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 중 첫 디지털 치료제 나올까.
美 FDA 임상 앞둔 빅씽크 '오씨프리'
뉴로월드, 행복누리 프로그램 등 다양한 시도 잇따라

지난 2019년 질병 취급을 받던 게임이 2021년엔 치료제가 될 수 있을까? 세계보건기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거리두기를 지키기 위해 질병이라던 게임을 권장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게다가 지난해 게임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치료제 효과가 입증돼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허가를 받은 게임이 나왔다. 게임 기반 디지털 치료제를 처음으로 승인한 미국에서는 게임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다. 게임은 정말 치료제가 될 수 있을까? <편집자 주>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 수단으로 승인한 모바일 게임 '인데버알엑스'처럼 한국에서도 게임을 디지털 치료제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미국이나 유럽보다 뒤늦게 제도 지원에 나섰음에도 고군분투하며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기업들이다.


美 FDA 임상시험 앞둔 '빅씽크'

가장 주목받고 있는 기업은 '빅씽크테라퓨틱스'다. 이 회사가 개발한 '오씨프리'는 임무수행과 레벨설정 등 게임 요소를 활용해 강박증(OCD)을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다. 오씨프리에는 '노출 및 반응방지법(ERP)'이라는 심리치료 기법이 디지털화 돼 있다. ERP는 사용자가 강박이 있는 사물체에 노출돼 불쾌한 감정이 들어도, 강박행동을 참고 억제하도록 하는 치료법이다.

강박증 치료하는소프트웨어 오씨프리(OD FREE) / 사진=빅씽크테라퓨틱스 제공
강박증 치료하는소프트웨어 오씨프리(OD FREE) / 사진=빅씽크테라퓨틱스 제공

오씨프리를 개발하는 빅씽크테라퓨틱스 DTx팀은 "환자들은 강박이 있는 사물체에 직접 마주쳐야 한다는 것에 압박을 느낀다"며 "오씨프리를 이용해 실제가 아닌 사진이나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줌으로써 압박감을 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미국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오씨프리를 개발하기 시작했을때, 한국에는 디지털 치료제와 관련한 아무런 규정도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디지털 치료제 관련 가이드라인이 나온다해도 넘어야할 산이 많았다"며 "미국에 먼저 나온 디지털 치료제가 있어, 그 치료제와 동등성만 입증하면 승인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미국 FDA 승인을 목표로 했다"고 밝혔다.

더불어 한국에서 임상을 진행중인 디지털 치료제 뉴냅스도 있다. 뉴냅스는 뇌졸중으로 인한 시야장애를 치료하는 '뉴냅비전'을 개발하고 있다. 2019년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국내 첫 디지털 치료제 임상시험 허가를 받아 임상을 진행 중이다. 뉴냅비전은 가상현실(VR) 기기를 쓴 환자에게 30분씩 특정한 자극을 보내 환자가 이를 게임하듯이 판별해 응답하도록 하는 치료기기다. 


인지 기능 회복, 우울감 완화에도 게임 활용

게임을 활용해 인지 기능 회복과 개선을 돕는 기능성 게임도 주목받고 있다. 우리소프트가 개발한 '뉴로월드'다. 뉴로월드는 일반인중에서 인지 장애 또는 저하 우려가 있는 대상자를 조기에 선별해 맞춤형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전문가의 적절한 치료를 통해 인지 저하를 지연시키거나 예방할 수 있도록 돕는다. 

뉴로월드 인게임 화면 / 사진=뉴로월드
뉴로월드 인게임 화면 / 사진=뉴로월드

송정헌 우리소프트 연구소장은 "인지훈련을 통해 개선 효과를 얻으려면 단기간에는 불가능하고 오랜 동안 반복적인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기존 방법은 재활사나 치료사가 단순한 훈련 도구로 반복 훈련해 많은 인지장애인들이 훈련 참여를 싫어하거나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게임은 모든 연령층에서 즐겁게 사용할 수 있어서 아동이나 노인이 훈련에 대한 거부감이 적어 가장 적합한 훈련방법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게임으로 우울증을 완화하려는 연구도 진행돼 눈길을 끈다. 지난달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신민섭 교수팀은 우울한 청소년들이 게임을 통해 인지행동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행복누리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행복누리 프로그램은 주 2회, 5주에 걸쳐서 총 10번 동안 '우울감 극복하기', '친구 사귀는 법', '학습능력 증진'을 훈련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인지행동 치료 소프트웨어 행복누리 프로그램 / 사진=서울대학교병원
인지행동 치료 소프트웨어 행복누리 프로그램 / 사진=서울대학교병원

선구자들도 법-제도 미비로 속앓이

이밖에도 3월말 상장 예정인 디지털 헬스 전문기업 라이프시맨틱스, 노인성 질환인 근감소증 온라인 진단 및 관리하고 개인 맞춤형 운동 처방 등을 제공하는 웰트, 치매 예방을 위한 다중영역 인지기능 향상 프로그램 슈퍼 브레인을 만드는 로완 등의 다양한 기업들이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이 기업들도 법제도 미비와 규제로 인해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라이프시맨틱스의 경우 의사처방을 필요로하는 '에필케어M'을 개발했으나 관련 법제도 미비로 출시가 지연되고 있다.

빅씽크 관계자는 "한국에서는 임상시험도 어렵고, 비즈니스 모델 구축도 어렵지만 미국은 효과가 검증되기만 하면 FDA가 승인을 해준다"며 "한국 사업은 제도가 정비되고 규제가 풀린 이후에나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성우 기자 voiceactor@techm.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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