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벤처 창업해 동남아 기후변화 문제 해결 나서
'스콜' 예측하는 '허니레인' 앱으로 베트남 진출

<편집자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날이 쌀쌀해지면서 돌아온 불청객 미세먼지도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테크M은 심각한 사회적 재난으로 떠오른 미세먼지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그린 스타트업'의 혁신가들을 만나 푸른하늘을 되찾기 위한 열정과 도전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올 여름 지칠 줄 모르고 내리는 장마비에 국지성 집중호우까지 빈발하며 옷을 적시는 날이 유독 많았다. 예상치 못하게 쏟아지는 비에 동남아 여행 때나 마주치던 '스콜'을 간접 체험하는 듯 했다.

한국의 여름이 점점 열대화되면서 이런 기후변화가 낯설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더 이상 기후변화가 남의 얘기가 아닌, 당장 우리 앞에 다가온 전 지구적 현실이라는 점을 몸으로 체험하고 있다.

소셜벤처의 성지인 성수동에 자리를 잡은 '클라이밋'은 이런 기후변화에 현명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사회문제 해결 위해 뭉쳤다


클라이밋이란 기업명은 '기후(climate)'와 '만남(meet)'이란 뜻을 합쳐 '기후변화에 보다 현명하게 마주하다'란 의미를 담고 있다. 구성원마다 각자의 사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들이 기후변화에 관심을 갖게 된건 공통적으로 '사회문제 해결'이란 지점에서 공감대를 이뤘다.

소셜벤처 '클라이밋' 구성원들 / 사진 = 클라이밋 제공

이들에게 기후변화는 단순한 환경문제가 아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희소해지는 식량과 자원, 그로 인해 밀려나는 사회적 취약계층, 인종이나 지역 갈등으로 심화돼 전쟁까지 일으키는 심각한 사회문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기술적 솔루션을 개발하고, 이를 지속성을 갖고 실천할 수 있는 사업적 기반을 만들자는 공감대 아래 각자 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 환경공학, 사회적경제 학과를 전공하고 기후 분야에서 맹활약 중인 젊은 여성 과학인들이 뭉쳐 클라이밋을 창업했다.


'스콜'에 고통받는 동남아 농업인을 구하라


클라이밋의 첫 사업 아이템은 동남아 농업 종사자들을 위해 개발한 애플리케이션 '허니레인(Honey Rain)'이다. 이 앱은 지역을 설정하면 스콜을 미리 예측해 알려준다.

클라이밋 구성원들은 직접 캄보디아, 태국, 필리핀 등 동남아 현지를 돌며 이들이 마주한 기후재해에 대해 체감했다. 현재 동남아 농업 종사자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농업 생산량이 감소하고, 작물 품질이 저하되는 문제를 겪고 있다.

이예슬 클라이밋 대표는 "우리는 날씨를 체크하고 이에 따라 옷을 입는걸 당연하게 여기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며 "2017년 캄보디아를 방문했을 때는 뱃일을 나갔다가 스콜을 만나 인명사고가 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 사진 = 클라이밋 제공

특히 예측하기 어려운 스콜로 인해 농업인들이 피해를 겪는 사례가 많았다. 스콜은 열대기후 지역의 갑작스런 대류성 강수 현상으로, 건조나 선별 등 수확 후 처리 작업 중 갑작스럽게 쏟아져 공들여 수확한 작물의 품질을 순식간에 저하시킨다.

클라이밋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공위성 이미지에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해 소규모 지역 단위로 스콜을 2시간 전에 미리 예측할 수 있는 독자 기술을 개발해 앱에 탑재했다.

