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때마다 발휘된 'IT 강국'의 저력
장기전 대비해 디지털 전환 서둘러야

#코로나 위기 '해결사'로 떠오른 IT

#장기전 대비 경제 회복 열쇠도 IT

#민간 아이디어 살리고 정부가 지원해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한자리수로 떨어지며 진정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아직 안심하긴 이른 상황이긴 하지만 이미 대한민국의 코로나19 대응은 세계적인 모범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 뒤에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치료와 방역에 헌신한 의료진과 공무원, 봉사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기술(ICT)의 힘'이 뒷받침했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대한민국이 '인터넷 강국'이라는 게 허상이 아니라 우리 안에 축적된 힘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코로나 '대란' 막은 IT의 힘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정보전'이었다. 정부가 처음부터 일관되게 확진자와 검사현황 등 발생 현황을 신속하고 투명하게 공개했기 때문에 불필요한 동요를 막을 수 있었다.

특히 질병관리본부에서 제공하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민간에서 개발한 '코로나맵', '코로나 알리미' 등의 서비스들이 큰 활약을 했다. 이를 만든 개발자들은 주로 젊은 대학생들이었다. 이들을 직접 만난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도 이런 홍보방식을 배워야 한다며 힘을 실어줬다.

예상치 못한 마스크 대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이런 민간의 아이디어를 적극 활용했기 때문이다. 약국에 구축된 DUR(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 시스템을 바탕으로 정부가 데이터를 모아 공개하고, 이를 활용해 민간에서 신속하게 '마스크 알리미'를 서비스 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약국 앞에 길게 줄을 섰어야 했을지 모른다.


기적을 현실로 바꾼 온라인 개학


지난 20일 초·중·고 540만명의 학생이 다 같이 온라인 수업을 듣게 된 것도 기적에 가까운 성과다. 3월 말 다급히 결정된 원격수업은 초기 학습관리시스템(LMS)에서 로그인 오류나 접속 지연 등이 발생하긴 했지만 '셧다운' 수준의 접속 대란은 발생하지 않았다.

아직 교육 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이슈들이 발생하고 있지만, 개학 강행으로 집단감염이 발생한 싱가포르의 사례를 보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프랑스, 싱가포르 등에서도 원격수업을 실시 중이지만, 한국처럼 정규수업 시간표대로 실시간 수업을 하는 곳은 많지 않다. UAE 교육부 장관은 한국의 온라인 개학 경험을 전수받기 위해 원격회담을 직접 요청하기도 했다.

원격수업에서 교실 역할을 하고 있는 EBS 온라인 클래스의 경우 2000명에 불과한 수용량을 단기간에 300만명 수준으로 늘렸다. "돛단배를 항공모함으로 만들라는 것"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상식적으론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국내 클라우드 전문기업들이 모여 총력을 기울인 덕에 현실이 됐다.


코로나 장기전 대비는 클라우드부터


코로나 사태를 통해 대한민국은 국가적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압축해 경험했다. 사상 초유의 위기 속에 얻은 소중한 경험을 토대로 이제는 경제·사회 회복을 위한 근본적인 체질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코로나 대응에 활용된 기술과 서비스의 핵심 기반은 클라우드였다. 클라우드는 인터넷에 연결된 중앙의 고성능 컴퓨터에 데이터를 모아 빠르게 처리하는 기술이다. 이를 통해 데이터의 활용도를 높이고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블록체인 등 디지털 신기술을 민첩하게 적용할 수 있어 디지털 전환의 토대가 된다.

강원도 춘천시에 위치한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 사진 = 네이버
강원도 춘천시에 위치한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 사진 = 네이버

전 국민적 관심을 받은 '코로나맵'이나 '마스크 알리미'가 트래픽을 감당할 수 있었던 건 유연하게 컴퓨팅 자원을 늘리거나 줄일 수 있는 클라우드 인프라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원격수업에 쓰인 EBS 온라인 클래스나 e학습터도 클라우드 기반으로 신속하게 증설이 가능했다.

앞으로 코로나에 대한 장기적인 대응을 위해선 AI 기술을 활용한 백신 개발과 진단, IoT 기술을 활용한 자가격리 관리 등의 도입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한 기반 역시 클라우드가 될 전망이다.


디지털 전환 통한 경제 회복 서둘러야


이미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 세계적인 테크 기업들은 클라우드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국내에도 네이버, NHN, KT 등이 자체 데이터센터를 기반으로 클라우드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이번 코로나 사태 대응에서도 신속히 인프라를 제공하며 지원사격 역할을 톡톡히 했다.

기존 시스템을 클라우드로 전환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매니지드 서비스 사업자(MSP)들도 눈여겨 볼만하다. 이번 온라인 개학 준비에서 맹활약한 베스핀글로벌 등 국내 MSP들은 아직 절대적 강자가 없는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해외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온라인 개학의 가장 큰 난관이던 시스템 병목현상을 해결한 '숨은 조력자' LG CNS 역시 대기업과 공공, 금융 분야의 시스템 구축 경험을 살려 클라우드 분야를 전략적으로 키우고 있다.

앞으로 정부는 이런 기업들과 코로나 대응에 나선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 시스템의 클라우드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공공의 경험을 민간에 전수하고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이 시급하다. 이는 코로나와 같은 국가 비상 사태를 대비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신산업을 성장시키는 '일석이조'의 기회다.


다시 새긴 '데이터 주권'의 중요성


코로나 사태는 국산 플랫폼의 중요성을 다시 새기는 계기이기도 했다. 평소였으면 국수주의로 들릴 수 있지만 비상 시국에는 얘기가 달랐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인터넷 기업들은 신속하게 코로나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곧바로 움직였지만, 구글, 페이스북 등은 미국과 유럽까지 코로나가 확산한 이후에야 비로소 나서기 시작했다.

또 애플과 구글은 각자의 앱마켓에서 민간이 만든 코로나 관련 앱 등록을 막기도 했다. 코로나에 관한 잘못된 정보를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해명했지만, 공공기관이 만들거나 정부가 지원한 앱들도 구분없이 차단해 논란이 됐다.

이번 사태로 이런 외산 플랫폼에 대한 종속성이 결국 '데이터 주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데이터 주권을 수호하기 위해선 국산 플랫폼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성장하기 위한 '토양' 마련이 필수적이다.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지원 환경 조성해야


코로나맵이나 마스크 알리미를 정부가 직접 만들려고 나섰다면 그만큼 신속한 대응은 어려웠을 것이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도 민간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재택근무와 휴교로 집에 갇힌 이들이 사재기 없이 버틸 수 있었던 건 민간 플랫폼 사업자 '쿠팡'이 투자한 물류 인프라 덕분이었다. 

이런 사례를 통해 우리 사회는 민간 플랫폼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펼치고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데 더 주력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동안 정부 주도로 이뤄진 산업 성장 방식에서 벗어나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밀어주는 '4차 산업형' 지원으로의 전환이 중요하다.

최근 배달의민족 수수료 인상 이슈에서 불거진 '공공앱'은 정부가 선수로 나서는 행위다. 플랫폼의 영향력이 과도해지는 것에 대한 견제는 필요하지만, 이를 조율하고 '룰'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정부의 역할이다. 정부는 플랫폼이 성장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개방하고, 이해당사자들이 공생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드는 데 보다 집중해야 한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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