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료 제조 업체 심라이즈, 새로운 향료 배합 제안하는 AI ’필리라‘ 개발해
[테크M=곽예하 객원기자] 향수와 연한 향수 오드콜로뉴를 만드는 기술은 합성 재료를 사용하기 시작한 1880년대 이후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전문 향수 제작자들은 늘 새로운 향기를 만들어내고자 여러 가지 화학 약품 조합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화학 약품 수가 워낙 많은 데다가, 이 중 사용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새로운 조합을 찾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MIT테크놀로지리뷰는 최신호에서 이런 향수 제작의 어려움을 인공지능(AI)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향료 제조업체 중 하나인 심라이즈(Symrise)에서 임원으로 있는 아킴 도브(Achim Daub)는 향수 제작 과정에 AI를 투입하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먼저 도브는 IBM을 고용해 기존에 존재하는 향료 공식들, 소비자 데이터, 규제 관련 정보 같은 데이터를 검토하고, 나아가 특정 시장을 겨냥한 새로운 공식을 제안할 수 있는 컴퓨터 시스템을 설계했다. 그리고 시스템을 향을 대표하는 그리스 여신 이름을 따 ’필리라‘라고 이름 붙였다. 하지만 기계가 냄새를 맡을 수는 없기에 사람을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MIT테크놀로지리뷰에 따르면 도브는 지금까지 AI가 이룬 진전에 만족하고 있다. 다가올 6월에는 브라질의 젊은 고객층을 겨냥한 향수 두 종류를 브라질 현지에서 판매할 예정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심라이즈의 향수 디자이너 70명 중 단 몇 명만이 이 시스템을 사용해 왔다. 하지만 도브는 결국 모두가 이 시스템을 사용하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도브는 AI가 이 정도 수준까지 오는데 거의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더 나아가려면 여전히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사실 초기 필리라가 했던 제안들은 끔찍한 수준이었다. 필리라는 계속해서 샴푸 레시피를 제안했다. 의아한 직원들이 판매 데이터를 살펴본 결과 시장에서 샴푸 판매량이 향수와 오드콜로뉴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임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심라이즈는 필리라가 정상적인 제안을 내놓을 수 있기까지 많이 훈련시켜야 했다. 회사는 여전히 필리라에게 데이터를 전송하는데 필요한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위해 사투하고 있다. 도브는 “기업 시스템에 완전히 맞는 AI를 확립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AI를 채택한 뒤 급격한 진전을 나타내지 않고 있는 분야는 향수 시장뿐만이 아니다. 현재 AI가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산업 분야에서 사람들은 “AI는 배치하기 어려운 기술”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또 비용이 많이 든다고 설명한다.
이는 알파고가 바둑 거장 이세돌을 이기거나, AI 스피커가 사람 명령에 따라 음악을 켜는 것과는 다른 맥락이다. AI를 이용해 본래 디지털이 아닌 사업을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AI는 결국 새로운 제품과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들어내고, 인간이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을 예측한다. 그리고 이제까지 직원들이 도맡아하던 고달픈 일을 대신 해주는 것만으로도 경제를 변화시킬 잠재력이 충분하다.
사실 회사 대부분은 직원들이 회사에 투입하는 시간과 비교했을 때 훨씬 적은 생산량을 창출하고 있다. AI로 인한 생산성 향상은, AI가 잘 돌아가도록 필요한 인재와 기술 인프라에 막대한 비용을 들일 수 있는 부자 기업에게나 가능한 얘기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AI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게 과장됐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사람들이 AI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AI의 맹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AI의 판단을 크게 신뢰할 것으로 예상하는 분야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점이다.
유니콘 찾기
지난 9월, 피터 스코모로치라는 데이터 과학자는 트위터를 통해 "기업에서 머신러닝으로의 전환이 모바일 전환보다 약 100배 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 트윗을 본 사람들은 자기 회사가 AI와 씨름하는 유일한 회사가 아니라는 소식을 듣고 안심했다고 말했다. 꽤 많은 회사가 AI를 도입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서로 대화를 할 수 있게 하려면 각각 다른 기록 보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병원을 연결해주는 네트워크 역할을 하는 기관인 ’UC헬스(UC Health)‘에서 최고 혁신 책임자로 일하는 리처드 제인(Richard Zane) 또한 이런 문제에 봉착했다.
최근 UC헬스는 ’아바모(Avaamo)‘라는 스타트업의 자연어 기술을 이용해 UC헬스에 전화를 하거나 웹사이트를 이용하는 환자들을 돕는 대화형 소프트웨어인 ’리비(Livi)‘를 출시했다. 리비는 환자들이 처방전을 갱신하거나, 약속시간을 확인해주는 역할을 처리한다.
제인은 리비가 단순한 질의를 처리할 수 있게 되면서, UC헬스 직원들이 더 복잡한 문제가 있는 환자들을 돕는 데 시간을 할애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인은 "지금 리비가 하는 일은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UC헬스가 리비를 배치하는 데는 1년 반이 걸렸다. 주로 리비 소프트웨어를 환자의 의료 기록과 보험 청구 데이터, 기타 병원 시스템과 연결하는 일과 관련된 골칫거리 때문이었다.
다른 산업에서도 이와 비슷한 문제로 애를 먹고 있다. 일부 대형 소매업체는 공급망 기록과 소비자 거래를 별도 시스템에 저장한다. 그리고 이를 통합해 저장하는 더 넓은 저장소를 따로 두지 않는다.
