정이다. 사고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야 할 날이 머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소라 선임기자 : T1의 롤드컵 2연패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 높은 e스포츠 리그는 리그 오브 레전드(LoL)로 진행되는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이다. 2024년 롤드컵은 누적시청자수가 5억명을 훌쩍 넘기는,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로 꼽힌다.
지금까지 롤드컵에서 한 팀이, 그것도 같은 선수 라인업으로 2회 연속 우승한 적은 없었다. 그 어려운 일을 대한민국 게임단 T1이 해냈다. 고유명사처럼 불리는 '제오페구케' 라인업으로 2023년, 2024년 모두 롤드컵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특히 이번 롤드컵 우승을 일궈내는데 T1은 한편의 드라마를 써내려간 모습이었다. 롤드컵 첫 경기에서 패하며 좋지 않은 출발을 보인 T1은 4강에서 천적으로 불리는 젠지를 만났다. 매번 젠지만 만나면 무릎을 꿇었던 T1은, 롤드컵 4강에서 보란 듯이 젠지를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에서의 승부는 더욱 드라마틱했다. 특히 '페이커' 이상혁의 플레이는 거의 '신급'이었다. 이상혁은 불리한 상황에서 뒤로 물러서지 않고 적진으로 뛰어드는 과감함과 용기, 그리고 엄청난 피지컬로 죽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불리한 경기를 역전으로 이끌어냈다. 그리고 결국 중국팀을 꺾고 롤드컵 2연패를 일궈냈다.
세계 최강 자리를 다시 한번 지켜낸 T1이 있는한 한국 e스포츠 미래는 밝아 보인다.
윤상호 선임기자 : '백척간두'에 놓인 삼성전자·인텔, 반도체 양강의 쇠망
백척간두(百尺竿頭). 몹시 어렵고 위태로운 지경을 이르는 말이다. 메모리반도체 1위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1위 인텔이 백척간두에 놓였다.
반도체 산업의 지형 변화가 이들의 위기를 촉발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반도체 사업 수장을 전영현 부회장으로 교체했다. 인텔은 이달 펫 겔싱어 최고경영자(CEO)가 사퇴했다.
양사는 인공지능(AI) 반도체와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으로 대변하는 고객사 중심 반도체 공급 구조 적응에 실패했다. 매출액은 경쟁사에 비해 높지만 기술 리더십과 생산 리더십을 잃었다. 경쟁력 회복은 불투명하다. 주식 시장은 이들의 미래를 반신반의하고 있다.
허준 편집장 : 1년 내내 식물 방통위, 이젠 ICT-방송 분리 검토해야
올해 가장 시끄러웠던 정부부처를 꼽으라면 단연 방송통신위원회가 꼽힐 것이다. 올해 가장 성과가 없는 정부부처를 꼽으라면 이 역시 방송통신위원회를 꼽을 수밖에 없다.
방통위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수식어는 '식물 방통위'다. 합의제 기구 특성상 치열한 논의와 토론이 이어져야 하는데, 올해는 제대로 된 토론 한번 해보지 못했다. 지난 7월 이후로 전체회의 개최 건수는 '0'. 위원장은 임명과 탄핵을 반복했다. 비정상적인 2인 체제를 거친 방통위는 이제 위원장 직무대행 혼자 남은 부처가 됐다.
방통위가 회의를 통해 결정해야 할 이슈가 한두건이 아니다. 방송 이슈를 제외하더라도 구글과 애플의 인앱결제 강제 행위에 대한 제재, 포털 뉴스 알고리즘 조사 결과 발표, 단통법 개정, 공정위와의 불법 장려금 규제 권한 문제 등 통신 이슈가 산적하다. 언제까지 정치싸움 속 '식물 방통위'를 봐야 할까.
이젠 정말 방통위 기능 중에 ICT와 방송을 분리해야 할 때가 온 것은 아닐까.
테크M 편집국 press@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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