이 대표는 "기술로 이런 문제를 풀어내려면 정확한 예측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현지 지역의 리더들이나 NGO 실무자, 기상 관련 기관 담당자들이 한 목소리로 해당 지역에 가능한 더 빨리 정확한 예보를 해달라는 수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동남아 기후 데이터 모아 사업기회 찾는다


현재 다수 동남아 국가에는 축적된 기상 데이터가 부족하고, 보유한 데이터도 신뢰성이 높지 않아 기상 예측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부 국가는 해외에서 공적개발원조(ODA) 형식으로 기상 데이터를 제공받고 있지만, 기상 조건이 다른 미국이나 유럽 등 기후 선진국의 기준에 맞춰 분석돼 정확도가 떨어진다.

클라이밋이 개발한 기술은 이렇게 데이터가 부족한 지역에서도 기상 예측이 가능한 게 특징이다. 급격히 상승한 구름의 온도가 급격히 낮아지는 특징을 포착해 스콜의 원인이 되는 적란운이 어디서 솟는지 탐지해 미리 알려준다.

/ 자료 = 클라이밋

허니레인 앱은 정확도와 이용자 환경 등을 테스트해 내년 상반기 정식 출시할 계획이다. 첫번째 시장은 인구의 70%가 농업에 종사하는 베트남으로 정했다. 올해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현지와 온라인으로 소통하며 기상 데이터를 공유 받아 공동 분석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클라이밋은 스콜 예측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그동안 부족했던 현지 기상 데이터를 축적해 대시보드 형태로 플랫폼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이 대표는 "스콜 예보 기술을 현재는 농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개발하고 있지만 앞으로 활용할 수 있는 폭이 넓다"며 "기상 정보에 민감함 식량, 유통, 건설 등 다양한 산업군과 연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후 서비스에 대한 인식 바꿀 계기 만든다


국내에서도 기후변화에 대한 체감도가 많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 환경문제를 '운동'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기술 개발이나 사업화로 이어지는 사례는 많지 않은 상황이다.

이 대표는 "기상 분야는 공공재라는 인식이 크다"며 "너무 당연하게 제공받는다고 생각하지만 해외에선 민간 기후 서비스가 자리를 잡아 새로운 혁신 많이 만들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 = 클라이밋 제공

클라이밋 멤버들은 오는 2일부터 대전에서 열리는 그린 스타트업 기술혁신대회 'I4BS 디자인 씽킹랩'에서 다른 그린 스타트업들을 만나 그들이 가진 고민과 해결 방안, 사업 모델들을 공유하는 데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 대표는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때 작은 스타트업이 아닌 정부 기관 등과 함께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좋겠다"며 "그린 스타트업의 성공 사례를 만들어 여성 과학인, 여성 창업인으로 제대로 자리를 잡는 좋은 선례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I4BS 디자인 씽킹랩' 행사는?

오는 2일부터 사흘간 대전 대덕연구단지에서 열리는 '푸른 하늘을 위한 혁신, 디자인 씽킹랩(I4BS Design Thinking Lab)' 행사는 한국 주도로 제정된 최초의 유엔 기념일인 '푸른 하늘을 위한 국제 맑은 공기의 날'을 기념하고 그린 뉴딜의 글로벌 성과 확산을 위해 기획된 해커톤 방식의 대회입니다.

국가기후환경회의와 중소벤처기업부 주최로 열리는 이번 대회에서는 1차 선발을 거친 7개국 15개팀이 참가해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문제에 대한 기술적 솔루션을 제시합니다. 참가팀들은 자신들이 준비한 기획안을 바탕으로 분야별 전문가의 밀착 지원을 통해 시제품을 제작하고,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받아 우승팀을 가리게 됩니다.

국가기후환경회의와 중기부는 이번 행사를 위해 지난 9월7일 국제기구, 국내외 정부, 공공기관 및 글로벌 금융사 등과 글로벌 그린 스타트업 지원 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I4BS 플랫폼 파트너십'을 체결한 바 있습니다. 이를 통해 청년 혁신가와 스타트업을 통한 대기질 개선 기술과 혁신 지원 노력을 모범사례로 만들어 국제사회에 공유할 계획입니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