만약 회사들이 따로 분리된 저장 시스템 사이에 연결을 구축하지 않는다면, 머신러닝은 결국 이들 데이터 중 일부만 다루게 된다. 지금까지 AI가 컴퓨터 보안이나 은행 같이 충분히 풍부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산업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약하는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다.
한편 기업이 여러 출처로부터 풍부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고 해도, 그 정보가 정확하고 의미 있는 것인지 확신하려면 많은 실험과 감시가 필요하다.
IT 서비스 회사인 젠팩트(Genpact)에서 최고 책임자로 일하는 산제이 시리바스타바(Sanjay Srivastava)는 "기업이 AI를 도입할 때 모든 작업에서 10%만이 AI 역할"이라며 "작업에서 90%는 사실상 데이터 추출과 분리, 정상화 같이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휴스턴에 본사를 두고 있는 에너지 회사인 산체스 오일 앤드 가스(Sanchez Oil & Gas)의 데이터 과학자 안나 드러먼드는 “소규모 회사들은 종종 직원들에게 여러 가지 기술적 영역을 탐구하도록 요구한다”고 말한다.
산체스 오일 앤드 가스는 최근 수집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스트리밍하고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맵R(MapR)이라는 회사로부터 소프트웨어를 구입했다.
하지만 드러몬드와 동료들은 여전히 그 데이터가 컴퓨터가 구분하고 분석할 수 있는 형식으로 돼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드러먼드와 팀원들은 또 다른 소프트웨어를 디자인하는 작업도 수행해야 했다. 그는 이 모든 능력을 다 갖춘 인재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며 이는 마치 "유니콘 기업을 찾는 일처럼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것이 “AI나 머신러닝을 채택하는 게 늦어지는 이유”라고 말했다.
거대 엔지니어링 회사인 플루오르(Fluor)는 IBM과 약 4년간 협력해, 수십억달러(약 수조원) 비용과 수천명 근로자를 투입한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를 감시하기 위한 AI 시스템을 개발했다.
IBM과 플루오르 데이터 과학자들은 이 시스템에 유용한 알고리즘을 구축하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스템을 실제 사용할 프룰오르 직원들이 이 AI를 정제하는 작업이 훨씬 오래 걸렸다고 설명했다. 직원들이 AI 판단을 신뢰하려면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아야 했고, 판단 결과를 신중하게 검증하는 단계를 거쳐야 했다.
플루오르의 정보 관리 부사장인 레슬리 린드그렌(Leslie Lindgren)은 “이런 AI 시스템을 개발하려면 각 도메인 전문가들을 데려와야 한다. 이는 각 산업 분야에서 최고 인재를 데려와야 한다는 얘기다”라고 말했다. 이어 “AI 엔진을 만드는 것은 아주 중요하고, 오래 걸리고, 또 비싼 과정이기 때문에 최고 인재는 필수다”라고 강조했다.
AI 씨앗
한 번 혁신이 일어나면 이것이 경제에 확산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1950년대 경제학자 즈비 그릴리케스(Zvi Griliches)는 이런 질문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을 옥수수에서 발견했다.
그릴리케스는 전국 각지에 퍼져있는 옥수수 농가들이 원래 옥수수를 수확량이 훨씬 많은 잡종 품종으로 전환하는 비율을 조사했다. 당시 그는 옥수수 자체가 아니라 ‘혼합물’의 가치에 관심을 가졌다.
오늘날 우리는 혼합물을 ‘미래 혁신을 위한 플랫폼’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이브리드 옥수수는 특정한 지역에서 우수한 옥수수를 번식시키는 방법을 찾기 위한 발명이었다"라고 그릴리케스는 1957년 자기 논문에서 말했다.
하이브리드 옥수수는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 초에 미국 아이오와 주에 도입됐다. 1940년쯤에는 그 주에 심어진 옥수수 대부분이 하이브리드 옥수수가 됐다. 하지만 텍사스나 앨라배마 같은 주에서는 하이브리드가 이보다 훨씬 나중에 도입됐다. 1950년대 초 주 전체 옥수수 중 약 절반만이 하이브리드 옥수수인 수준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하이브리드 씨앗이 재래식 옥수수 씨앗보다 비싸고, 농부들은 매년 새 씨앗을 사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기술로 전환은 중서부 지방에 있는 부유한 지역에서 더 쉽게 일어날 수 있었다.
이렇게 그릴리케스가 포착한 것과 이후 많은 경제학자들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기술 확산은 혁신의 본질적인 특성보다는 그 기술을 사용하는 이들의 경제적인 상황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술을 사용하는 이들의 핵심 질문은 "기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이 기술에 대한 투자로 얼마나 이익을 얻을 수 있는가?"다.
오늘날 머신러닝은 페이스북과 구글, 아마존 같은 기업뿐 아니라 여러 스타트업에서 기업 운영 전반에 관여하고 있다. 그리고 AI는 이 회사들을 전례에 없이 부유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IT 기업을 벗어난 바깥쪽에서는 여러 경제적인 이유로 상황이 훨씬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
도브는 심라이즈에서 AI 향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단지 실험에서 그치는 수준이 아니라 실제 고객에게 전달되는 일이기 때문에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AI가 오늘날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산업 분야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할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갖고 있다”며 “AI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더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테크M=곽예하 객원기자(yeha179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